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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 단어 ‘아몰랑’은 어떻게 유행어가 됐나

[창립 51주년 특집]‘아몰랑’을 통해 본 언론 풍경

최승영 기자2015.08.21 11:50:45

페이스북 댓글에서 ‘아몰랑’ 탄생

국민일보 보도 이후 미디어 확산
5~8월 네이버 하루 평균 4.55건
클릭 유도 위해 아무데나 갖다 써
젠더 감수성 부족이 반복사용 초래



미디어가 했다. ‘아몰랑’을 유행어로 만든 건 미디어의 짓이다. ‘아몰랑’은 지난해부터 여러 공론장을 뜨겁게 달궈온 ‘여성 혐오(이하 여혐)’ 관련 키워드 중 하나다. 여혐의 어원을 안고 탄생해 세태를 풍자하는 대표적인 유행어가 됐다. 문제는 여혐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이 단어가 언중에게 널리 수용되기까지 불과 몇 개월 밖에 안 걸렸다는 것이다. 트렌드에 부합하고 훌륭한 포장이 된다는 이유로 ‘아몰랑’은 지속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사용돼 왔다. 우리 사회와 언론계의 둔감한 젠더 감수성과 팔리는 콘텐츠에 대한 맹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몰랑? 유행어?
지난 6월21일 ‘SBS8뉴스’가 <무지·무책임 꼬집는 ‘아몰랑’…유행어의 사회학>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SBS뉴스는 해당 보도에서 ‘아몰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렇다 할 논리 없이 주장해 놓고선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자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모습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몰랑의 어투가 여성적이다보니 일부에서는 여성 비하적 의미로 악용하기도 했다”며 “제대로 된 설명이나 문책 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의 초기 대응을 꼬집는 데 ‘아몰랑’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덧붙였다. 또 적극적인 의미로서 관계의 거절을 포함하는 표현이고 사회적인 연대가 깨진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철학과 교수의 분석도 더했다.


보도 후 SNS와 다수의 여성 웹 커뮤니티 등은 논란으로 들끓었다. ‘아몰랑’의 어원을 무시한 채 일반적인 사회 현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소개해 여성을 비논리적인 존재로 보는 편견을 확산시켰다는 입장과 원래 의미와는 달리 그런 행동을 하는 개인과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로 통용되는 만큼 문제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실제 웹 커뮤니티의 여러 게시물을 종합해 본 결과 ‘아몰랑’이라는 용어의 탄생은 여성혐오의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한 여성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과 댓글이었다. 우리나라에 비리가 너무 많다는 글을 올린 후 무슨 비리가 많냐는 댓글에 “몰랑 그냥 나라 자체가 짜증나”라고 답한 글 뭉치가 캡처돼 여러 웹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5월 여성 웹 커뮤니티 ‘여성시대’가 개그맨 장동민의 과거 여혐 발언과 웹툰 작가 레바의 일베 활동 의혹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과정에서 ‘SLR클럽’, ‘오늘의 유머’ 등의 웹 커뮤니티와 설전이 벌어지며 웹 전반에 확산됐다. 애초 발화 주체인 개인은 물론 여성 일반의 비논리적이고 수동적인 태도에 대한 조롱의 맥락이었다.

미디어는 ‘아몰랑’을 어떻게 사용했나
메르스 사태는 ‘아몰랑’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정부와 대통령의 무책임한 메르스 대응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미디어의 여러 보도 및 프로그램들은 ‘아몰랑’을 보도 제목이나 프로그램 자막 등을 통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다. 웹 하위문화에서만 거론되던 여혐 단어 ‘아몰랑’이 ‘메이저 리그’로 승격(?)해 유행어의 지위를 얻고 일반 사회현상을 평가하는 용어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도 바로 이 시점 이후다.


네이버 포털 ‘뉴스’ 카테고리에서 ‘아몰랑’을 제목 또는 기사본문에 사용한 보도들을 매체·날짜별로 전수 조사한 결과 ‘아몰랑’이 일반 대중 앞에 데뷔한 지난 5월11일부터 지난 11일(93일간)까지 신문과 방송 등 136개 매체가 이 단어를 포함한 총 423건의 보도를 쏟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아몰랑’이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보도가 포털을 통해 하루 평균 4.55건씩 나간 셈이다. 언론 유통 구조와 포털의 영향력, 특정 단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적은 수라 할 수 없다.


지난 5월11일 국민일보 <‘여시 다구리 사태’ 인터넷은 지금 피터지는 전쟁중…페북지기 초이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포털에 입성한 ‘아몰랑’은 이날부터 6월1일까지 초기 22일간 하루 평균 1.04건(총 23건)의 보도에서 언급됐다. 이때까지 이 단어를 사용한 매체는 12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6월2일 국민일보 <‘아몰랑 미국 갈거야’ 메르스인데 박근혜 또 유체이탈화법> 등 5건의 보도가 임계점이 됐다. 메르스 사태에 대한 박 대통령과 질병관리본부의 미진한 대응을 지적하며 ‘아몰랑’을 사용한 보도 등이 6월3일 8건, 4일 12건, 5일 10건 씩 이어지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네티즌의 발언을 인용하며 언급되거나 해당 단어에 담긴 의미, 이에 따른 성별 논쟁을 다루던 수준에 그치던 ‘아몰랑’이 어원과는 전혀 관계없는 맥락의 보도에서 제목이나 본문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6월2~23일까지 22일간 ‘아몰랑’을 쓴 보도는 하루 평균 7.91건(총 174건)에 달했다. 일베 이용자임을 밝히며 화제를 모았던 가수 브로의 음원공개가 이뤄진 7월9일 28건의 보도가 ‘아몰랑’을 사용해 하루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날로 꼽혔다. 신경숙 작가 표절사태와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코너의 정부개입 외압의혹 등의 보도가 나온 6월23일이 25건으로 뒤를 이었다. 매체별로는 국민일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헤럴드경제 19건, 아시아경제 17건, 노컷뉴스 16건, 쿠키뉴스 13건 등의 순이었다.


