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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트래픽 올리는 기계에 불과했다"

온라인 기사 생산에 동원되는 인턴기자들

김희영 · 강진아 기자2014.03.04 22:36:35



   
 
   
 
베껴 쓰고 짜깁기, 제목만 고쳐 다시 쓰기도
제대로 된 교육도 못받고 돈벌이 수단 전락
매일 매일 자괴감…기자의 꿈 산산조각


#1. 1년 반 전, A씨(당시 24세·남)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한 언론사 인턴기자가 됐다. 월급도 적고, 정기자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자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선배 기자들로부터 여러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근 첫날, 그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데스크가 처음 지시한 기사는 한 연예인의 열애설에 대한 누리꾼 반응이었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보고 해당 키워드에 맞는 기사를 생산하는 게 주요 업무. 직장인 인기검색어, 핫토픽 키워드 등 세부 순위에도 일일이 대응해야 했다. 자극적인 사건·사고 기사들은 통신사 기사를 우라까이(짜깁기)하고, YTN을 보며 속보 처리도 했다. 오늘의유머,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게시물도 기사화했다. 그렇게 출근 첫날 쓴 기사가 10여개. 기사 내용도, 형식도 엉망이었지만 데스킹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2.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인턴기자 B씨(당시 23세·여)는 한가로운 틈을 타 기삿거리를 찾고 있었다. 짬이 날 때 직접 발제하고 취재한 기사를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웹서핑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사이, 데스크로부터 기사를 지시하는 메신저가 도착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전부 긁어다 복사해 놓은 쪽지였다. 결국 B씨는 하던 일을 접고 다시 검색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우후죽순 쏟아지는 똑같은 내용의 기사, 데스크가 달아놓은 ‘충격’, ‘알고보니’ 등의 선정적 제목… 누리꾼들은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고 욕했지만 차마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러려고 들어왔나’ 하는 자괴감에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였다. 하지만 중도 포기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아 6개월 동안 참고 또 참아야 했다. 학생으로 돌아간 지금, 확고한 기준이 생겼다. B씨는 앞으로 닷컴 계열사나 온라인에 방점을 두는 매체엔 절대 지원하지 않을 계획이다.

#3. C씨(당시 26세·여)는 1년 전 인턴기자로 일했던 3개월을 ‘악몽’으로 표현했다. 하루에 쓰는 기사만 30여개 이상. 충분히 힘에 부쳤지만 이보다 더 요구하는 날도 많았다. 데스크에게 사실 확인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트래픽이 우선이었다. 선배 기자는 황당한 사진 선정 기준을 알려주기도 했다.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강조해 편집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었다. 성폭행과 관련된 사건기사에는 차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선정적 제목이 달려 나갔다. 시간에 쫓기다보면 철저한 데스킹은 그림의 떡이었다. 검색어에 올라오기만 하면 틀려도 되니 일단 쓰라는 식이었다. 검색이 잘 되도록 누리꾼 반응을 키워드에 맞게 짜 맞추기도 했다. 독자들로부터 항의도 수차례, 이에 따른 압박감은 모두 인턴기자의 몫이었다. 인턴기자들이 바라는 것은 사실 매우 기본적인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과 ‘데스킹’이다. 한번이라도 발로 뛰며 써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트래픽에 매몰된 회사 입장에서 인턴은 ‘기사 쓰는 기계’에 불과했다. C씨는 바이라인에 자신의 이름이 달리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인턴은 언론사들에게 온라인 기사의 트래픽을 올리는 수단에 불과했다. 언론사들은 100만원 안팎의 임금을 주며 인턴기자들을 기사 베끼기, 검색어 기사, 선정적 기사 쓰기로 내몰았다. 하루에 적게는 10개, 많게는 50개 이상의 검색어 기사를 쓰면서 인턴기자들은 절망했다. 기자로 가는 디딤돌로 여기며 인턴에 지원했던 예비 기자들은 “기자가 이런 것인 줄 몰랐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희영 기자 hykim@journalist.or.kr
  강진아 기자 saintse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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