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으려고, 진짜뉴스 만들려고…

MBC는 왜 제작거부에 들어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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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00여명이다. 기자들은 펜을 던지고 PD는 카메라를, 아나운서는 마이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MBC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이들이 스스로 업무에서 손을 뗀 채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치고 있다.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5년간의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언론인들이 다시 힘을 내고 ‘MBC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왜 우리는 제작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가.” 공정방송을 위한 이들의 바람이 기자협회보에 울려 퍼진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전동건 기자

“용마가 건강해져 뉴스 앵커가 됐으면”
전동건 기자(경기북부총국, 1991년 입사)

제작거부 이유가 5년 전인 2012년에 내가 파업에 참여한 이유와 어쩔 수 없이 비슷해졌다. 이용마 기자 때문이다.


5년 전, 나는 선거방송기획부장을 맡고 있었다. 후배들의 파업이 시작되면서 동료, 선후배 부장들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했다. 나도 같이 파업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선거방송기획부장은 좀 묘한 자리다. 파업이 혹시 총선 전에 일찍 끝날 수도 있기 때문에 선거방송기획부장은 선거방송을 준비해야 한다.


주변 동료들도 당신은 좀 참으라고 말렸다. 그런데 이용마가 해직됐다. 그래서 그 다음날 그냥 보직사퇴하고 파업에 참여했다. 용마는 함께 산전수전 다 겪은 후배이자 동료다. 내가 선배로서 용마를 혼낼 때도 있었지만 내가 용마한테 혼날 때도 많았다. 머리보다 행동이 앞서는 나의 생각 없음을 주로 지적받았다. 그런 그가 해고됐다. 다 떠나서 의리는 지켜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졌고 용마는 해직언론인이 됐지만, 지난 5년 동안 나는 새로운 세상이 오고 다시 뉴스를 하게 될 때 이용마가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됐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얘기지만 이용마는 배우 현빈과 이미지와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완전 주관적 판단인데, 가장 앵커감이고 매력적이다. 그런데 지금 용마는 아프다. 박근혜 국정농단의 공범자 같은 MBC 뉴스를 지켜보는 게 나도 힘들었지만 용마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MBC 뉴스는 더 큰 범죄도 저질렀다. 세월호 유가족처럼 이 사회가 보호해야 할 약자들을 MBC 뉴스는 혐오하고 괴롭혔다. 반인륜적 범죄다. 이런 MBC의 가짜뉴스들이 쏟아내는 극단의 고통 때문에 이거 암 생기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했다. 정말 용마가 그 몹쓸 병에 걸렸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노조 동료들과 함께 가짜들을 쫓아내고 진짜 뉴스를 만드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근원을 없애야 용마가 좀 더 힘을 내 건강해질 것이다. 이용마 기자가 건강해져서 새로운 세상의 뉴스앵커가 되는 날을 이루어내기 위해, 나는 지금 제작거부에 동참한다.



“구로는 언론인 학살의 상징적 공간”
양효경 기자(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2000년 입사)

저는 거부할 제작이나 업무조차 없는 ‘유휴인력’, ‘잔여인력’입니다. 2012년 파업 이후 대기발령, 신천교육대를 거쳐 유배지인 경인지사와 구로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에 격리돼왔습니다. 부당전보 가처분 소송에서 이겨 잠시 보도국으로 복귀한 적도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 때 다시 쫓겨나야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공영방송으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역할마저 저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권력의 부당한 보도 지침은 깨알 같았습니다. 유가족 눈물을 방송하지 마라, ‘촛불’이라는 단어를 삭제해라, 청와대와 정부 비판 인터뷰를 쓰지 마라. 세월호 보도 한 달은 매순간이 투쟁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촛불 추모제’를 보도하고, 청와대를 비판하는 생존자 가족들의 기자회견을 방송하고, 세월호 침몰 당시 단원고 학생들의 생존 모습이 담긴 동영상과 사진을 방송했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쓰고 경인지사로 쫓겨났습니다.


당시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도 못한 채 쫓겨났다는 자괴감은 지난 3년 동안 유배지에서도 저를 계속 짓눌러 왔습니다. 이제는 돌아가겠습니다. 제가 있는 구로는 언론자유 침해와 언론인 학살의 상징적 공간으로, 폐쇄돼야 마땅합니다. 유배지의 문을 닫고 상암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다시 힘을 모아 싸우겠습니다.


