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들, 지면을 넘어 카메라 앞에 서다

자사 콘텐츠 홍보도 하고 기자 브랜드 제고 일석이조…후기·논평·강좌 등 다양
기자 개인에 의존하기 보다 회사 차원의 직무교육과 제대로 된 보상체계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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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출근길. 16년차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가 옷차림에 신경 쓴다.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걸 입는다. 회사에 도착한 그는 기사가 아닌, 스크립트를 쓴다. 오후에 녹화가 있다. 카메라 앞에 선다. 2003년 입사 이래 쭉 신문기자였던 그는 낯설고 어색해 한다. 목소리와 시선처리가 신경 쓰인다. 그래도 조곤조곤 말을 건네 본다. “찬이 삼촌 백승찬입니다…오늘도 어떤 어린이책 읽어볼만한지 살펴볼까요?” 수요일이면 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회사 페이스북 계정과 유튜브, 기사 등을 통해 선보인다. 영상 콘텐츠 ‘찬이 삼촌의 어린이책 맞아요?’를 맡고 그는 이제 막 아홉 번째 녹화를 마쳤다.


“방송은 입체로 된 팝업·놀이책 형태 어린이책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안 해 보던 거라 당연히 부담은 됐어요. 기사를 두고도 다양한 시도가 되는데 (방송 영역 역시) 전체적인 흐름인 거 같아요. 하다가 그만두더라도 일단은 해보자는 생각이고요.”


‘찬이 삼촌의 어린이책 맞아요?’의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찬이 삼촌의 어린이책 맞아요?’의 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언론사 디지털 혁신 움직임 속에서 프린트 매체 기자들의 방송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익숙한 지면 뒤가 아닌 낯선 카메라·마이크 앞에서 자사 콘텐츠를 적극 홍보하고,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더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겨레신문사는 이 같은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신문사 편집국에선 팟캐스트를, 영상을 다루는 한겨레TV에선 고정 코너를 통해 정기적으로 방송물을 선보인다. 대다수 코너에는 소속 부서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직접 출연한다. 관련 소식을 전하고, 논평을 덧붙이며, 취재후기 등을 전한다. 강좌도 진행한다. 34년차 ‘펜기자’ 성한용 선임기자가 ‘더 정치’ 등 온라인방송 코너를 진행할 정도로 적극적인 분위기다.


일부 기자의 ‘단독 플레이’가 아니라 신문사 차원에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여기 자사 기자를 투입하는 모습은 이제껏 없었던 흐름이다. 경향신문에선 지난해 ‘자동차 시승기’에 이어 올해 ‘북리뷰’ 영상 콘텐츠를 새로 시작해 기자들이 진행을 맡는다. 한국일보에서도 비정기적이지만 취재 기자들의 출연이 이뤄진다. 시즌2를 준비 중인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은 페북 라이브를 통해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며 ‘NYT(뉴욕타임스)보다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사 팟캐스트 ‘디스팩트’의 이재훈 한겨레신문 기자.

▲시사 팟캐스트 ‘디스팩트’의 이재훈 한겨레신문 기자.

이들 프린트 매체 기자들의 도전은 자사 콘텐츠 홍보와 매체·기자 브랜드 제고라는 목적으로 요약된다. 직접 방송 콘텐츠를 내놓든,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든 이유는 같다. 2003년 신문사에 입사해 지난 2015년부터 팟캐스트 ‘디스팩트’ 진행을 맡아 온 이재훈 한겨레신문 기자는 “내부 축적 콘텐츠를 정리하고 친절하게 전하기만 해도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신문과 팟캐스트 독자는 다르다”면서 “다양한 플랫폼에서 여러 방식으로 콘텐츠 접하기를 기다리는 수용자에게 기자들이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tvN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출연했고 지난해 ‘욜로라이브’라는 토크쇼를 진행한 심희정 서울경제 라이프스타일 전문기자는 “지난해 회사와 모 TV채널, 기업이 함께 파일럿 프로그램을 기획해 네이버 V라이브로 들어갔다. 콘텐츠 자체 활용도 가능하지만 젊은층이 많이 보니까 앞으로 온라인 기사를 볼 때도 친근하게 느낄 거고, 브랜딩이 될 거라 봤다. 회사 홍보대사 역할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펜기자로서 방송 도전은 여전히 진입장벽이 낮은 일은 아니다. 현재 활발하게 방송 중인 기자들 역시 시행착오와 낯섦을 겪어왔다. TV·라디오를 통틀어 방송경력 10년이 돼가는 김완 한겨레21 기자는 “생방송 라디오에서 5·18기념식 뉴스를 전하다가 ‘제창’과 ‘합창’을 거꾸로 설명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며 “백날 기사 써도 조용한데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오니까 옛날 담임선생님한테 연락이 오더라. 펜기자로서 억울하기도 하고 그랬다”고 술회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1주년 기념방송에 출연한 김은지 시사in 기자.	        (유튜브 캡처)

▲‘김어준의 뉴스공장’ 1주년 기념방송에 출연한 김은지 시사in 기자. (유튜브 캡처)

2016년 말부터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중인 김은지 시사in 기자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 들어서 큰 일이 됐다”며 “이메일로 의식하지 못한 말버릇에 대한 지적도 온다. 생방송이라 뱉고 나서 ‘아차’할 때도 있다”고 돌이켰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펜기자에게 어떤 조언이 필요할까. 방송을 경험한 기자들은 ‘겁먹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떠드는 거에 대한 부담이 없어야 한다”고 팁을 줬다. 20년차가 넘은 KBS 한 기자는 “제일 중요한 건 자연스러움이다. 요즘 팟캐스트 인기 프로그램을 들으며 경직된 틀보다 중언부언하는 게 더 자연스럽구나 느낄 때가 있다”며 “많이 해보는 게 최고”라고 했다. 이재훈 한겨레 기자는 “신문기자들은 사안에 자기 견해를 넣어 설명하는 데 어색함이 있다”며 “팩트가 아닌 해석의 관점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여전한 신문 위주 시스템과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다. 김완 한겨레21 기자는 “한겨레는 내부 출연료를 주긴 한다. 만일 기사 전파를 위해 여러 플랫폼에 나가는 게 중요하다면 특화된 기자 개인기에 의존할 게 아니라 트랜스플랫폼에 맞는 역량을 갖추도록 언론사 차원 직무교육이나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가욋일로 치부해버리니까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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