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했던 과로와 스트레스가 하루아침에 날 갉아먹었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2부:위기의 기자들 ⑤기자 건강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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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부음기사 분석했더니
지난 6년새 기자 48명 별세
언론인 평균수명 가장 짧아

하루 평균 10시간38분 근무
상명하복 분위기에 음주 일상
기자들 월간 음주율 91.1%


기자들이 아프다. 어떤 기자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기도 했다. 병과 죽음은 그렇게 우리 삶 속에 깃들어 있다. 여기까진 모든 인간이 마주한 존재론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 기자들에겐 그게 좀 잦다. 많이들 아프고 많이들 죽는다. 병과 죽음은 분명 개인적이다. 당사자와 가족에게 가장 큰 부담이 짐 지워지고, 이를 온전히 감내하는 것도 결국 스스로의 몫이어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에 대해 입을 다문다. 이 순간 ‘기자의 일’ 자체가 죽음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말 못하는 일이 되기 쉽다. 여기엔 ‘기자의 일’과 ‘발병’ 사이 딱 떨어지는 인과관계를 정립하기 어렵다는 점도 기여한다. 분명 이는 인간 이상의 영역에 해당되는 몫이 크다. 그래서 역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선택할 수 없거나 개별적으로 치러야 하는 ‘각개전’이 아니라 함께 바꿀 수 있는 부분에 힘을 쏟는 것이다. 이를 테면 기자들이 일하는 ‘환경’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는 식으로 말이다.

“자고 일어났더니 몸 가누기 힘들어”
지난 2014년 8월 A지역일간지의 ㄱ기자는 휴일 아침 몸을 가누지 못해 자꾸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일을 겪었다. 급하게 찾은 병원에서 그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퇴원은 한 달여 만에 했지만 그는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로 이후 수 개월간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 금연한 지는 2년이 됐고, 부정기적이긴 했지만 운동도 해오던 차에 벌어진 일이었다.


B방송사 ㄴ기자는 지난해 10월 몸의 이상을 느껴 검진을 받은 끝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확진을 받았다. 수개월간의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치고 퇴원한 그는 현재 외부접촉을 삼간 채 요양과 통원치료를 하고 있는 상태다. 면역력이 전무해 감기라도 걸리면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C신문사 ㄷ기자는 지난 2012년 말 ‘만성신부전증’ 확진을 받았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가족력도 없었고, 평소 몸의 큰 이상도 못 느끼던 터였기 때문이다. 입원과 6개월의 휴직 끝에 복직한 그는 요즘에도 일주일에 세 번 병원을 찾아 투석을 받고 있다.


병마와 싸우고 있거나, 싸운 끝에 이겨낸 기자들의 사례다. 많은 기자들이 아팠고, 아프다. 또 아플 것이다. 기자들의 근로환경을 오랜 시간 다뤄온 한 노무사는 “이런 경우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실제 많은 기자들이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최근 몇 년 새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해 8월 정 모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가 암으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엔 박 모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암으로 숨졌으며, 차 모 신아일보 기자가 지병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박 모 부산일보 부장이 지난 2013년 폐암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으며, 최 모 경인일보 사회부장도 같은 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2012년엔 서 모 경향신문 팀장이 암투병 끝에 목숨을 잃었고, 이 모 한겨레신문 부국장이 강을 건넜다. 2011년엔 오 모 시사인 편집기획팀장과 공 모 동아일보 차장이 암으로 숨졌고, 2010년엔 박 모 전 경남CBS 보도국장과 고 모 MBC 보도국 차장이 별세했다. 기자협회보가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언론인 부고기사 1000여건을 자체 취합한 결과 총 48명의 기자가 지난 6년 새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의 지난 2009년 보도(2000~2008년까지의 부고기사 종합)와 합산하면 지난 16년간 병과 사고, 자살 등으로 운명을 달리한 현직기자 수는 75명에 달한다. 한 해 평균 4.8명 꼴이다.