제가 싸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약자에게 공감하고,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뉴스를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승리해 MBC를 되살리겠습니다.



▲박장호 기자

“사필귀정, 단 하루도 잊은 적 없어”
박장호 기자(보도국 정보과학부, 1993년 입사)

물을 수십 개씩 먹은 날에도 한밤중 MBC 보도국은 기이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2014년 라디오뉴스팀에 배치된 후 보도국의 목격자라도 돼야겠다 싶어 남긴 메모를 보면 가슴이 뻐근해진다.


변희재가 재판에 져서 돈을 물어주게 됐다는 기사를 왜 세 번이나 냈냐며 국장이 질책. 세월호 200일, KBS는 톱 세 꼭지, SBS도 리포트, 우리는 만추 절정이 톱. 국정교과서 반대하면 국민 아니라는 이정현 발언 이틀째 못씀. 김무성 연탄 발언 오늘도 무시. 밤새 가장 핫했던 채널A 윤상현 녹취 파일 아침 뉴스에 한 줄도 안 나감. 총선 한 달 앞둔 대통령 TK 방문 리포트 앵커멘트가 ‘박 대통령은 오해 살만한 행보 자제하면서 공식 일정 소화했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 뉴스데스크 끝에서 다섯 번째 단신. 김진태 염동열 선거법 위반 재정신청 기사 없음. 새벽에 출근하니 김기춘이 최순실 이름은 들어봤다고 말을 바꿨다는 기사 안써 놓았음.


쓰지 않아야 할 기사는 썼고 써야 할 기사는 쓰지 않았다. 어쩌다 써도 제대로 쓰지 않았다. 입사 이후 적지 않은 파업에 참가했다. 사건기자 시절에는 팀 차원 제작거부도 두 차례 했다. 그때마다 되풀이했던 약속과 다짐 절반이라도 지켰으면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약속과 다짐의 기억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의 대오를 유지한 채 다시 싸움에 나설 수 있는 것이리라 믿는다.


사필귀정 네 글자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다. 부끄러움이 컸던 만큼 내 자신 조금은 더 현명해지고 단단해졌기를 기대할 뿐이다. 물러설 곳도 없지 않은가.



▲이종혁 기자

“살생부 만들어 카메라기자 인격 말살”
이종혁 기자(보도국 사회2부, 2007년 입사)

올 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가 한창이던 때였다. 집회 후 청와대 방향 행진을 따라가던 중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 MBC다. 꺼져라! 꺼져라 MBC!” 요즘도 문득 그 조롱섞인 목소리는 귓가를 맴돌며 날 괴롭히곤 한다.


한때는 MBC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2012년 파업 이후 지난 몇년 간 MBC뉴스는 망가졌고 시청자들은 MBC 뉴스를 외면하고 조롱했다. 그 결과 MBC카메라기자로서의 자긍심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부끄러움과 자괴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전 2012년 파업 이후 작성된 ‘카메라기자 블랙리스트’가 폭로 되었다. 현 사측의 충성도에 따라 카메라기자를 네 등급으로 분류한 것이었다.


보는 순간 치가 떨렸다. 짧게는 5년 길게는 30여 년 MBC 카메라기자로서 보낸 선후배들의 삶을 모욕적인 언어로 평가하며 난도질 했다.


블랙리스트를 맞닥뜨린 순간 지금껏 지녀 온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공정방송을 내걸고 합법 파업을 한 기자들을 ‘체제전복’, ‘격리필요’, ‘불순분자’ 등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말로 재단했다.


많은 취재현장 일선에서 카메라기자들은 불공정한 뉴스에 대한 비난을 인내해왔다. 그 세월동안 블랙리스트의 작성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알량한 권력 유지를 위해 불법적인 살생부를 만들고 동료들의 인격을 말살하고 있었다. 그들의 안중에는 신뢰받는 뉴스, 공정한 뉴스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후안무치한 블랙리스트를 본 후 더 이상 인고의 시간은 무의미해졌다. 더 늦기 전에 불법을 자행하는 저들을 몰아내 망가진 MBC뉴스를 되살려야 했다. MBC 카메라기자로서의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떨쳐내고 다시 자긍심을 찾기 위해서….



