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해직의 아픔' 외면한 대법원…"아직 끝나지 않았다"

YTN 해고무효소송 대법원 선고 현장

▲27일 노종면‧현덕수‧조승호 기자에 대한 사측의 해고가 정당했다는 대법원의 판결 직후, 침통한 표정의 YTN 해직기자들. (왼쪽부터) 노종면, 조승호, 우장균, 정유신, 현덕수 기자.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대법원이 2008년 낙하산 사장 선임을 반대하다 해고된 YTN 해직기자 3명에 대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직 2244일째인 2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2호 법정을 나서는 해직기자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6년간의 힘겨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법부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한다”며 법정에 들어섰지만 6명 중 3명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원심이 확정되며 또다시 절망감을 안겼다.

 

대법원 민사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7일 YTN 해직기자 6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회사가 징계재량권을 남용하지 않았으며 노종면‧현덕수‧조승호 기자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취지로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노종면 전 위원장 등의 출근저지 농성이 방송의 중립성 등 공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담겨있는 사정을 참작한다고 하더라도, 징계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사용자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권리인 경영진 구성권과 경영주의 대표권을 직접 침해한 것으로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징계해고사유에 해당 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30분쯤. 대법원 선고 30여분을 앞두고 권석재 기자를 시작으로 해직기자들이 하나둘씩 대법원에 모였다. 판결 전날 고향인 제주도에서 올라온 현덕수 기자는 권영희 YTN 노조위원장의 손을 잡았다. 현 기자 주변으로 모여든 동료들은 전원 ‘복직’을 염원하며 “파기 환송되지 않겠냐”며 미소 지었다. 이어 조승호,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기자가 합류했고, 해직기자들은 오랜만에 만난 YTN 동료들과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대법원 판결 30여분을 앞두고 법정 앞에 모인 (왼쪽부터) 정유신, 현덕수, 조승호, 권석재, 우장균 기자. 이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대법원의 상식적 판단을 기대하며 웃음 띤 모습을 모였다.

 

‘남의 일’일 수만은 없는 40여명의 취재진들도 법정 앞에 모여들었다. 뉴스타파, 한겨레신문, JTBC, OBS 등 다수 매체가 카메라와 수첩에 동료 선후배인 해직기자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 중에는 YTN 취재진도 있었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 카메라 앞에 선 6명의 해직기자는 다소 긴장한 듯하면서도 담담한, 때로는 웃음 띤 얼굴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기대를 걸었다.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2호 법정. 권석재, 현덕수, 우장균, 노종면, 정유신 해직기자가 법정 앞줄에 나란히 앉았다. 우장균 기자는 천장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켰고, 현덕수 기자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10여분 후, 김소영 대법관이 사건번호를 불렀다.

 

“상고인 또는 피상고인 노종면 외 8인. 피상고인 겸 상고인 주식회사 YTN.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상고 비용 중 원고 권석재‧우장균‧정유신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피고가 부담하고, 나머지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나머지 원고들이 부담한다.”

 

전원 복직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지난 6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선고는 너무도 짧았다. 정유신 기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법정 뒤편에 홀로 서 있던 조승호 기자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법관을 응시할 뿐이었다.

 

6년 전 함께 울고, 웃었던 자리에는 3명만이 먼저 돌아가게 됐다. 복직이 확정된 우장균ㆍ권석재ㆍ정유신 3명의 기자들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3명을 더 안타까워했다. 가장 많은 눈물을 보인 것도 이들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법정을 나온 우장균 기자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 돼 있었다. 정유신 기자는 노종면 기자에 안겨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판결 후 노종면 기자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대체 왜 3년 7개월을 끌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판결 직후 노종면 기자는 “마음이 답답해서…”라며 눈시울을 훔쳤다. 노 기자는 “2심이 나온 후 3년 7개월간 대법원은 무엇을 했는가”라며 “감정을 자제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사실 이 사건은 단 한명의 부당징계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기자는 “이번 판결로 배석규 사장과 YTN 현 경영진, 이명박 정부와 대통합 운운하며 저희를 기만한 박근혜 정권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며 “오늘 패소한 저와 동료들에 대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3명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선고기일이 잡힌 소식에 “담담하게, 의연하게 기다리겠다”던 우장균 기자도 사실 걱정이 앞섰던 심경을 털어 놓았다. 우 기자는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라며 “사적인 이익이 아닌 공정방송을 위해 싸웠는데 대법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대법원이 언론인 해고를 정당화해 모든 언론인에게 재갈을 물리면서 겁주기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판결 후 노종면 기자가 눈물 흘리는 김용수 YTN 전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다독이고 있다.

 

YTN 동료들도 쓰라린 가슴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해직자 문제는 법원 결정에 따른다”는 ‘4ㆍ1 노사 합의’에 참여했던 김용수 전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울음을 터트리며 노종면 기자와 포옹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2012년 해고자 전원 복직을 촉구하며 파업을 이끌었던 김종욱 전 노조위원장도 먹먹함에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김 전 위원장은 “전원 복직이 아니면 회사 내부 화합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다”며 “결코 YTN 해직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6년 전 이데올로기가 아닌 공정방송을 외쳤던 그때의 취지처럼 우리 힘으로 매듭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회사는 반드시 책임지고 동료들도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해고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도 이날 선고 후 YTN 해직기자들을 격려했다.

 

“대법 판결은 사태의 정상화를 바로 잡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임장혁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6명 전원 복직 판결을 당연히 예상했는데 의외의 결과라 당혹스럽다”며 “하지만 노조는 지금까지 주장대로 YTN 사태와 공정방송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YTN 내부의 힘으로 현명하게 해결해야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시민단체들도 해직 기자들의 곁을 지켰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대법원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봤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판결을 내렸다”며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에서 접근해야 할 언론사 해직 문제를 일반 사업장처럼 판단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사실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해 완전체가 아닌 불완전한 3대3으로 결론을 냈다”며 “하지만 끝이 아니다. 전원 ‘복직’이라는 YTN 사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기자협회도 힘을 모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종면 기자는 3명의 복직에 응원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오늘 승소한 분들 많이 축하해 달라. 거기서부터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며 “일부지만 우리의 뜻을 관철시킨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6명이 한꺼번에 돌아가지 못하지만 복직하는 3명과 함께 YTN을 튼튼하게 만들어 달라”고 동료들에게 전했다.

 

YTN은 대법 판결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YTN은 “그동안 해직자 문제와 관련해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른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던 만큼 대법원 최종 판결을 존중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법원 판결문을 받아본 후 검토해 추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27일 밝혔다.

 

YTN노조는 오후 6시 상암동 YTN 사옥에서 이날 대법 판결과 관련한 노조 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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