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SBS 기자들 "최순실 게이트 침묵, 참담하다"

노조 잇단 성명 "보도 파산...누가 책임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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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길 포기한 결과, 이제 만족하는가.”(언론노조 SBS본부 25일 성명 제목)
“KBS의 참담한 추락, 누가 어떻게 책임질 건가?”(언론노조 KBS본부 26일 성명 제목)

TV조선과 JTBC 등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최순실 게이트’ 보도로 연일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KBS와 SBS 등 지상파 방송사 내부에서 자사의 보도현실을 비판하고 자성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26일 성명을 내고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 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JTBC의 지난 24일 '최순실 PC 파일 입수…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 받았다' 리포트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은 해당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인 25일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본부는 종편 뉴스의 보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기자들의 심경을 거론하며 그동안 내부에서 수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는데도 묵살한 보도본부 간부들과 사측을 비판했다. 성명에 따르면 ‘최순실’ 이름이 처음 언론에 거론된 지난 9월20일, 보도 편집회의에 실무자 대표로 참석한 KBS기자협회장이 ‘왜 이 문제를 뉴스로 다룰지 의논조차 하지 않냐’고 했지만 정지환 보도국장 등은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라며 묵살했다.

또 지난 5일 열린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는 ‘최순실 전담 TF’ 구성과 심층 취재에 나설 것을 요구했지만 보도본부장이 특정 정치세력의 정략적 공세에 불과하다면서 노측의 요구를 일축했다고 전했다.  

KBS본부는 “‘최순실’ 사건에 대해 남일처럼 방관하고 이른바 ‘쉴드’를 쳐온 보도책임자들은 이화여대 총장이 사퇴한 뒤인 지난 20일에서야 – 최순실 의혹이 거론된지 한 달만에 – 처음 ‘최순실’ 사건과 관련한 KBS만의 독자적인 취재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단독 인터뷰’와 같은 특종을 요구하는 ‘뻔뻔함’마저 내비쳤다”고 개탄했다.

이어 “대통령에 대한 ‘하야’와 ‘탄핵’ 얘기가 나올 만큼 종편과 신문이 결정타를 날린 뒤에야 KBS보도책임자들은 오늘 아침 허겁지겁 ‘최순실 사건 전담 TF를 구성했다. 그래놓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는 보도본부장의 당부는 무능함인가? 뻔뻔함인가? 아니면 교활함인가?”라고 꼬집었다.

KBS본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 ▲‘최순실 국정 농락’과 관련한 특집 다큐와 토론프로그램 준비 및 편성 ▲뉴스 편집에 취재▲제작 실무자 측의 의견을 적어도 한두 건은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 구축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결론을 못낸 안건들의 조정과 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기구(외부 전문가로 구성) 마련을 촉구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윤창현) 역시 하루 앞선 25일 성명을 통해 자사의 보도와 대응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SBS본부는 “JTBC보도를 통해 드러난 대통령 연설문과 청와대 주요 국가기밀의 최순실 사전 유출 관련 내용을 접하며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면서 “국가가 국가답지 못했던 이유가 만천하에 폭로된 데 대한 충격이 그 한 축이라면 나머지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다 이제는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우리 보도의 현실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SBS본부는 여러차례에 걸쳐 보도행태에 대해 경고하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사측이 특별취재팀 구성조차 묵살하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며 “그토록 얕잡아 보던 종편의 보도내용을 손가락 빨며 바라보는 처지로 우리 모두를 전락시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JTBC보도는 국정을 농단해 온 박근혜 정권에 대한 사망선고인 동시에 스스로 언론이길 포기했던 모든 언론에 대한 파산선고”라며 “SBS 역시 단 한 발짝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SBS본부는 이와 관련해 사측의 사과와 대응 방안 마련제시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들은 “역사책에 기록될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을 앞에 두고 사태의 파장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끝없는 청와대 눈치보기로 보도를 넘어 사회적 공기로서의 SBS위상에 먹칠을 한 책임자들은 먼저 전 구성원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면서 “사회적 신뢰를 바닥부터 파괴해 온 과거의 관행과 혁명적으로 단절한 방안을 진지하게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공정방송과 관련한 기존의 노사합의를 전면 재검토해 대주주와 경영진의 보도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단단히 굳은 문제의 뿌리를 발본색원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들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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