▲나세웅 기자

“어린 딸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아”
나세웅 기자(보도국 사회2부, 2010년 입사)

때 맞춰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인다. 먹이고 입히고 치우는 육아의 작은 전투를 치르고 나면 어느새 밤이 깊다. 생활의 동심원이 좁고 안온하다. 육아휴직자는 동료 기자들의 제작 거부 소식에 그 안온함이 죄스럽다.


MBC가 직원들의 성향과 일상을 사찰하고 등급에 따라 격리했다는 증거가 드러났을 때, 모멸은 임계를 넘었다. 수용소는 비유가 아니라 실재다. 파업 영상을 제작한 기자,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기자, 잘못된 기사의 녹음을 거부한 기자. 쉴 새 없이 꼬리표를 달았고 여지없이 인사조치가 뒤따랐다.


“고생이 많아” 비릿한 웃음기가 담긴 인사. 취재를 할 수 없는 부서에 몰아놓고 덕담이다. 기사를 팔고 얻어낸 연수와 자리가 그리 만족스러울까. 저치들도 좋은 아빠, 엄마이고 싶을까. 천연한 얼굴들을 보며 나는 늘 얼마간 좌절했다.


뒷배 삼던 권력이 떠나간 뒤에도 이름은 남는다. 대가를 받고 팔아치운 기사는 다시 그 이름을 불러 값을 요구한다. 김장겸 사장과 부역자들이 국민에게 진 빚이 산더미처럼 불었다. 비틀고 부풀리고 눈감아서 만든 빚이다.


나는 비용을 정산하기 위해 기사를, 이름을 기록하기로 했다. 아빠의 행동 하나하나를 흉내 내기 시작한 어린 딸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무노무임 협박에도 다시 싸움을 선택한 동료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이세훈 기자

“나는 세모 등급에 회색분자란다”
이세훈 기자(보도국 nps준비센터, 1996년 입사)

2010년 39일 파업, 2012년 MBC 기자회와 영상기자회의 제작 중단, 그리고 이어진 170일 파업. 시민들이 보내준 쌀, 라면, 김이 조합 사무실을 가득 채웠고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들이 파업 콘서트 무대에, 파업 뮤직 비디오에 함께해 주었다.


그렇게 폼나는 싸움을 하고 있을 때, 화성 공단에 있는 한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은 ‘조합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직장폐쇄’ 조치를 견디며 천막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 싸움 이기고 취재하러 가겠다고 했었다.


부끄럽다. 내가 뱉은 말이, MBC 뉴스가, MBC에서 월급 받고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영상기자 블랙리스트가 공개됐다. 나는 세모 등급이다. 회색분자란다. 부끄러움은 백배, 천배가 된다. 지인들의 조롱과 멸시(?) 속에서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반성한다. 블랙리스트에도 순기능이 있다.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이 없었다. 최근에 생겼다. 내 입사 동기 김민식 PD다.
나이 오십 줄에 집회 무대에서 춤추고 랩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부끄럽지 않으려면 싸워야 한다”는 명쾌한 답을 얻게 된다. (8월11일 돌마고 집회 때 그가 입은 파란 반짝이 조끼는…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5년만의 싸움이다. 최승호, 박성제, 정영하, 강지웅, 박성호, 이용마. 정상화된 MBC에 레드카펫 깔아 놓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라.



▲이춘근 PD

“MBC란 우물에 독을 뿌린 공범자들”
이춘근 PD(시사교양PD, 2001년 입사)

2001년 입사한 저는 MBC 문화방송 ‘수석사원(首席社員)’입니다.
<PD수첩>으로 ‘올해의 PD상’도 받고, <불만제로>로 방통심의위가 주는 ‘이달의 좋은프로그램상’도 받았는데, 이상하게도 6년 연속 승진에 물을 먹고 있는 16년차 ‘사원’입니다.

방송을 나름 잘 만든다 평가받았는데, 3년 가까이 경인지사 영업직으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MBC 블랙리스트’에 제 이름만 적혀있진 않을 겁니다.
공영방송을 지키려, 앞장서 싸우고 침묵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김없이 제작에서 배제되고, 유배지로 좌천되며 인격을 말살 당했습니다.
사원 나부랭이여도 회사에 적(籍)을 두고 있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2년 170일 파업 때, 가장 먼저 해고된 이용마 기자는 복막암으로 투병중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해고됐다는 증언이 나왔어도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는 여전히 해고자 신분이고 정영하, 강지웅, 박성호 세 명의 선배도 MBC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재철을 MBC에 보내고, 정연주를 KBS에서 쫓아낸 이명박.
온 국민이 마시는 MBC란 우물에 독을 뿌린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김장겸.
곡학아세 어용학자 김우룡, 유재천, 박명진, 이인호, 유의선, 멍멍이 검사, 협잡 판사 등등
이 모든 ‘공범자들’은 곧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시민들의 응원과 함께 방송 적폐 청산하고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전예지 기자

