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 소싱' 저널리즘이 뜬다

한겨레ㆍ뉴스타파 등 공개 프로젝트 진행...시민 참여형 '개방형 저널리즘' 시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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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20일 민주당 전두환 전 대통령 등 불법재산 환수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5·18광주민주화운동 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전 전 대통령 불법재산 환수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는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 저널리즘이 떠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5월 ‘전두환 재산찾기 프로젝트’라는 크라우드 소싱을 제안해 시민들의 제보와 의견을 받고 있다. 뉴스타파도 지난달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크라우드 소싱으로 취재방식을 전환했다.

‘대중(crowd)’과 ‘외부자원 활용(outsourcing)’의 합성어인 크라우드 소싱은 대중들의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한 참여를 뜻한다. 단순한 제보를 뛰어넘는 시민 참여 저널리즘의 형태로 새로운 개방형 저널리즘을 예고하고 있다.

한겨레는 올해 10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시효 만료를 앞두고 시민들과 함께 은닉 재산을 찾는다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난 5월20일에는 ‘잊지말자 전두환 사전 1.0’으로 △전두환 비자금 조성 및 관리 조력자 명단 △전두환 친인척 명단 △전두환 일가 재산 목록 △전두환 골프장 리스트 등 4종류의 정보를 제공했다.

한겨레는 “방대한 로데이타를 웹에 공개한다”며 “시민들이 정보를 분석하고 추가 내용을 제보, 취재방향에 의견을 제시한 후 한겨레가 탐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특히 비자금 형성 및 관리의 핵심인 조력자의 경우 인물 정보 수집에 있어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이었다.

한 달이 지난 지난달 19일 한겨레는 전자우편과 SNS 등을 통한 80여건의 제보를 토대로 ‘잊지말자 전두환 사전 1.2’를 재공개했다. 한달 단위로 사전을 보완해 지속적인 제보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제보는 단독 기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0일 한겨레는 한 기업인의 제보로 전 전 대통령 부부가 금호아시아나그룹 소유 골프장에서 골프 특혜를 받아온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도 이후 해당 클럽에서는 전직 대통령 특혜 골프 규정을 삭제하는 등 개선이 이뤄졌다. 또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는 전 전 대통령 차남과 처남 등이 수산물 가공회사와 건설회사, 강남 주유소 사업 등을 통해 비자금을 세탁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겨레 고나무 기자는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제보를 추려서 탐사취재 중”이라며 “크라우드 소싱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온라인 기술 발달을 토대로 적합한 주제를 찾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실험”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10월까지 집단협업을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

뉴스타파도 지난달 15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180명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시민들이 명단의 한글과 영어 이름, 회사명, 주소를 보고 제보하면 이를 취재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G8정상회담을 앞두고 크라우드 소싱 전환을 꾀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내린 결정이다. ICIJ도 홈페이지에 10만여건의 페이퍼컴퍼니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12일 기준 지난 한달동안엔 100여건의 제보가 들어왔다. 뉴스타파는 현재 제보자들이 제공한 증거를 확보해 추가 보도를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김재훈 ‘더 클래스 효성’ 2대 주주의 지분 투자 특혜 문제를, 이달 5일에는 오정현 SSCP 전 대표의 830억여원의 회사자금 횡령 의혹 등을 제기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내부의 취재 인력만으로는 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이슈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대중들 속에 있는 외부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식견, 경험을 빌려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에는 지자체나 정부 등 예산 감시 프로그램 프로젝트로 크라우드 소싱을 도입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라우드 소싱은 국내 언론에선 미비하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자연스러운 추세다. 미국의 프로퍼블리카 등 비영리 탐사기관은 물론 세계 각 매체들은 크라우드 소싱 저널리즘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 가디언이다. 가디언은 지난 2009년 영국 하원 의원들의 세비 지출 내역인 45만여 건의 문건을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당시 2만7000여명의 시민들은 22만여건의 문서에서 각종 비리를 찾아내 파장을 일으켰다. 2010년에는 뉴욕타임스 인터랙티브 뉴스팀이 전 세계 시민들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수집해 지구본 위에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서비스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크라우드 소싱은 탐사보도, 데이터저널리즘 등과 함께 발전하는 단계다. 언론사가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를 벗어나는 상황에서 깊이 있는 뉴스와 함께 독자라는 외부 자원의 활용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크라우드 소싱으로 새로운 아이템 발굴과 아이디어 확산은 물론 충성도 있는 독자까지 확보할 수 있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내부 전담 조직 등을 구성해 적극 활용할 수 있다”며 “각 매체의 본질적인 저널리즘 가치에 대한 신뢰와 공감를 중심으로 대중 속에 있는 외부 전문가들이 결합하는 것이므로 매체 지향점을 정확하게 갖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다수 시민들이 정보를 공유해야하는 만큼 참여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진 대표는 “크라우드 소싱은 목적이 아닌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수단”이라며 “성공을 위해선 언론사가 의미 있고 흥미로운 데이터베이스나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저널리즘의 생존이 크라우드 소싱 전략에 달렸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 대표는 “기존 언론사의 한계와 테두리를 뛰어넘어 저널리즘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라며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나아가며 기존 언론 관행과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황 교수도 “브리태니커 시대에서 위키피디아 시대로 변한 것처럼 ‘오픈 저널리즘’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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