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는 방송 사업권 따려는 게 아니라 되찾으려는 것”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월25일 42대 한국신문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재호 회장은 53년의 역사를 가진 신문 발행인 단체의 새 리더답게 신문 산업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인터뷰 내내 “신문 콘텐츠의 정당한 대가 확보” 와 “저널리즘 본령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한국신문협회 회장실에서 이뤄졌다.-한국신문협회장에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신문업계가 어느 때보다 다양한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신문협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신문이 도약하려면 무엇보다 가치있는 콘텐츠를 창출해 시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협회장으로서 각 신문이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또 이념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보도로 독자에게 신뢰를 얻는 ‘저널리즘의 회복’도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계가 젊은 신문협회 회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신문 산업의 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신문의 위기’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그러나 위기는 우리 신문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변하지 않은 것이죠. 기자들이 힘들게 만든 소중한 콘텐츠를 너무 쉽게 인터넷 포털에 무료로 제공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제는 모바일 시대가 열렸습니다. 신문협회가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제대로 인정받을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협회가 추진해 온 뉴스콘텐츠 유료화, 공동 뉴스포털 사업, 저작권 보호 활동 등도 계속 추진하겠습니다. 아울러 2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독자프로파일 조사도 더욱 정밀하게 추진해 독자와 광고주들이 신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신문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려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요.무엇보다 신문 외의 다른 매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차별화된 고급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일 것입니다. 신문은 다른 매체에 비해서 여전히 심층성, 객관성 등에서 뛰어난 콘텐츠를 갖고 있죠. 이와 함께 이념 등을 넘어 믿을 수 있는 정보와 의견을 제시해 저널리즘의 본령이 살아있는 콘텐츠가 신문이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모바일 콘텐츠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우리 협회 회원사들은 온라인 회사가 아닙니다. 먼저 우리 콘텐츠가 오프라인에서 제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라인과 모바일에서도 제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과 모바일이 심각하게 먼저 논의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오프라인에서 신문이 어떻게 제 값을 받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현재 신문 구독료가 보통 1만5천원입니다. 과연 이게 적절한 가격일까요. 이 문제부터 논의돼야 합니다.
이념·이해관계 아닌 사실 입각 ‘저널리즘 회복’ 중요-일부 신문사는 신문가격 인상을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신문 구독료의 적절한 책정에 대한 구체적인 복안이 있는지요.우리나라 신문은 광고와 판매에서 수익 불균형이 심합니다. 유럽 신문들은 판매 수익이 더 큽니다. 일본은 비슷하거나 판매가 조금 더 많습니다. 물론 일본도 불황이 장기화돼서 요미우리, 아사히 등 유력지들도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수입원이 상당히 안정돼 있어요. 가구당 구독률도 70% 이상 되죠. 그런데 우리는 미국 신문보다도 광고수익 의존도가 큽니다.
우리나라 신문은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 구조입니다. 신문이 제값을 받아 기자교육 등에 투자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그를 통해 가격을 더 올리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합니다. 그러면서 온라인과 모바일에서도 수익을 올려야죠.
-신문협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뉴스 공동포털 사업 전망은 어떻습니까.공동 뉴스포털은 개별 신문사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없거나, 기존 포털이 모방할 수 없는 콘텐츠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온라인 기사 내 광고에 대한 뉴스 저작권자의 수익화와 네트워크형 광고 등을 실천해 새로운 미디어 가치를 창출하는 데 뜻이 있죠. 올해 하반기에는 공동 뉴스 포털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부 광고 ABC 연계 추진 과정에서 협회와 정부, ABC협회와 이견도 있었습니다.ABC부수공사가 합리적인 광고 집행을 위해 필요하고 이에 성실히 참여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하지만 ‘부수공사 방법의 선진화’ ‘부수공사 공개시기 2년 유예’ 등이 필요합니다. ‘부수공사 방법 선진화’는 현재 ABC부수공사 방식이 양적인 면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자는 것입니다. 신문구독환경 변화에 발맞춰 기존 독자를 소비자 개념으로 확대하는 등 부수공사방법을 선진화해야 합니다. 신문을 여러 사람이 돌려보는 것, 즉 회독률도 감안해야죠. 미국, 영국 등 ABC선진국은 침체된 신문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ABC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라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부수 공사 공개시기 2년 유예’는 준비기간에 해당합니다. 신문사들은 이 기간 동안 일선 독자센터의 독자관리를 표준화하고 이에 따른 관리업무 재정비와 교육을 실시할 것입니다. ABC협회도 신문업계와 광고업계가 요구하는 공정성과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공사 역량을 강화하고 제도적 불합리성을 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판매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담보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좀 더 구속력있는 자정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기본적으로 신문시장은 독자의 구독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시장경쟁 활동을 제한하는 법적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원칙에서 시장질서 개선은 업계의 의지와 노력, 정부의 업무협조체제가 뒷받침하는 방안이 바람직합니다. 