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공부는 기자를 전문가로 만들어주죠"

한국 최초 미술전문기자 이구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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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미술전문기자 이구열씨

6·25 전쟁으로 입대하기 전 이구열씨는 화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였다. 석고 데생은 물론 야외 스케치와 수채화 그리기를 열심히 했고 미술서적도 꽤 많이 구해 읽었다. 그러나 7년간의 군복무와 생활난은 그의 꿈을 좌절시켰다.
“화가가 되기 위해 훈련도 많이 하고 미술 관련 서적도 열심히 읽었는데 군대를 가니 모든 길이 중단됐죠. 그런데 그 꿈이 기자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신문사를 가서 미술 관련 기사를 쓰니 물 만난 고기가 된 심정이었죠.”


그가 미술기자의 길에 발을 내딛은 것은 1959년의 일이다. 그는 세계일보가 민국일보로 바뀌면서 새 출발을 하게 되던 때에 그 신문사의 편집부국장으로 발탁됐던 임방현씨의 추천으로 ‘미술’을 전담하는 문화부 기자가 됐다. 당시만 해도 타 신문사에는 미술 전담 기자가 없었다. 그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려서부터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술전문기자’를 자처하며 열심히 뛰었다. 기삿거리가 되는 미술 현장은 어디든 달려갔다. 주요 전람회가 있으면 가급적 보도하기 위해 노력했고 새로운 미술계의 움직임을 항상 주시했다. “기자의 첫째 사명은 취사선택입니다. 자기만의 시각을 토대로 좋은 작품과 전시회를 독자들에게 소개시켜줘야 하죠. 그런 안목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부가 당연히 필요했고요.”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타임’과 ‘뉴스위크’의 아트 섹션을 통해 당시만 해도 접하기 힘들었던 세계 미술 움직임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쌓았고, 일본에서 나온 각종 미술서적과 잡지도 구해 읽었다. 동시에 근현대미술사를 기록하는 작업도 멈추지 않았다. 신문에 모두 보도할 수 없는 무수한 자료들을 노트에 정리하는 한편 틈틈이 도서관에 가 예전 신문들을 뒤져 자료를 찾았다. 덕분에 그는 15년 동안의 기자 시절, 미술 관련 책도 4권이나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격변의 시대였다. 군사정권의 칼날 아래 폐간을 거듭하던 신문사들 속에 당시 그가 문화부장으로 일하던 대한일보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1973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그는 다른 신문사로 들어갈까도 고민했지만 그의 나이 어느덧 사십 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인생 후반은 미술 관계 전문 집필과 저술 생활을 이어가자고 결심했다. 이후 한국근대미술연구소를 설립한 그는 오늘날까지 연구와 저술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도 그는 한평생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기자 생활을 꼽는다. 누구 앞에서나 즐겁게 회상하며 얘기할 수 있는 건 기자시절이기 때문이다. 당시 했던 공부와 자료조사가 바탕이 돼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그래서 그는 최근 ‘나의 미술기자 시절’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2002년 집필을 시작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기록을 엮은 책이다. “책을 쓰며 몸과 마음이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어요. 그때 그 시간, 그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사는 기분을 맛봤습니다. 큰 기쁨이었어요.” 


어느덧 팔순이 넘은 그는 후배 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언론이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 권위는 기자 개개인에게서 나오죠. 정치건, 경제건, 문화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기사를 쓸 때 반대자도 수긍하고 지지할 수 있을 만한 논조와 시각을 보여줘야 해요. 확실한 전문성과 일관된 기자로서의 태도를 가진다면 어떤 분야에서건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한국 신문 사회에 미술전문기자라는 전통을 발아시킨 그가 한 말이라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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