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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치인의 죽음 앞에 ‘언론의 예의’는 없었다

노회찬 의원 사망 소식 놓고 생중계·속보 경쟁한 언론들

김고은 기자2018.08.01 16:36:01

7월23일 오전. 비보가 전해졌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사망’. ‘가짜뉴스’를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소수 정당 소속이었으나 가장 대중적인 정치인 중 한 명이었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빈소가 차려진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길게 줄을 잇던 수만 명의 추모 열기가 이를 증명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영결식을 끝으로 많은 국민의 애도 속에 영면에 들었다. 노 원내대표의 죽음은 우리 사회와 정치, 그리고 언론에도 많은 과제를 남겼다. /뉴시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영결식을 끝으로 많은 국민의 애도 속에 영면에 들었다. 노 원내대표의 죽음은 우리 사회와 정치, 그리고 언론에도 많은 과제를 남겼다. /뉴시스


언론도 운동가이자 진보정당의 정치인으로 평생을 헌신해 온 그의 생애를 돌아보며 추모 열기를 더했다. 정치자금법의 명암, 선거제도 개혁 등 남은 과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 의미 있는 기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언론은 떳떳할 수만은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들은 재난 현장이나 생명(죽음)에 관한 일만큼은 무분별한 속보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암묵적인 다짐을 했다. 하지만 ‘참사’는 때마다 반복됐고,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깊어졌다.


“누가 볼까 겁나고, 낯이 뜨거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연합뉴스TV 기자들이 지난달 24일 노회찬 원내대표 사망 관련 자사의 보도를 비판하며 낸 성명의 한 대목이다.


연합뉴스TV는 전날 노 원내대표 사망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고인의 시신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현장을 차량으로 추적, 생중계했다. 공채 2기 기자 6명은 성명에서 “과거 자살 보도로 숱한 논란을 겪은 뒤 언론이 자성하며 진일보해왔다고 믿어 왔지만, 이 같은 믿음은 우리가 몸담은 회사의 보도에 의해 단박에 깨졌다”며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남을) 최악의 자살 보도 사례”라고 비판했다.


TV조선은 더 심각했다. 같은 날 TV조선은 고인의 시신 후송 차량을 따라가며 6분 넘게 생중계했다. 신호 대기 중엔 구급차 창문을 근접 촬영하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타인의 고통과 참담함을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 특히 TV조선이 개국 때부터 버리지 못한 악습이 재차 불거졌다”고 일갈했다.


뿐만 아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공동으로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자살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최소화”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서 이 같은 기준은 지켜지지 않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니 제목에 ‘노회찬’과 ‘투신’이 함께 들어간 기사는 7월23일 하루 동안만 861건이 쏟아졌다. 동아일보와 뉴시스 등은 아예 ‘투신 자살’을 기사 제목에 넣기도 했다.


고인이 아파트 몇 층에서 몸을 던졌는지, 최초 목격자인 경비원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등 사건 당시의 자세한 정황은 말할 것도 없고 일부 언론은 아파트 이름과 동, 라인까지 속보로 전하기도 했다.


급기야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MBN은 24일 저녁종합뉴스에서 “드루킹 관련 의혹을 숨기기 위해 노 의원이 희생당한 것”이라는 극우단체의 ‘타살설’을 보도하며 “시민들도 노 의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가족을 배려하지 않은 보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기자협회 MBN지회와 언론노조 MBN지부도 각각 성명을 내어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참사”라고 비판하며 보도책임자의 사과를 요구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특히 유명인 자살보도를 할 때 더 엄격하게 준수하도록 요구된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선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이에 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원칙을 개정해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5년 만에 이뤄진 개정 작업에는 기자협회가 추천한 현직 기자 3명이 추가로 참여해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 개정된 권고기준은 기존의 9가지 원칙을 5가지로 통합하고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 사용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 비보도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 존중 등 구체적인 내용으로 보완했다. 정규성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아무리 좋은 가이드라인도 실제로 지켜지지 않으면 효용 가치가 없다. 취재 현장부터 실제 보도까지 반영될 수 있도록 많은 기자들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면서 “기자협회도 자살예방을 위한 언론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널리 알리고 활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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