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피워보지 못한 기자의 꿈, 절망에 짓눌려 내려놓다

[젊은 기자들은 왜 떠나는가]
구시대적 조직문화에 상처 '사회 변화시키겠다' 꿈 좌절
여기자는 결혼·육아 압박감…뉴스룸 보이지 않는 성차별
시민의 말 귓등으로 넘기고 높은 사람의 말만 받아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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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와 1~5년차 주니어 기자의 언론계 이탈은 새로운 현상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다. 기자협회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언론계를 떠난 1~5년차 기자는 8개 종합일간지, 2개 경제지에서 10명 내외였다. 수습기자는 12명 수준이었다. 이들은 기업체·공기업 준비, 대학원 진학, 유학, 창업 등의 이유로 언론계와 결별했다.


젊은 기자들의 이탈에는 구시대적 조직문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 등 복합적인 문제가 씨줄날줄로 얽혀있다. 언론계를 떠난 수습기자와 1~5년차 주니어 기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는 참담했다. 기자를 할수록 ‘기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다고 했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겠다는 초심이 속절없이 무너져 힘들어했으며, 기자라기보다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자화상을 보고 있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언론 산업이 위축되고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젊은 기자들은 언론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3월 퇴사한 A씨는 “급변하는 환경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데 윗사람들은 타성에 젖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갈수록 신문의 위상은 떨어지기만 하는데 하루 빨리 내 밥그릇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들의 이탈에는 구시대적 조직문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사진은 수습기자들이 지난해 2월 언론재단 수습교육에 참여해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과(왼쪽), 지난해 7월 언론인 지망생들이 한국일보 73기 견습기자 공개채용 필기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모습.

지난해 9월 퇴사한 B씨도 “지금과 같은 언론 환경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고 언론사마다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는데 나까지 그걸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이 업계의 미래를 도모하는 것 자체가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송상근 이화여대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 교수는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위상, 언론의 미래, 매체에 대한 불안감 등이 많은 젊은 기자들을 퇴사로 이끈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 또한 없었다. 과도한 업무 및 그에 따른 감정적 소모와 스트레스, 치열한 경쟁은 젊은 기자들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할 선배들의 삶은 젊은 기자들의 눈에 각박하고 힘들게만 보였다.


지난해 11월 퇴사한 C씨는 “기자 생활 10년이 넘은 선배들을 보면 저렇게 살기 싫었다. 과도한 업무와 잦은 술자리에 건강은 망가지고 남은 건 자존심밖에 없는 것 같았다”며 “꾸준한 자기 발전이 필요한데도 매일 마감에 쫓기고 나를 소진하는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낡아갈 수밖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4년 퇴사한 D씨도 “선배들이 ‘여자친구가 아무것도 모를 때 장가가라’고 하더라. 기자의 삶을 알고 나면 결혼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에 힘든 직업인 것 같은데 요즘 젊은 사람 중에 누가 그렇게 살고 싶겠느냐”고 말했다.


