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아빠'에 대한 해괴한 보도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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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방에 내린 때 아닌 폭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국지성 호우에 버스가 휩쓸려가고 산사태가 발생해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재난은 자연으로부터 시작됐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없었는지, 예방할 방법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건 언론과 당국의 당연한 역할이자 의무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넉 달이 훌쩍 넘었다. 사상 최악의 해양참사에 대해 수백만 명이 진상규명을 촉구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이라곤 의문투성이의 백골 사진 한 장뿐이다. 육지에서 뻔히 보이는 곳에서 그렇게 큰 여객선이 침몰할 동안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참다못한 유가족이 진실을 알려달라며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수십일 곡기를 끊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육신은 이제 최소한의 기능도 수행하기 어려워 보인다. 상식적인 언론이라면 지금이라도 진실이 무엇인지, 그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누가 막고 있는지 취재 보도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배경을 취재하는 대신 단식하는 아버지의 신상털기에 나섰다. 고위 공직자들의 자질 검증에는 그토록 인색하던 언론사들이 ‘아빠 자격’ 검증이라는 해괴한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내용은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유민 아빠’가 금속노조의 조합원이고, 이혼했기 때문에 ‘아빠 자격’이 의심되고, 그래서 단식의 순수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붕괴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막장 저널리즘이자 패륜 저널리즘이다. 이혼하면 딸을 사랑할 자격이 없고, 조합원이면 딸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할 수 없다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 초기 유가족 폄훼 보도를 주도했던 공영방송 MBC는 수만 명의 동조단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유가족 관련 보도를 아예 외면하고 있다. 거의 모든 신문 방송이 주요 뉴스로 보도했던 ‘유민 아빠’의 병원 이송 소식을 보도하는 대신 동물뉴스로 메인뉴스를 채웠다.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서 우리 언론은 그 민낯을 또다시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5600여명의 언론인들이 스스로 반성하는 실명 시국선언문까지 냈지만 보도가 개선되기는커녕 끝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참담한 언론현실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메이저언론 대부분이 참사의 진실보다는 정부·여당 감싸기에 나서고 있는 현실에서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 역시 왜곡·편파 보도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때문에 수사권, 기소권이라는 실질적 힘만이 사고의 진상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도 대승적 차원에서 자식 잃은 유가족의 진실 규명 요구를 받아들이기 바란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또 다른 사고를 막고자 함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실책이 드러나면 책임자를 징계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될 일이다. 피워보지도 못한 청춘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진상조차 밝히지 못한다면 그 정부를 정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곧 있으면 추석이다. 민족의 대명절에 자식의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보자. ‘진상규명’은 그들의 차례상에 가장 먼저 올라가야 할 이 시대 모든 사람이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제물이 아닌가.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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