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취재기자 45.9% "심각한 외상 증상"

배정근 등 숙명여대 교수 연구팀 세월호 취재기자 외상 증상 연구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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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취재한 기자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배정근ㆍ하은혜ㆍ이미나 숙명여대 교수 연구팀은 12일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 연구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재난보도 연구분과 주최로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 회의장에서 열린 ‘재난보도와 트라우마’ 세미나에서 국내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 367명(세월호 참사 취재집단 270명, 비 취재집단 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심리적 외상 연구 결과를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를 취재한 기자 270명 중 45.9%(124명)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판정이 가능한 수준의 심각한 외상 증상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통상 외국 기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약 10%이며, 전쟁 지역의 기자들이 20% 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편”이라며 “놀라운 결과”라고 말했다. 연구팀의 조사는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5월 중순부터 한 달간 진행됐으며 한국기자협회(취재기자), 한국사진기자협회(사진기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방송영상기자) 등 3개 언론 직능 단체의 협조를 통해 자료 수집이 이뤄졌다.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 연구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재난보도 연구분과 주최로 12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 회의장에서 열린 ‘재난보도와 트라우마’ 세미나에서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월호 취재기자들은 취재과정에서 매우 격한 감정적 동요를 느꼈으며 상당수가 취재거부 및 폭언 등의 부정적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정 체험은 5점 척도를 기준으로 슬픔(4.53), 충격(4.36), 분노(4.27), 연민(4.23), 좌절감(4.06), 죄의식(3.43) 순이었다. 취재 직종에 따라 느낀 감정적 차이도 있었다. 움직이는 화면을 촬영하는 방송 영상 기자는 취재 및 사진 기자들에 비해 감정의 강도가 더 컸다. 분노는 영상(4.49), 취재(4.23), 사진(4.00)이었고, 슬픔은 영상(4.72), 취재(4.46), 사진(4.45)순이었다. 충격은 영상(4.55), 취재(4.39), 사진(3.90), 좌절감은 영상(4.32), 취재(4.07), 사진(3.58)순이었다. 배 교수는 “이는 기자들이 사건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는 객관주의 보도원칙의 허구성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상황을 경험했다. 조사대상자의 86.3%(233명)가 취재거부를 당한 적이 있고, 64.1%(173명)가 폭언이나 욕설을 들었다. 신체적 공격을 받은 사례도 18.9%(51명)로 나타났다. 배 교수는 “취재원이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큰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취재과정에서의 감정 이입과 부정적 경험은 심리적 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특히 유가족을 주로 취재한 기자들의 외상 증상이 바다에서 구조나 수색, 시신수습을 취재하거나 수사나 정부대책 등을 취재한 기자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배 교수는 “현장이 바다 한가운데라서 참혹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유가족의 비통한 모습과 사연을 취재하면서 느낀 연민과 감정이입 같은 감정적 요인이 더 영향을 미쳤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직업관도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임무든 완수해야하고 기자는 강해야 한다는 마초적 직업관을 가진 기자일수록 취재로 인해 심리적 외상을 입어도 이를 부정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으려는 특징이 나타났다. 사건과 기자 자신을 분리하려는 객관주의적인 직업관 역시 심리적 외상을 회피하려 했다. 배 교수는 “기자들이 외상에 매우 취약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직업관으로 인해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확인됐다”며 “‘세지 않으면서도 센 척하는’ 기자들의 행태가 외상 대처에 가장 큰 장애”라고 평가했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하은혜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도 “직무환경에서 기자들이 심리적 외상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수시로 노출되어 있다”며 “나약함을 부정하고 강인함을 미덕으로 삼는 마초적 문화와 외상에 대한 언론사 조직의 무관심, 지원 부족 등으로 외상에 더욱 취약하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한국기자협회가 기자들에게 제시한 9개 항목의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는 ‘정확한 보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5점 척도로 기자들은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신중하고 배려하는 취재(3.8)’와 ‘오보 정정(3.78)’, ‘정확한 보도’(3.73), ‘검증 보도(3.72)’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중요도와 실행도는 차이가 있었다. ‘정확한 보도(2.00)’나 ‘생존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취재 제한(2.05)’, ‘자극적 영상 및 선정적 어휘 자제(2.19)’ 등이 준수되지 않았다고 인식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367명의 기자 가운데 위험한 취재활동에 앞서 회사로부터 사전교육을 받았다는 기자는 13.8%(51명)에 불과했다. 82.7%(305명)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직무교육에 취재 상 안전 문제가 포함됐냐는 질문에도 76.4%(282명)이 ‘없다’고 응답했다. 충격적이거나 참혹한 사건을 취재할 경우 심리상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답변도 16.3%(60명)이었고, 79.4%(293명)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심리상담 기회를 제공하면 참여하겠다는 이들은 79.4%(293명)로 높게 나타나 현재 언론사 교육 및 관리가 현저히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영국 BBC 방송은 사내 컬리지 오브 저널리즘(College of Journalism)을 통한 안전 관련 프로그램, 인트라넷을 통한 24시간 조언과 카운셀링, 트라우마 지원 프로그램 등 심리 치료를 수행하고 있다”며 “미국에는 저널리즘 교육 및 트라우마와 관련된 전문 기관으로 다트센터(Dart Center for Journalism&Trauma)가 있어 실증 연구와 함께 트라우마와 언론의 취재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밖에 트라우마를 다루는 언론인 단체로 전쟁과 평화 보도를 위한 재단(Institute for War&Peace Reporting), 국제언론인센터(ICFJ), 언론인보호위원회(CPJ) 등이 있다.

 

배 교수는 “언론인의 정신 건강은 개인은 물론 언론 보도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며 “언론이 보도하는 사건사고의 상당 부분이 외상성 사건이다. 때문에 뉴스와 함께 트라우마를 전파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며 외상성 사건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인들이 자신이 다루는 외상성 사건의 취재보도 행위가 미치는 이러한 결과를 잘 인식하고 이를 배려하는 윤리적 보도를 한다면 우리 사회 인권의식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세월호 사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조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신중하게 해석해야 하며, 6개월 경과 후 2차 조사가 필요하며 후속연구가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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