우리와 비슷한 판매구조를 가진 일본 신문시장은 안정되고 공정한 자율경쟁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개별 신문사와 협회 차원의 지속적인 자율 규제와 판매 정상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의 신문시장 규제는 자율규제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법적 규제가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자율성이 결여되면 공정경쟁의 정착과 신문업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문업계는 신문시장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 과거 사례를 통해 폐해를 인식하고 공동이익을 위한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긴 안목을 가지고 흔들림없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몇 년 간 보수-진보 매체의 반목이 매우 깊어지고 있습니다. 협회 차원에서 이를 해소할 방안은 없습니까.신문사가 각각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모색돼야죠. 사안을 보는 가치관의 차이는 인정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 창출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방송 진출을 추진하는 신문협회 회원사가 많습니다. 자칫 회원사 간 갈등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그런 갈등이 드러난 것은 아직 없잖습니까. 구체화된 것이 없는데 굳이 미리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있더라도 갈등으로 보느냐, 경쟁으로 보느냐 관점의 차이도 있을 겁니다.
-방송사업자가 올해 안에는 확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아 역시 방송에 대한 의지가 강한데요. 동아가 사업자가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협회장으로서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웃음) 한 가지만 말한다면, 간혹 동아가 방송 사업권을 딸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사업권을) 따려고 하는 게 아니라 되찾으려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동아일보 사장으로서도 많은 실험과 도전을 했습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스포츠동아 등 다양한 인쇄매체를 창간했는데요.결국 우리나라 신문이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문성의 문제이자 유통에 대한 문제입니다. 서구 국가를 보면 신문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가격과 콘텐츠에 따라 독자들이 신문을 선택하죠. 우리나라 신문도 독자의 요구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특집이 있다면 모든 독자가 그 기사에 관심을 갖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정보가 다릅니다. 정년퇴직을 한 독자는 실버라이프라든가 실버재테크 기사에 관심을 가질 테고요. 젊은이들은 스포츠면 강화를 원할 수 있죠. 결국 독자가 골라서 볼 수 있는 체제로 가야 하고, 이를 실험하는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문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것…콘텐츠 제값받기 노력해야‘선택형 구독, 맞춤형 배달’이 신문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일보 예를 든다면 이지논술이나 이지스터디를 맞춤형으로 배달하고 있습니다. DBR은 더 나아가 잡지, 온라인 잡지, 모바일 형태로 독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가 10년 뒤인 2020년에는 1백주년을 맞습니다. 1백주년을 앞둔 동아일보의 비전은 무엇입니까.동아일보만이 아니라 신문 자체의 비전일 수 있는데요. 독자들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신문사가 늘어났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 독자들은 통신료는 많이 내면서도 콘텐츠 값은 치르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아뿐 아니라 모든 신문이 그런(가치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수준에 아직 못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DBR을 예로 들죠. 아이폰 앱스토어에 모바일북 형태로 제공했더니 한 달 만에 유료 비즈니스 카테고리에서 2위까지 올라가더군요. 삼성 앱에서 DBR을 3개월만 무료로 제공해달라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신문업계의 자존심인데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죠. 지금은 5천원 유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문 콘텐츠도 질에 따라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15년 전쯤 기자들과 워크숍을 열어 인터넷 시대를 맞아 동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를 놓고 토론했습니다. 결론은 “우리는 종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다”라는 것이었어요. 디바이스는 과학자들의 몫이고 우리는 콘텐츠를 얼마나 정확하게 만들어내느냐, 어떻게 제 값을 받을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저도 종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디바이스가 나왔으면 합니다. 장기적으로 스마트폰이 충분히 대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바일콘텐츠를 어떻게 유료화할 것인가 신문협회 차원에서도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어제 5일은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왜 신문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저도 집에서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신문을 많이 읽게 합니다. 엄마 아빠가 신문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읽습니다. 어린이들이 신문을 읽으면 여러가지를 부모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자녀에게 신문을 읽히면 가족 간에 대화가 더 풍부해집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어휘력도 향상됩니다. 세상 보는 눈이 더 넓어지게 되죠. 대화가 늘면 가족도 더욱 행복하고 화목해집니다.
대담=김신용 편집국장
정리=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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