무엇보다도 여혐의 기원을 갖고 있는 ‘아몰랑’이 정치 등의 영역에서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로 대중에게 수용되기까지는 채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미디어가 대중의 클릭과 포털 검색 등을 유도하기 위해 ‘트렌디’한 용어로써만 ‘아몰랑’을 확대 반복 재생산한 탓이다. 실제 대다수 보도는 이제 막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아몰랑’을 어원이 담은 맥락과는 무관한 보도의 제목이나 본문 등에 해당 키워드를 적극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해왔다. 이를테면 <“아몰랑, 미국 갈거야” 메르스인데 박근혜 또 유체이탈화법>(국민일보 6월2일자), <질병관리본부 “아몰랑”…트위터 잠가버린 ‘메르스 컨트롤타워’>(아시아경제 6월4일자), <‘아몰랑, 나 뚱뚱하단 말이양’, 한 영국 여성의 감옥거부>(헤럴드경제 6월16일자) 같은 식이다.


일반 방송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영방송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지난 6월27일 ‘아몰랑’이라는 자막 사용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과거 ‘아몰랑’ 자막을 사용했던 방송분까지 거론되며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기 프로그램 tvN ‘삼시세끼’도 지난 6월26일 방송분에 해당 단어가 들어간 자막이 들어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노정태 자유기고가는 “대중매체는 대중을 향해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지, 대중들이 쓰는 표현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매체여서는 안 된다”며 “‘아몰랑’은 발화 주체인 여성의 수동적인 태도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는데 그 조롱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하기에 그런 사용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문과 방송 등이) 유행하는 표현이라고 아무거나 다 갖다 쓰는 오늘날의 작태를 걷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는 왜 ‘아몰랑’을 사용했나?
그렇다면 ‘아몰랑’이 이처럼 단기간 내 퍼져 유행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근원적 이유로 우리 사회의 낮은 젠더 감수성을 꼽고 있다. 젠더 감수성은 일반적으로 ‘젠더 이슈를 감지하는 능력. 젠더 간 차이를 인지하는 것부터 그 차이들이 미치는 성차별과 불평등 등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민감도’ 정도로 정의되는데 일반 국민뿐 아니라 언론인들조차 이 부분에 굉장히 둔감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손석희 JTBC 사장조차 지난 5월20일 ‘뉴스룸’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인터뷰를 하던 중 “30대 여성이 논어를 읽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여성분들은 서른 하면 잔치가 끝났다면서” 등의 말을 했다가 비판을 받았을 정도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XX녀’시리즈는 사용되면서도 계속 비판받아 왔던 단어들이지만 ‘아몰랑’의 경우 딱히 여성을 표상하는 인상을 주지 않다보니 더 쉽게 널리 퍼진 것”이라며 “대체적으로 기자나 PD들조차 성별 상관없이 여성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것이 여성혐오에 대한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증오와 멸시, 편견을 포함하는 정서, 여성을 성적도구로만 생각하고 여성을 나타내는 기호에만 반응하는 것’ 등을 의미하는 폭넓은 개념인데 ‘여성을 병리적으로 미워하고 경멸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식폭이 좁다는 지적이다.


물론 행정·제도적으로 여혐 콘텐츠와 표현을 억제시키거나 규제할 수도 있다. 방송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심의 대상이 된다. 방심위는 지상파 텔레비전 및 라디오, 종합편성채널, 케이블TV 등을 대상으로 규정에 의거, 심의를 진행한다. 이들이 내리는 징계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별 재허가 심사를 할 때 점수산정에 반영되는 만큼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여혐 콘텐츠가 지닌 폭발적인 이슈성과 시청률의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혐오적 표현과 욕설, 여성 비하의 저속한 랩 가사로 논란을 빚어 지난 13일 방심위로부터 최고수준 징계인 ‘과징금’ 부과를 받은 Mnet ‘쇼미더머니4’는 지난달 10일 제3회 방송에서 3.479%로 종합 2위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이번 시즌 현재 방영분까지 평균 2.005%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 중이다.


신문은 제약할 만한 제도나 행정적인 수단이 유명무실하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그나마 한국신문협회 소속 언론사들의 지면과 온라인 보도를 신문윤리강령 등에 따라 심의하고 있지만 ‘자발적인 옴부즈만’인 만큼 강제력이 없다. 언론보도 전반의 분쟁에 대한 중재를 담당하는 언론보도중재위원회는 준사법기구이지만 구체적인 피해 당사자가 있어야 하는 만큼 대중 일반이 피해자일 수 있는 여혐 같은 사안은 다룰 수 없다.


최민영 경향신문 미디어기획팀장은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경제·구조의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남성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불만과 경멸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려고, 여성은 자신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여혐 콘텐츠를 찾는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이어 “언론들이 콘텐츠의 질이나 의제 설정에 대한 고민보다 자극적인 제목달기 등 포장에 치중하면서 다량의 싸구려 콘텐츠가 생산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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