언론인 평균수명 가장 짧은 직업군
사람은 죽는다. 기자도 죽는다. 문제는 ‘기자들의 병과 죽음’이 ‘기자의 일’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 사이 명확한 인과관계를 설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질병의 인과관계는 특정 질병에 대해 특정 원인이 기여하는 정도가 확률로 표현되는 문제인데, ‘기자의 일’은 한 개인의 삶과 일상 전체를 포괄하는, 너무나 큰 개념이다. 더욱이 ‘기자’라는 직군으로 묶여 있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가족력과 습관 등에서 이미 개인차가 너무나 크다. 초기 조건이 다르고 변인통제도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높은 확률의 기여 위험도를 막연히 예상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단 말이다. 다만 기자들의 병과 죽음은 이들의 업무패턴과 근로조건 등 ‘환경’과 상당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실제 ㄱ, ㄴ, ㄷ기자도 “일상으로 받아들였거나”, “가족력이 없는데도” 사전 징후 없이 갑작스레 중병을 앓게 됐다. 뇌경색과 암 등 모두 발생 원인이 분명치 않은 만큼 이들은 막연히 ‘과로와 스트레스가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정도였다. 기자의 일이 발병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고리를 제시하긴 어려워도 합리적인 의심을 갖기엔 충분하다는 의미다.


우선 기자는 건강의 지표 중 하나인 평균수명이 짧은 직업군에 속한다. 지난 2011년 김종인 원광대 장수과학연구소장이 1963년부터 2010년까지 48년간 언론에 보도된 3200여개의 부음기사와 통계청 사망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언론인은 평균수명이 가장 짧은 직업군으로 꼽혔다. 언론인의 평균수명은 67세로, 가장 높은 종교인(82세)과 15년차를 보였다. 최근 10년치(2001~2010년)에 대한 연구에서도 언론인은 하위권인 72세를 기록해, 종교인(82세)과 10년차를 보였다. 직업군에 따라 차이가 이토록 크게 나는 것은 직업이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혜은 서울성모병원 교수 등이 올 초 고용보험 가입 노동자 1143만여 명을 대상으로 13년(1995~2008년) 동안 직군별 노동자들의 사망률 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직업이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특히 기자들의 건강, 수명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암 등의 중병이다. 앞선 본보 부음기사 조사결과 기자들은 암 등 큰 병에 노출되는 빈도가 상당히 잦았다. 2000~2015년 기간 암으로 목숨을 잃은 기자는 총 48명으로 전체 사망자 중 64%를 차지했다. 위암·췌장암·대장암 등 소화기계통 암 사망자(17명)가 가장 많았고, 폐암 등 호흡기 암 사망자(9명)도 다수였다. 그 외 간질환 등 간암(6명) 등이 뒤를 이었다. 젊은 기자들이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것도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특징 중 하나다. 지난 15년간 별세한 기자 중 40대는 35명, 30대는 15명이었다. 기자의 길에 접어든 이상 연령 고하를 막론하고 건강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자, 그들이 사는 세상
질환이나 병, 이에 따른 죽음은 유전적인 요인과 개인의 습관이 만들어 내는 결과다. 이를 가속시키거나 강제하는 것은 기자들이 일하는 환경이다. 기자의 경우 무엇보다도 노동시간 자체가 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한국의 언론인 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자들은 하루 평균 약 10시간 38분을 근무한다. 1일 법정근로시간을 2시간 38분 초과한 양이다. 특히 매체별로 라디오/종편/보도전문채널 기자의 근무시간이 11시간 36분, 부서별로 사회부 기자의 근무시간이 11시간 27분으로 가장 길었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경력이 낮아질수록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1년 미만과 20년 이상 기자는 하루 100여분의 차이가 났다. 주요 일간지 한 기자는 “마감이나 발제 스트레스를 항상 갖고 있는 게 이 일 아니겠나. 완전히 쉰다는 게 이 일엔 없는 거 같다”며 “디지털 전환 움직임으로 업무시간과 쉬는 시간 구분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거 같다. 따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고 했다.


결국 이는 기자들을 음주와 흡연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끄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먹는다. 이게 기자들의 건강을 갉아먹지만 업무 부담은 여전하다. 스트레스에 더욱 취약한 상황에서 정량의 업무는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와 다시 담배와 술을 부른다. 이 과정에서 축나는 것은 기자들의 건강이다. 같은 자료에서 우리나라 기자들의 흡연율은 32.5%였다. 이는 ‘2013년도 국민건강 영양조사 결과(질병관리본부)’의 우리나라 국민 성인 전체 흡연율과 비교할 때 8.4%가 높은 수치다. 음주행태에서도 ‘한국의 언론인 2013’에 나온 음주 정도를 종합하면 기자들의 월간음주율(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한 분율)은 91.1%에 달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4년 국민건강통계에서 우리 국민의 월간음주율은 남성이 74.4%, 여성이 46.4%였다. ‘압도적’으로 술을 먹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레 불거지는 일이 과로사(돌연사)다. 구 모 한겨레신문 기자, 임 모 문화일보 기자, 박 모 충청일보 기자, 배 모 연합뉴스 기자, 이 모 경향신문 기자, 김 모 중앙일보 기자, 남 모 경남일보 기자 등 너무나 많은 기자가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이들 기자들은 모두 출장이나 취재, 휴식 등의 과정에서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돌연사는 부검 시 뇌출혈, 심장마비 등 ‘뇌·심혈관 관련 질환’으로 판정나는 경우가 많은데 본보 부음기사 조사에서 이 같은 질환으로 운명을 달리한 기자 수는 전체 중 18.7%(14명)에 달했다.

