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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아니라 영업사원”…그의 비극 뒤에 독립채산제가 있다

민영뉴스통신사, 수수료 받고
지역본부 운영권 사업자에 넘겨
함량미달 본부장들 사업체 인식
기자 영업 내몰며 돈벌이 급급

강아영·김달아 기자2017.02.14 22:41:43

“A기자가 나약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개인에게 모든 문제를 돌리는 편리한 해석이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 처하면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A기자는 기자이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뉴스통신사 부산본부 A기자의 소식에 전·현직 지역 민영통신사 기자들은 착잡해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그의 심정이 100% 이해된다” “이런 일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한숨과 함께 흘러나왔다. 지역 민영통신사 기자들은 A기자가 겪은 일이 자신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배타적인 기자단 운영 탓에 취재에 어려움을 겪고, 회사에서 광고영업에 내몰리는 건 비단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민영통신사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기자단 가입사와 좁혀지지 않는 차이
민영뉴스통신사 지역본부는 대부분 지역 기자협회에 가입돼 있지 않다. 뉴시스인천경기, 뉴시스광주전남, 뉴시스충북, 뉴시스전북 등 몇 개 사만 협회 소속사로 등록돼 있다. 도청, 시경, 법조 등 주요 기자단 등록도 하늘의 별따기다. 민영통신사 기자들이 출입처 언저리에서 발품을 파는 이유다.


▲대부분의 지역 민영통신사 기자들은 배타적인 출입기자단과 광고영업을 강요하는 회사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기자들은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역본부 구조가 모든 폐단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지역본부 기자들은 A기자와 마찬가지로 취재원과의 관계나 청사 출입, 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B기자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취재하고 직접 현장에서 본 것들을 단독기사로 썼는데 기자단 소속 기자가 홍보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코지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비회원사인 곳에 정보를 주느냐. 그런 게 있으면 우리에게 먼저 전화를 하라’고 하더라”며 “판결문 같은 경우에도 기자단은 서로 풀을 하지만 우리는 발로 뛰면서 구해야 한다. 나는 공람조차 할 수 없어 재판을 다 방청한다”고 말했다.


C기자도 “판결문 받기도 힘들고 일일이 재판을 따라가지 않으면 공판이 언제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사건 기사 같은 경우에도 시경이 기자단에 푸는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남들보다 더 일찍 ‘마와리’를 돈다”고 말했다. C기자는 “차라리 신문은 통신사 기사를 보면서 흐름을 따라갈 수 있지만 우린 통신사라 누구보다 빨리 기사를 써야 한다”며 “먼저 기사거리를 인지해도 출입기자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보 확인을 안 해줄 때는 힘이 빠진다”고 했다.


지역본부에서 일했던 D기자 역시 “메일링하려 해도 출입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훨씬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기자단이 여러 취재원을 만날 때 난 겨우 한 명의 취재원을 만난다. 그 격차가 절대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본부 기자들은 지역 기자협회나 기자단 가입 역시 높은 벽이라고 했다. E기자는 “기자실 빈자리에서 기사를 쓰고 있으면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나가라’고 말한다”며 “명함을 주며 인사를 해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으로 출입하며 기사를 생산하고 친분을 쌓아야 그나마 기자단에 가입할 수 있는데 이를 원천 차단한다”고 말했다.


F기자도 “지역 기자협회나 법조기자단 등에 가입신청을 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늘 부결된다”며 “어떻게 떨어졌는지도 모른 채 항상 ‘아깝게 떨어졌다’는 얘기만 듣는다”고 했다.


지역 기자협회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지역 기자협회 한 관계자는 “꼭 배타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기협에 가입할 언론사는 경영상황이나 복지, 직업윤리 등이 중시돼야 한다”며 “지역 민영통신사들은 재무구조나 급여 상황 등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사권 휘두르고 광고영업 압박하는 회사
실제로 지역본부 대부분은 서울 본사와 법인이 다른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재무상태가 좋지 않거나 회사의 영속성이 담보되기 힘든 구조다. 이들은 본사에 연간 단위의 계약 보증금과 매달 수수료를 내고 통신사 제호를 받아 뉴스를 공급하는데 이 때문에 여러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먼저 언론사를 권력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기업 사주들이 손쉽게 운영권을 따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본부에서 일했던 G기자는 “대부분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본부를 맡는다”며 “본부장이라는 지위를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보도를 막거나 기사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E기자는 “본부장이 회사 홍보기사를 쓰게 하는 것은 물론 기업 비판기사를 적극적으로 막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해고에 대한 인사권이 각 지역 본부장에게 있는 만큼 함량 미달의 인력이 채용되거나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자들이 실적 미비를 이유로 해고되는 경우도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민영통신사에서 일했던 H기자는 “본부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 가족은 물론 기사라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사람들을 부장이라고 데려온다”며 “그 중 한 명은 취재원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 구속된 적도 있다”고 했다. C기자는 “해고 역시 거리낌이 없다”며 “내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예전에 실수한 것들을 들춰내 심각한 해사 행위라며 산골짜기에 주재기자로 보내버리고, 결국 사표를 쓰게 만든다”고 말했다.


