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 질문에 보복인사로 답한 KBS의 민낯

정연욱 기자 갑작스런 제주 발령
사측 "인사 원칙에 따른 인사"
열여섯 기수 부당인사 철회 성명
정기자 지노위에 구제신청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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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최근 기자협회보 기고를 통해 ‘이정현 녹취록’ 보도에 침묵하는 자사 보도국을 비판한 정연욱 기자를 돌연 제주도로 발령냈다. KBS 기자들은 이를 명백한 ‘보복성 인사발령’으로 규정하며 비판성명과 항의 피켓시위 등을 이어가고 있다.


KBS는 지난 15일 오후 보도본부 경인방송센터 소속 정 기자를 KBS제주방송총국으로 발령냈다. 지난 3월부터 경인방송센터에서 활동해 온 정 기자는 18일부터 9월3일까지는 파견으로, 이후부터는 제주방송총국 소속으로 근무하게 된다. KBS 인사체계상 현 소속 부서 근무기간이 6개월을 넘지 않은 경우 인사발령을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발령이 났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18일부터 ‘청와대 보도개입’에 침묵하는 보도본부 내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기자협회보에 기고했던 정연욱 기자의 갑작스런 제주 발령 등과 관련해 부당인사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KBS 안팎에서는 정 기자에 대한 갑작스런 인사를 명백한 ‘보복성 발령’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정 기자가 지난 13일 기자협회보 실명 기고를 통해 ‘이정현 녹취록’ 보도에 침묵하는 KBS의 현실과 간부가 주축이 된 사조직 ‘KBS기자협회 정상화를 바라는 모임’을 비판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정 기자는 지난 13일 기고가 나간 뒤 소속 부서장인 경인센터장을 통해 취업규칙 위반 등의 명목으로 정지환 KBS 보도국장으로부터 ‘사유서 제출’ 요구를 받았다. 이번 인사는 이로부터 이틀 만에 이뤄졌다. 7년차 정 기자는 신입기자들이 의무적으로 하는 지역순환근무를 2012~2013년 순천방송국에서 마쳤다.


이와 관련해 KBS 사측은 지난 17일 보도본부장과 인력관리실장, 노사협력주간, 법무실장 명의로 된 공식입장을 통해 “지난 15일 단행된 인사 발령은 인사원칙에 따른 인사였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간략히 언급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은 연명 성명을 통해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라고 밝혔다.


KBS 기자들은 인사발령이 난 당일 KBS경인방송센터 평기자들의 성명서를 시작으로 하룻밤 새만 다섯 개 기수(33·35·39·41·42기)가 연명 성명을 보도정보게시판에 올렸다. 19일 현재 부당인사 철회를 요구하는 연명 성명을 낸 기수는 열여섯 기수(최고 11기~최저 43기)에 달한다.


▲정연욱 기자의 기자협회보 기고문.

KBS경인방송센터 평기자들은 지난 15일 오후 ‘또 다시 칼바람이 불었다’는 제하 성명을 통해 “단칼에 당사자에게는 어떤 언질도 없이 수백 킬로미터를 떠나야 하는 보복 인사가 이뤄졌다”며 “우리가 모두 알고도 모르는 척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그 이야기를, 기자들의 단체인 기자협회의 협회보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이런 식의 보복인사를 당하는 게 맞는 말인가”라고 밝혔다.


특히 입사 20년차가 넘은 24기부터 11기까지 기자들 52명도 ‘조직의 근간을 해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현 보도본부의 상황과 간부들의 잘못을 엄중히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명에서 “기자들을 통제하려는 칼날이 조직 내부를 난도질하고 있다”면서 “이런 ‘터무니없는 인사’는 조직 수뇌부의 생각과 질서에 너희 기자들은 그저 순응하라는 압력이 아니라면 무엇인가?”라고 일갈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KBS기자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정 기자는 이번 인사발령이 사측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일탈했다는 취지를 담아 이번 주 내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예정이다. 또 법원에 인사무효 가처분 신청을 낼지 여부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부터 이번 인사 등에 대한 항의 차원의 피켓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KBS본부는 21일 본관 로비 등에서 이번 사안과 관련한 조합원 총회를 예정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8일 부당인사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고대영 KBS 사장에게 면담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KBS본부 관계자는 “교섭대표 노조(KBS노동조합·1노조)를 통한 고충처리요청 등 부당인사 철회를 위해 사내·외에서 합법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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