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보도에 드러난 한국언론의 민낯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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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뜨거운 경쟁을 뒤로 한 채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 추위와 강풍으로 인한 스키 종목 일정 변경, 일부 지원인력의 노로바이러스 집단감염 등 소소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18일 크리스토퍼 두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수석국장의 평가대로 이번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논란은 있었지만 북한 선수단 참가·단일팀 구성·남북한 공동입장은, 일부 국가가 불참까지 검토했던 지난해 연말의 긴장된 한반도 정세를 잊혀 지게 할 정도로, 올림픽 성공에 기여한 신의 한 수가 되는 분위기다. 스포츠에서 국가적·민족적 자부심을 확인하려 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목적으로 여기는 젊은 세대의 의식을 반영하듯 올림픽 보도에서도 국가별 메달레이스에 집착하거나 국가주의적 열정을 부추기려는 보도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삼지연 관현악단의 서울·강릉 공연을 비롯, 대규모 북한 응원단의 방남,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같은 고위급 북한 대표단의 방남 등 봇물 터지듯 진행된 ‘올림픽 남북 해빙기’에 나온 북한 관련 보도는 여러 면에서 구태가 반복됐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취재원 접근이 제한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질적인 추측성 보도는 소모적 이념 논쟁만 불러 일으켰다. 지난 10일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경기 도중 남성가면을 쓴 북한 응원단 사진을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으로 보도한 노컷뉴스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논란이 일자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까지 실었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사실 확인 없이 예단으로 보도한 사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북한 응원단이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 현수막이 비에 젖는다며 이를 철거했던 일, 김일성 일가의 사진이 북한에서 신성시된다는 상식만으로도 ‘김일성 가면’은 꼼꼼한 확인절차가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현장 기자도 데스크도 이런 절차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정치인들과 보수언론은 이를 김일성 가면으로 단정하고 정부를 향해 이념공세를 퍼붓는 등 결국 알맹이 없는 정치논쟁으로 번졌다. 확인된 사실만 보도한다는 취재의 ABC만 지켰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북한 응원단 여성 단원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됐던 문제였으나 이번에는 관음증 수준으로까지 추락했다. 지난 7일 가평 휴게소 화장실을 이용하는 북한여성응원단원들의 사진을 촬영한 연합뉴스, 여성단원들 다리에 초점을 맞춘 사진을 출고한 노컷뉴스와 한 통신사 등에서는 북한 여성을 성적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취재원의 인권 보호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 언론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응원단원과 예술단원들을 ‘미녀 응원단’, ‘미녀 예술단’으로 부르며 응원단원들의 외모에 집착하는 보도도 여전했다. 특히 지난 10일 북한 응원단의 숙소를 촬영해 보도한 TV조선의 보도는 독자의 궁금증 해소를 명분으로 취재원 사생활 보호라는 취재 윤리를 내팽개친 심각한 사례다. TV조선은 당시 응원단원들이 우리 TV를 시청한다고도 보도하기까지 했는데 북한체제의 특성상 자칫 이는 취재원의 안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될 법했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오랫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해빙될 조짐이 보인다. 남북문제를 풀어감에 있어서 언론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북한을 타자화하고, 남북간 갈등을 부추기고,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는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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