“언론의 품격은 찾아볼 수 없는 MBC”
전예지 기자(보도국 정보과학부, 2013년 입사)

‘품격 있는 젊은 방송’이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번뜩이는 2017년의 상암 MBC에서는 정작 언론의 품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금의 MBC는 약자에 대한 조명,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언론의 가치는 커녕 사실의 왜곡, 은폐만이 만연합니다.


옳음과 그름을 얘기하던 이들을 몰아낸 자리는 입을 닫고 눈을 감은 사람들이 차지했습니다.
철저하게 망가진 MBC는 끝도 없이 추락했고, 비열한 아이템 검열부터 동료와 선후배를 마치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기는 블랙리스트까지 나왔습니다.


작금의 사태를 만든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체제에서 뉴스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우리가 든 마이크를 흉기로 만드는 일입니다.
흉기가 되어버린 마이크를 들고 침묵하고 묵인하는 것 역시 공영방송을 흉기로 만든 공범입니다.


뉴스라고 부를 수 없는 참혹하고 더러운 현장을 본연의 저널리즘의 모습으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손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 일부터 시작했어야 했습니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두 손과 입으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단단한 목소리를 내어 공영방송 MBC의 품격을 되찾고야 말겠습니다.



▲박연경 아나운서

“MBC 입사 이유 찾기 힘들어져”
박연경 아나운서(아나운서국, 2013년 입사)

공정보도와 신뢰성을 회복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고, 또 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뉴스의 아이템이 다양하지 않고 진실하고 공정한 방송이 보도 되지 않아 뉴스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불편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로부터 받은 MBC에 대한 질타와 시청률 하락에 허탈함을 느꼈고, 시청자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한 존경하던 선배들이 업무와 상관없는 부서로 배치되면서 MBC 입사를 간절히 원했던 이유를 찾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나운서로서 방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방송을 하는 게 죄송스러웠습니다.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통과하고 입사한 MBC에서의 방송은 제겐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 혼자만을 위함이 아닌 방송국 전체를 보며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MBC’가 다시 되는 좋은 날, 좋은 방송으로 동료들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날까지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정 작가

“PD수첩 비정상 끝낼 때가 됐다”
조희정 작가(시사제작국 PD수첩)

저수지에 돌멩이를 던지면 이내 물결이 생긴다. 파동이 생기는 것은 단지 돌멩이 탓일까? 아니다. 저수지 때문이다. 자극을 받으면 물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한상균’ 아이템이 가로막히면서 PD수첩으로부터 시작된 파동은 작은 물결을 넘어 파도를 치더니 언론적폐라는 둑을 마침내 부수려 하고 있다. 팩트를 쫓아 진실을 알리는 게 직업인 우리가 한때 참는 게 미덕(?)이라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자위했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한순간 많은 게 달라졌다. 이렇게 물길을 낼 수도 있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던 걸까.


언제부턴가 PD수첩 작가라고 말하기 부끄럽기도 했다. 아무도 환대하는 이가 없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찔러대기도 했다. 비정상인 PD수첩에서 작가로 이름을 올리는 동안 ‘나도 부역자가 아닐까?’라고. 그게 서러워 그만둘 땐 국장실에 x이라도 싸고 그만두겠다고 막말도 했다.


담당PD가 먼저 제작 중단을 결심했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작가로서 함께 겪었던 PD수첩의 비정상을 끝낼 때가 됐다,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었다. 왜 이런 일에 MBC 직원도 아닌 작가가 나서느냐고, 다 끝나고 나면 뭐가 남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우리 손에 무엇이 남아 그것을 얻고자 나선 것이 아니다. 다만 17년 전 방송작가를 시작한 이유였던, <우리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PD수첩>의 작가로서 부끄럽지 않게 우리의 이름을 다시 올리고 싶어서다.


다가오는 가을에는 모두 함께 빛깔 좋은 열매를 수확했으면 한다. 속까지 썩은 과일은 이제 버릴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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