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인 최순실 드러낸 건 한겨레…박대통령 인터뷰하고 싶다"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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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

한겨레의 최순실 관련 보도는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4층 한구석에 위치한 편집국TF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다. 이 TF팀의 비공식 명칭은 ‘최찾사(최순실을 찾는 사람들의 모임)’. 현장 기자로는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인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가 팀장을 맡아 후배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9월20일 한겨레 1면에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등장시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언급된 기사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보도였다. 이후 한겨레는 1면을 통해 18차례의 단독 기사를 쏟아내며 사실상 이번 사안을 주도해왔다. 


31일 취재 과정과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을 묻기 위해 한겨레 사옥 6층 취재방에서 김의겸 기자를 만났다. 우연찮게도 이 방은 특별취재팀이 처음으로 모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밑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한겨레 보도를 통해 최순실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를 것 같다.
9월20일자에 최순실씨를 처음 등장시킬 때만 해도 그냥 무대 위에 최씨를 올려놓자는 생각이었다. 정권과 여당 집권세력이 워낙 강고했기 때문에 당장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최순실씨의 실명과 국정개입의 증거를 올려놓는 선에서 우리의 소임을 다하고 내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집권층 내부에서 후속 이야기들이 나올 것으로 봤다.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자부심도 있고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도 있다. 두려움이라는 건 이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 자부심을 느끼나.
TV조선의 선행보도가 있었기에 취재가 가능했지만 이후엔 그것을 훨씬 뛰어넘었다. 몸통인 최순실씨를 드러냈고,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내보냈다. 특히 가장 자부하는 건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취재 초기 가진 게 별로 없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끈질기게 보도했다. 다른 언론사들이 따라와 주지 않아 외롭고 고단했지만 열심히 싸웠다. 한편으론 우리 혼자만 이렇게 가다간 불씨가 사그라지고 말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와 다른 언론사가 전화번호나 주소, 문건 등을 요청하면 있는 대로 다 줬다. 국정감사 기간에도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제보나 기사 작성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면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른 언론사한테도 자료를 주라고 의원실에 얘기했을 정도였다.


-내부자들의 증언이 특히 많았다. 어떻게 취재하게 됐나.
취재 초기 손에 쥔 기사가 두세 건 밖에 없었다. 최순실씨와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 기사들은 내보내기 일주일 전부터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마땅한 후속보도가 없어 고민이 많았다. 몇 번은 끌고 가야 불이 붙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TV조선 보도를 마냥 재탕할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 취재를 했는데 의외로 입을 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보수층, 집권세력이 이 정권 들어 균열이 심하게 났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었다. 기업체 고위 임원이나 정부 내 핵심 권력조직에 속해 있는 분들이 귀띔을 해주면서 취재에 탄력이 붙었다.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과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경우에는 공을 많이 들였다. 이성한씨의 경우 JTBC가 10월3일 처음으로 그를 만났고 만난 지 며칠 만에 내용을 보도했는데 우린 그보다 더 빠른 9월7일부터 그를 네 차례 만나 16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그때는 이성한씨가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했기 때문에 끝까지 지키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JTBC가 먼저 보도해 김이 빠져 버렸다. 정현식씨 같은 경우에는 9월 초부터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남양주 집도 가보고 전화도 했는데 전혀 답이 없다가 주변 상황이 바뀌니 위험 부담을 안고 인터뷰를 수락했다. 남양주에서 4시간 동안 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 최순실씨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역할에 대해 생생하게 들었다. 정 사무총장은 모든 걸 다 써도 좋다며 사진 촬영까지 허락했다.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4층 편집국TF실에서 일하고 있는 한겨레 특별취재팀 기자들.


