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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한국일보 사진부 고영권 기자

'250분의 1초' YS는 웃고 있었다, 무언가 휙 날아온 느낌…순간 '페인트 달걀'을 터지고

고영권2000.11.02 00:00:00

일 오전 7시 반께 출근 습관대로 취재일지를 들추어보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출국 취재지시가 메모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달 전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고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집 앞 높은 곳에서 망원렌즈를 설치하고 잠복근무하며 그의 모습을 찍기 위해 밤늦게까지 기다리다 허탈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오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갔다.



예정된 출국시간은 오전 11시 35분. 오랫동안 대통령을 자유롭게 취재할 기회가 없었던 터라 미리 나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비와 공항출입증을 챙겨 9시 15분께 공항기자실에 들러 다시 편명과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10시 10분께 김 전 대통령이 나타나기로 한 귀빈용 주차장에 도착했다.



환송을 위해 미리 나온 100여명의 국회의원과 지지자들로 현장은 술렁거렸다. 측근의원들에게 도착예정 시간을 물어보니 10시 45분께라고 대답했다. 10분 전쯤 되니 환송플래카드 옆으로 지지자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몇 분 뒤 경찰차를 선두로 여러 대의 검은색 승용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섰고 마침내 김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돌출발언이라도 한다면 자료사진이라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승용차에서 내리는 장면부터 차례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지지자들과 한 사람씩 악수하기를 몇 차례, 휙 소리와 함께 누군가 뛰어나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 뷰파인더 안의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이 붉은 색 액체(그 순간 피인 줄 알았다)로 얼룩져 있었다. 정신없이 몇 컷을 누르고 있는데 "저 놈 잡아"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경호원들의 손이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을 감쌌다. 승용차에 실리기까지 5∼6초 동안, 김 전 대통령은 양복 윗도리로 가려져 볼 수가 없었다.



범인 박의정씨는 현장에서 바로 연행됐다. 경호원 2명이 그의 입을 막은 채 경찰차에 싣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숨가빴던 수분이 지난 뒤 온몸이 땀에 젖어 있는 것을 느꼈다. 서둘러 공항기자실로 달려갔는데 그 장면을 찍었다는 타사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공중에 날아간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눌렀는데 제대로 찍혔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서둘러 데스크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회사로 돌아와 필름을 현상했다. 사건 첫 컷은 김 전 대통령이 얼굴에 '페인트 달걀'을 맞는 장면이었다. 붉은 색 페인트가얼굴에흘러내리며 일부는 공중에 흩어져 있는 사진이었다. 그 순간은 김 전 대통령도 손명순 여사와 지지자들도 '페인트 달걀'에 맞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1/250초였다. 그 결과 표정은 전부 웃고 있었다.



6월 4일자 1면에 크게 보도된 사진으로 편집국 선후배와 타사 동료, 독자에게서 칭찬과 격려전화를 받았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2∼3초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앵글을 바꿀 수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시기에 편집국에 활기를 불어넣게 되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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