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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 살리고, 잘 팔리면 금상첨화…책 쓰는 기자들

출판시장 불황에도 서적 출판 이어져
다양한 주제…베스트셀러 오르기도

김창남 기자2017.08.19 08:50:19

“나는 언론개혁이 뭔가 대단한 게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대법원, 이의 있습니다)과 같은 기획이 일상적이라면 언론개혁이 시작된 것이고, 이 책 수준의 기사가 많아지면 언론개혁이 이루어진 것이다.”(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페이스북 내용 중 일부)


불황을 겪고 있는 출판계 분위기와 달리 기자들이 쓴 다양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사나 칼럼 등을 엮은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책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는 것.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출판(저술)저널리즘’으로 평가받을 만한 책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저널리즘은 지면에 담기 힘든 ‘긴 호흡’의 콘텐츠를 다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사와 달리 기자 개개인의 시각과 관점 등을 오롯이 담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스타필드 코엑스 도서관.(뉴시스)

권석천 JTBC 보도국장이 지난달에 낸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경향신문 이범준 법조팀장의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2009년)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법조팀에서 오랫동안 취재해 온 권 보도국장은 이 책에서 ‘이용훈 대법원’(2005~2011년) 시절 논쟁다운 논쟁을 벌였던 이용훈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진보적 판사들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심도 깊은 취재가 뒷받침돼야 하는 이런 책들은 누군가는 연구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일이지만 지난하고 대중적 조명을 덜 받는 작업이다. 하지만 판매 부수를 떠나 그 가치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부장 출신인 이희정 한국일보 기자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기자 상당수가 전문성이 쌓이면 그 지식을 책으로 내는 ‘출판(저술)저널리즘’이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았다”며 “출판 저널리즘으로 평가되는 책들은 이론뿐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력과 통찰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들기 때문에 얼마나 팔렸는지를 떠나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취재 분야 넘어 다양한 주제 접근
올해 나온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해 탄핵정국과 올해 대선 등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책뿐 아니라 경제·경영 서적 등이 대세를 이뤘다. 또 취재영역 외에 평소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분야에 대한 지식을 풀어낸 책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을 다룬 책으로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의 <굳세어라 문재인>,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공저인 <문재인 노믹스> 등이 올 상반기 출간됐다.


한겨레 특별취재반의 <최순실 게이트-기자들, 대통령을 끌어내리다>는 최순실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며 대통령을 탄핵하기까지 긴박했던 최순실 게이트 취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았고, 오대영 JTBC 기자 등의 공저인 <탄핵, 헌법으로 체크하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헌법’을 통해 되짚어본 책이다.


불황을 타고 정창원 MBN 경제부장의 <1조원의 사나이들>, 이신영 조선일보 기자의 <한국의 젊은 부자들>, 박유연 조선일보 기자의 <난생처음 경제공부>,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등이 공저한 <발칙한 경제>, 정선영 연합인포맥스 기자의 <7일만에 끝내는 환율 지식> 등 경제·경영 저서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취미를 전문지식으로 끌어 올린 책으로는 김형찬 한겨레 기자의 <음악의 재발견>, 조승원 MBC 기자의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등이 있다.



이외에도 SBS 미래부 공저인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특별취재팀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권태호 한겨레 기자의 <느리고 불편하고 심심한 나라>, 정세진 동아일보 기자의 <시장과 네트워크로 읽는 북한의 변화>, 연합뉴스 특파원 공저인 <나는 특파원이다>, 양승진 코리아헤럴드 기자의 <영자신문을 활용한 영어학습법 ENIE> 등이 올해 기자들이 쓴 책들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주제를 다룬 책들이 불황 속에서도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16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출판산업 총매출액은 7조5897억원으로 전년대비 3.8%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초판(평균 3000부)정도 팔아야 체면치레가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만만치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1만부 작가’도 흔치 않은 상황에서 기자 등 언론인들이 낸 책들 가운데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경우도 적잖다.

MBC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목청껏 부르짖었던 김민식 PD의 자기 계발서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2017년 1월)의 경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출간 4개월 만인 지난 5월 38쇄를 찍었다. 2년 전 경영진의 부당 인사에 대한 분을 삭이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던 게 계기가 됐다.