과로사 산재처리 어려워
과로사의 가장 큰 문제는 산재처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유족들이 살아가는 데 큰 안전망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1~2014년 과로사의 산재 승인율은 23.8%에 불과했다. 또 지난해 2/4분기 과로 산재 불승인 124건의 판정서 전수 분석결과 42.5%(56건)가 근로시간 입증불가 등 객관적 인정요건 미비로 거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본보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기자직군 산재 신청 및 승인 현황’에 따르면 2011년 37건 중 10건, 2012년 29건 중 7건, 2013년 26건 중 5건의 산재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작가·기자 및 출판전문가로 합쳐진 2014년엔 37건 중 9건, 2015년엔 24건 중 2건이 거절됐다. 이는 질병과 업무상 사고를 모두 포함한 통계인데, 불승인된 대다수는 과로사 등의 주요 사인으로 꼽히는 뇌심혈관 질환(뇌졸중, 심장마비 등)에 해당됐다.


법률사무소 새날 권동희 노무사는 “과로사는 뇌심혈관 질환이 진행되다 갑자기 드러난다. 산재로 인정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기자들에게 주어진 근무시간이 많지만 공단의 인정요건이 까다롭다. 부검을 했는데 추정 사인이 안 나오면 일단 산재로 보지 않는다. 또 아무리 과로를 해도 이를 객관적으로 증빙하기 어렵다. 결국 유족이 입증을 해야된다”며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마감압박 등의 요인은 공단에서 중히 여기는 부분이 아니다. 굉장히 기계적이기 때문에 소송을 각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로복지공단의 과로사 산재여부 판단의 핵심은 발병 전 12주 동안 한 주 평균 60시간을 초과근무했는지 여부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시스템상으로 명확히 기록에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결국 근태기록부, 근무일지, 택시영수증, CCTV, 동료 진술서, 출입카드 기록, 컴퓨터 로그기록, 와이파이 접속기록, 교통카드 등 모든 자료를 모아야 한다. 이렇게 해도 공단의 요건을 충족하긴 어렵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따른 업무증가와 전날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5개 일정을 소화한 끝에 세상을 떠난 배 모 연합뉴스 사진기자의 경우도 해당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다. 유족들은 유족급여신청 과정을 진행하다가 현재 보류한 상태다. 지난 1월 운명한 김 모 머니투데이 기자의 유족들은 산재와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의 과로사 산재 신청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무관심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대기업들과는 달리 언론계에서 산재신청 서류에 회사가 날인을 거부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기자들이 업무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부담을 당연시 하며 참고 견디고, 관심 없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영석 언론노조 노무사는 “정신질환의 경우도 상담과정에서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될 소지가 있다”며 본인들의 병이 업무상 재해일 수 있음을 자각하고 적극 대처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2011년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D경제지의 ㄹ기자 유족은 법원까지 가는 긴 소송 끝에 지난 2014년 산재승인을 받은 바 있다.


장 노무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업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휴가 등을 적극 보장하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만성적인 인력부족 문제가 해소돼야 하는데, 회사가 이 문제를 해결치 않고 개인에게 전가하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동희 노무사는 “언론사의 조직문화 자체가 그리 좋지 않다. 상명하복 분위기에 음주가 일상인 직업이지 않나. 더욱이 스트레스 요인이 많은 직업인데 정작 당사자들 사이에선 그게 저평가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자는 우울증 등 정신질환 심리상담이 필요한 직군이다. 야간, 철야근무를 줄이고 근무시간이 정확히 산출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건강검진 시 직무스트레스 검사도 반드시 실시해야 되고, 뇌심혈질환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건강관리를 도와야 한다. 사전에 스크린해 관리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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