-9월29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잃어버린 고리’가 있다며 TV조선의 후속 보도를 촉구했다. 10월25일 TV조선이 보도한 의상실 CCTV가 그것이었나.
맞다. 그게 잃어버린 고리였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TV조선이 굉장히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걸 알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옷을 만드는 의상실이 있고, 그 의상실에서 최순실씨와 윤전추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이 옷 만드는 걸 기다리면서 박 대통령에 대해 아주 여러 가지 잡담을 나눴으며 둘이 나눈 얘기가 굉장히 폭발력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동영상과 음성으로 녹화·녹음이 됐는데 그걸 TV조선이 입수했다는 얘길 들어서 당시에는 그 영상이 보도되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지난 25일 TV조선에서 예고를 했을 때도 드디어 나올 게 나온다고 생각했다. 막상 뉴스를 보니 얼추 비슷하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폭발력 있는 얘기가 나올 환경도 아니었고 음성도 안 잡히는 것으로 지금까지 파악하고 있다. 경쟁하는 입장에서 한편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뭔가 더 있었던 것은 아닌가, 폭발력 있는 내용이 없었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거의 한겨레 단독 플레이로 상황을 이끌어갔는데 막상 10월24일 JTBC 보도로 이 사안이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서운하거나 아쉽진 않았나.
아쉬웠다.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취재 과정에서 TV조선이 의상실 영상을 입수했다는 걸 알았듯 최순실씨 주변 사람들이 동영상과 하드디스크(당시에는 태플릿PC인 줄 몰랐다) 등 녹취·녹음 형태로 증거를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얻기 위해서 저희들로선 나름대로 시간을 갖고 정성을 들였다. 이성한 사무총장 기사 같은 경우에도 그와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 건 혹시나 결정적인 물증을 줄까 해서였다. 그렇게 애썼는데 한방에 역전 당한 거다. 방송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꼈고 한편으론 우리가 3~4일 이 문제를 보도하고 그쳤다면 과연 JTBC의 태플릿PC 보도로 이어졌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겨레가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등장시켰고 불이 꺼지지 않게 이슈를 계속 끌고 갔기에 JTBC만 기억하고 한겨레는 평가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나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JTBC를 비롯해 TV조선, 세계일보 등등 최순실 보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한겨레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지금 언론 보도는 다들 비슷한 것 같다. 최순실씨가 국정농단에 어느 정도로 개입했는지, 최순실씨 부역자들이 얼마나 전횡을 했는지 모든 언론들이 나서서 밝히고 있다. 다만 저희들이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정유라씨의 2세, 고영태씨의 직업적 배경, 최순실씨의 종교적인 문제 등 남녀 간의 일이나 샤머니즘 같은 것들이다. 사실 그 부분은 가장 먼저 알고 있었으나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인권의 문제라 생각했고 이번 사안의 본질이 아니라고 봤다. 이건 사회 시스템,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문제로 이 사안을 보면 본질을 흐릴 것이라 생각했다.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취재를 하면서 이번 사태가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의 기업과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를 보면 일종의 반칙을 하고 있다. 출세하거나 성공하고 싶으면 서로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가에 헌신하고 한 단계씩 올라가야 하는데 비선실세에 복종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 한다. 안종범 수석,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보면 편법을 위해 얼마나 비굴하게 처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재벌도 마찬가지다. 재벌 오너들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에 선을 대려는 본능이 DNA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었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 대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퇴행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의 근저, 문화 풍토 등을 이 기회에 같이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굉장히 거대하고 기나긴 과제다. 박 대통령이 하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검찰이든 언론이든 정화기능을 가진 조직이라면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씨에게 선을 대서 반칙과 편법을 저질렀거나 저지르려고 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그 사람들이 패가망신할 정도의 교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이 사안을 제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보나.
양쪽 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 내부 분들한테 얘기를 들으면 정말로 할 뜻이 있는 것 같다. 검찰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이미 반쯤 죽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 죽어있는 권력을 살리기 위해 검찰이 같은 배를 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검찰도 죽는 것 아니겠나. 최순실 스캔들에 대해 검찰 스스로 살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목소리를 낼 거다. 반면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힌 인연이 있어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검찰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최재경씨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앉힌 건 최소한 검찰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청와대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순종할지 검찰 내부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을 거라고 본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답하기가 참 어렵다. 하야를 해도 고민이고 하지 않아도 고민이다. 저도 답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건 알겠다. 박 대통령이 지금 하는 것처럼 꼬리 자르기를 하거나 덮어버리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데 그런 방법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겨레 특별취재팀의 취재 기간은 애초 9월5일부터 10월9일까지였다.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는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향후 후속보도 계획은.
이번 사안을 추적하면서 아직 답을 못 낸 것들이 꽤 있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창조융합본부를 좀 더 들여다보고 싶다. 문화계에서 최순실씨와 차은택씨가 벌였던 일들로 막대한 국가예산이 낭비됐는데 그에 일조했거나 앞장섰던 공직자들에 대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와 관계없이 계속 취재해서 다 털고 싶다.


-현재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싶다. 어떤 결핍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아버지 어머니를 불행하게 잃은 것에서 오는 트라우마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이 안 된다. 성장과정에서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실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습 사이의 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 간극만큼 허전하고 자신 없고 불안한 내면의 세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꽁꽁 감추고 있던 세계를 그나마 제대로 알고 정신적으로 위로해준 사람이 최순실씨가 아니었나 등등 이 분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형성돼 왔고 어떻게 여기까지 포장하고 감춰왔는지 등을 인터뷰를 통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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