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김우룡 '파워게임'

단일안 이끌어내지 못해 임원선임 또 무산
여당 이사들도 반란…김 이사장 체면 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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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본사를 나서고 있는 엄기영 사장(왼쪽)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는 김우룡 이사장. (연합뉴스)  
 
경영진 일괄 사표 제출로 촉발된 MBC 사태가 해임된 본부장을 대신할 보궐 임원 선임이 두 차례나 무산되면서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엄기영 사장 간 파워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한 엄 사장은 “이사회 선택을 받지 못하면 사장으로서 책임지고 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며 “선택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사회 전날에도 이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사장 못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며 배수진을 친 셈이다. 앞서 그는 지난 15일, 전날 자정까지 김 이사장과 합의한 단일안을 파기하고 새로운 인사안을 내면서 이사회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묵살됐다. 엄 사장은 이날 경영본부장과 TV제작본부장에 각각 3명, 보도본부장과 편성본부장에 각각 2명의 후보를 내고 그 중 1순위 후보를 밝히는 식으로 임원 후보를 추천했다. 방문진은 투표를 통해 엄 사장안을 부결시키고, 개별 후보들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 이사들은 반발하며 퇴장했다. 투표 결과, 김재형 기획조정실 부실장만 과반수 표를 얻어 새 경영본부장 후보로 내정됐다. 보도·TV제작·편성본부장 모두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었다.

엄 사장의 인사안이 거부당한 것은 김 이사장과 협의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꿔 말하면 엄 사장이 김 이사장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표 대결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그는 이날 이사회 개최 직전,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사회에 내가 추천한 인사가 관철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다시 거부됐다. 그의 선택이 주목되는 대목이다.

임원 선임이 무산되면서 김우룡 이사장도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엄 사장의 돌발 저항에 한 차례 체면을 구겼던 김 이사장은 21일 투표를 강행하면서 그의 인사안을 밀어붙였으나 일부 여당 이사들의 반란표에 무너졌다. 김 이사장은 이날 엄 사장이 후보로 올리지도 않은 Y씨를 제작본부장 후보로 제시했으나 부결됐다. 김 이사장의 월권행위에 일부 여당 이사들이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한 여당 이사는 “사장안이 부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사장안도 부결된 것”이라며 “사장은 사내 여론을, 이사장은 이사들의 생각을 수렴하고 협의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사는 “사장의 권한을 인정한 다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사장의 인사안이 자꾸 나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의 리더십 손상은 그 스스로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엄 사장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해왔지만 속으론 자기 사람을 임원 후보로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 노조는 22일 발행한 특보에서 “MBC 경영진 내에 친정부 인맥을 구축하려는 정점에 김 이사장이 있다”고 밝혔다. MBC 보직 부장들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어 엄기영 사장의 책임 경영을 보장하고 방문진은 MBC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방문진이 연내에 이사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MBC의 경영진 공백상태는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MBC는 보도와 TV제작 등 4개 부문의 본부장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부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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