2013년 퇴사한 E씨는 “기사 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매일 광고 영업 해오라고 은근히 압박하고 포럼 티켓, 신문 등을 팔아오라고 눈치를 줬다”면서 “언론사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여기자들의 경우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히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말이나 야간 근무가 잦은 언론사 특성상 일과 가정을 모두 살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씨는 “여기자로서 이 직업을 오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며 “기자로서 결혼, 임신, 출산 등 내 인생의 변곡점을 모두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2년 퇴사한 F씨도 “선배들을 보니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서 많이 그만 두더라. 여자로서 오래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라 그만뒀다. 좀 더 안정적인 직업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성희롱, 성추행을 비롯한 뉴스룸 내에서의 성차별도 여기자들에게는 퇴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B씨는 “타사 여기자들이 주위에 많았는데 조직 문화가 지나치게 남성적이라 성적인 부분들에 민감하고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성희롱, 성추행이 발생해도 미온적으로 넘어가는 행태가 젊은 기자들의 의욕을 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상근 교수도 “취재원에게서 받은 성희롱, 조직 내부에서의 성차별·성희롱으로 떠나는 여기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부적인 모순이 심하다는 점도 젊은 기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킨다. 특히 수습기자들은 구태적인 선후배 문화, 도제식 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A씨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불합리한 의사결정구조, 구태의연한 악습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실망을 많이 느꼈다”며 “지식인이라 점잖을 거라 생각했는데 후배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물론 비인격적인 대우, 반말, 욕설 등을 거리낌 없이 했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는데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수습기간 중 그만둔 G씨도 “선배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선배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만한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보였고 갈등만 쌓여갔다”고 말했다. B씨는 “어떤 문제가 있으면 내부적으로 건강하게 고민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며 “내부가 경직돼 있고 의사구조도 수직적이라 불쾌감을 많이 느꼈고 실제로도 그런 부분에 답답함을 느껴 많이들 떠나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젊은 기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꿈이 좌절될 때다. 오랜 시간 기자를 꿈꾸며 가져왔던 이상과 기대가 허물어질 때 젊은 기자들은 큰 상실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퇴사한 H씨는 “기자 생활을 하면 약자의 편을 들어주고 세상의 나쁜 부분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며 “하지만 매일 일에 치이다 보니 어느 날 억울한 시민의 말은 귓등으로 넘겨듣고 높은 사람의 말만 받아쓰는 내가 있더라. 그 때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B씨도 “기자라면 사회를 잘 이해하고 세상을 좀 더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멍청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좀 더 큰 시야에서 현상이나 방향을 보기보다 마초적인 제목 뽑기, 단독거리에 매몰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기보다 단독이나 특종을 물어오는 게 능력과 직결됐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괴롭힌다는 점도 기자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직업이라는 생각에 회의감을 품게 했다. F씨는 “취재를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모두 진실한 관계는 아니었다”며 “나의 이득을 위해 어떤 때는 거짓말을 하고 어떤 때는 고압적으로 굴었다. 그것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H씨도 “기자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대단한 걸 밝히는 것도 아닌데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정보거리로 ‘갑질’하는 것이 적성에 안 맞았다.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수습기간 중 그만둔 I씨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알 권리, 공익적인 가치가 개인의 상처보다 더 큰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취재원이 공인이거나 충분히 감수할 능력이 된다면 몰라도 일반인이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취재 대상이 됐을 경우 단독을 위해 깊이 파고드는 것은 누구를 위한 건지 혼란스러웠다”고 전했다.


젊은 기자를 떠나보내는 선배들의 심정 또한 착잡하다. 후배들의 고민이 쉽게 바뀌지 않는 성질이라 차마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6년차 기자는 “80~90년대만 해도 언론사 기자라고 하면 참 괜찮은 직장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이직도 아니고 공기업 준비한다고 퇴사하는 현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합일간지 9년차 기자도 “겉으로만 개혁을 부르짖으며 비효율을 미덕으로 여기는 구태한 조직문화가 그들을 나가게 했다”고 말했고, 경제지 10년차 기자는 “예전보다 젊은 기자들의 탈출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 최근 퇴사한 J씨는 “비슷한 연차들은 너도 탈출하구나 하는 반응이었고, 선배들은 언론계 상황이 이러니 잡을 수 있겠냐 하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젊은 기자들의 인력 유출은 조직 내부의 동요, 그로 인한 업무환경의 불안정성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가볍게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특히 냉소주의가 조직에 뿌리 내리면 언론사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기자로서의 사명감이나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해 저널리즘의 질적인 면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C기자는 “떠나기는 했지만 언론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직업이 얼마나 있겠느냐”면서 “그만큼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필요한 직업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 좋은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A기자도 “종이의 힘은 줄어들지언정 미디어의 힘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열심히 노력해 혁신의 기회를 잘 잡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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