연차에 상관없이 무리한 광고영업을 시키는 것도 큰 문제다. 지역본부에서 일했던 I기자는 “기사 작성도 광고 영업도 혼자 다 해야 한다”며 “3000만원을 해와도 다음에는 5000만원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는 7000만원을 바란다. 구제역이 터지든 메르스로 나라가 난리가 나든 광고를 물어오지 않으면 회사에서 눈총을 받는다”고 말했다. I기자는 “고마운 마음에 명절 때 공무원들에게 선물을 돌리기도 했다. 난 기자가 아니라 영업사원이었다”며 “다른 언론사 경력직 면접을 봤는데 ‘거기 다녔으니 광고는 좀 하겠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고 했다.


기자들은 이 모든 폐단이 지역본부를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봤다. F기자는 “독립채산제는 자격 없는 사람들에 의해 언론사가 휘둘릴 수 있는 구조”라며 “이런 식으로 언론사가 운영되면 A기자가 또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독립채산제 운영을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H기자는 “본사가 다른 회사라고 나 몰라라 돈만 받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 본부장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인력 관리를 어느 정도 본사가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D기자는 “민영통신사가 크려면 서울 본사와 지역본부 간 단합이 잘 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지역과 서울 본사가 더욱 공조해야 한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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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했던 내 친구를 기리며
정민규 오마이뉴스 지역공동체부 기자


A를 처음 만난 건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다. 과 동기인 녀석은 봄날의 햇살만큼이나 웃음이 밝은 아이였다. 훗날 기자가 되었을 때 “그럼 선배라고 불러야 하냐”고 조심스레 내게 물어오던 녀석에게 난 “우린 그런 거 없다”고 답했다. 사람에게 좀처럼 말을 잘 놓지 못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나였지만, A는 몇 안 되는 서로 말을 트고 지내는 기자였다.


A는 마음이 따뜻한 기자였다. 한번은 취재현장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지인을 우연히 만났다. 다음에 그 지인을 만났을 때 A는 동화책을 선물했다. 전에 보니 애들이 동화책 한 권을 나눠보던 게 생각나서 샀다는 게 선물의 이유였다.


부산에서 법원과 검찰을 취재한 A였지만 법조 기자단에는 속하지 못했고 기자실 사용도 힘들었다. A의 ‘기자실’은 검찰청 커피숍이었다. 북적북적한 커피숍에서 직원과 민원인 틈에 섞여 기사를 쓰고 청사를 나설 때면 꼭 경비 직원들에게까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다고 생각했다. A는 전날 저녁 전화로 다음 날 취재 일정에 관해 물었으니까. 다음날 보자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우린 그날 오전 취재를 함께 했으니까. 하지만 평범했던 A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달랐음을 나는 알아챘어야만 했다. 그날 점심을 조금 넘긴 시간 A는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미처 송고하지 못한 오전 기사와 한 줄 한 줄 손으로 눌러쓴 7줄의 짧은 유서를 남겨놓은 채. 유서의 내용은 이랬다.


‘가족들 보다 먼저 떠나게 돼서 죄송합니다. 몸도 정신도 너무 망가져서 더 이상 힘이 나질 않습니다. 결국 이런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국가기간통신사의 벽에 한없이 작아지는…제가 싫습니다. 결국 발로 뛰어 조금이나마 격차를 줄이려고 했지만 안 되네요. 모든 것이 제가 못난 이유겠죠.’


내 손에 넘겨진 이 몇 줄이 수백 줄이 될 때까지 수없이 읽어보다가 말문이 막혔다. 만약 그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쭙잖은 위로라도 던졌다면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미칠 듯이 밀려들었다. 그 시간의 분초가 알알이 깨져 순간의 모든 것이 내 잘못이 되는 기분이었다.


A의 빈소를 찾았던 취재원이 퉁퉁 부어 새빨개진 눈으로 내게 말했다. “평소 A를 만나면 자기 앞가림도 급하면서 그놈의 우리 민규는 잘 부탁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라”고. 난 또다시 고개와 눈물을 함께 떨구었다.


며칠 잠을 뒤척이며 생각해도 나는 도무지 그가 택한 방식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잘못된 선택을 한 A가 밉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한 뜻만큼은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젊은 기자가 제 뜻을 펼쳐 보이기도 전에 좌절을 먼저 겪고 날개가 꺾여야만 하는 우리의 언론 환경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했으면 한다. 멀리 있는 세상의 진실을 파헤치려 했으면서 정작 우리 안의 불편한 진실에는 침묵하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다.


A를 보내는 날, 빈소에서 주먹에 피멍이 들도록 땅바닥을 내려치며 통곡하던 선배들과 함께 다짐한다. 제2의 A를 만들지 않는 일은 남겨진 자들의 임무여야 한다. A기자의 명복을 빈다.

※A기자의 이름은 유족의 뜻에 따라 익명으로 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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