그동안 기자들이 쓴 책이 출판 업계의 이목을 끈 사례는 적잖다.
장철진 전 기자(당시 매일경제)가 쓴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2006년)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지금까지 40만부 가량 팔려 재테크 분야에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다. 또 신웅진 YTN 기자가 2006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도 출간 1개월 만에 14만부를 넘겼다.


이런 선풍적인 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테디셀러로 이름을 올린 책도 적잖다. 김민구 전 매일경제 기자(현 이뉴스투데이 부국장)가 2008년 쓴 <경제상식사전>의 경우 개정판을 포함해 총 34쇄를 찍었고, 박지환 조선비즈 기자의 아동과학도서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2007년)도 출판 불황 속에서도 10만여권이 팔렸다.


김민구 기자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고 1년 1~2번씩 꾸준히 콘텐츠를 갱신해 왔던 게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잘 팔리는 책은 이유 있어
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다양한 독자층이 있는 만큼 기호 역시 제각각이기 때문에 단순화하긴 쉽지 않다. 더구나 ‘잘 팔린 책’이 꼭 ‘좋은 책’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잘 팔리는 책엔 나름 이유가 있다. 우선 기사나 칼럼에서 썼던 내용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지면이나 온라인 등을 통해 소개된 것을 묶어 낼 경우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기만의 시각과 고민 등을 덧씌우는 후속작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지난 2014년 운명을 달리한 고(故) 구본준 한겨레 기자가 대표적 사례다.


한 종합일간지 전직 출판담당 기자는 “구본준 기자 역시 초기엔 기획한 기사를 중심으로 책을 내다가 틈새로 찾았던 게 건축이었다”며 “문화부에서 건축분야를 전담하며 독자들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두 남자의 집짓기>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 등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볼 수 있는 다양한 책을 냈고 ‘땅콩집(한 필지에 단독주택 2채를 나란히 짓는 것)’을 직접 짓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둘째, 차별화할 수 있는 포지셔닝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전략이다. 포지셔닝이 잘 된 책의 경우 무엇보다 후속 작업으로 이어가는데 용이하다. 실제로 신익수 매일경제 여행전문기자는 ‘총알’ ‘닥치GO!’란 타이틀로, 박지환 조선비즈 기자는 ‘○○도 모르는 △△이야기’식으로 특화했다.


박지환 기자는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유용하고 재미있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특별한 주제에 관심이 없다면 독도 등 정기적으로 회자될 수 있는 주제를 잡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셋째, 기사와 연계해 쓸 경우 기획 단계부터 저술까지 구상하는 것 역시 주요 키포인트다. 출판 기획자들이 기자들이 쓴 기획기사나 블로그 등을 보고 출판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신익수 기자는 “지면만 메운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책을 만든다는 생각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며 “전문기자란 타이틀이 있다 보니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좋든 싫든 자기를 알릴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책”이라고 강조했다.

개인 브랜드화를 위한 도구
기자들에게 책은 기자 개개인을 브랜드화 할 수 있는 도구로써 여전히 유효하다.
네이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뉴스가 소비되는 시대에서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은 물론 매체 이름조차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힘들어졌다. 반면 네이버의 모바일 정책마저 ‘기자페이지’를 강화하면서 기자 개개인의 브랜드화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더구나 기자들의 전문성 등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저술 활동은 기자들의 전문성을 검증받을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에서 정년퇴임하고 여행 작가 겸 시인으로 활동 중인 이호준 전 기자는 “기자들이 미래를 위해서라도 현재 업무 연관성을 떠나 좋아하는 일에 포커싱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그러다보면 또 다른 전문 분야가 생기고 거기에 따라 책, 강연 등으로 확장성도 커진다”고 조언했다. 이 전 기자 역시 현역시절엔 여행분야를 담당한 적이 없지만 블로그에 올린 그의 글을 유심히 본 출판사가 제안해 책(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으로 엮은 게 인연이 돼 현재 여행작가 겸 시인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 때문에 기자들의 저술 활동을 보다 권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는 “일반 독자들이 기자들이 쓴 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정보보다는 그 기자가 가진 시각이나 관점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저술은 기자의 생각과 시각을 반영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내는 것이 저널리스트로서나 저술인으로서 성숙하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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