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을 넘어"

[기자 파워 블로거]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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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탈북, 배달원·홍보사원·주간지 거쳐 동아 입사
‘한국우체국 택배, 北에 배달 사연’ 등 생생한 이야기 눈길


그의 발음에는 북측 억양이 섞여 있다. 20년 넘게 북에서 살다가 2002년 서울에 온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2003년 12월 동아일보에 입사,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얘기다.
그의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www.journalog.net/nambukstory)에 생생한 북측 이야기가 많은 것은 이런 남다른 이력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동아일보 블로그 서비스 ‘저널로그’가 오픈하면서다. 당시 저널로그 론칭에 관여했던 입사 동기는 그에게 블로그를 추천했고, 그 또한 주기적으로 글을 올려 책이나 한 권 쓸 심산으로 개설했다.

“아는 것만 써도 ‘3~4년은 충분히 끌고 갈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어 시작했어요. 이왕 하기로 한 것인데 중간에 그만두면 안되잖아요. 남들이 모르는 북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고, 중국이나 북한 내 정보망을 활용하면 업데이트도 가능하고….”

그의 블로그에는 우리가 몰랐던 북측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평범한 소식이라도 그의 설명이 덧붙여지면 전혀 다른 콘텐츠로 탄생한다. 며칠 전 대다수 언론이 일제히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배 피우는 사진은 그의 블로그에서 새롭게 해석됐다. 그는 ‘담배 피우는 김정일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라는 글에서 1990년대 초반 김 위원장이 금연을 강조한 뒤 북한 간부들 사이에 생긴 금연 대소동을 적나라하게 실었다. 또 김일성종합대학 시절 숨어서 담배를 피우던 개인사도 포함시켰다.

이런 글은 당시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면 알 수 없는 그만의 소재. 그의 강점이자 타 블로그와 차별되는 요소다. 당연히 블로그의 경쟁력이 뒤따라온다. 블로그 개설 4개월 만에 방문자 수는 32만여 명. 지난해 12월 이후 월 평균 10만여 명의 누리꾼들이 찾고 있다. 이달 말이나 내달 초로 예정된 네이버 뉴스 코너(정치면 북한 카테고리)에 노출되면 그의 블로그를 찾는 누리꾼 수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북을 떠나온 지 7년이 돼가지만 그의 글에는 북측 사람들의 현재 이야기가 생생하다. ‘북한군이 한국 우체국 택배를 배달한 황당한 사건’, ‘탤런트 전원주 북에서 뜰 줄이야’ 등은 최근 북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썼다. 그의 정보망은 상당하다. 북측 사람들과 직접 연락이 가능할 정도. 북측에 한국 우체국 로고가 박힌 택배가 배달된 해프닝을 다룬 ‘우체국 택배 사건’의 경우 양강도 모 국경마을에 살고 있는 지인과의 통화를 통해 알게 됐다.

“통화하다 보면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한두 마디 들어보면 그림이 그려지죠. 거기서 살았기 때문에 통화만으로 ‘뭐가 달라졌구나. 어떤 변화가 일어났구나’ 하고 연상이 되는 것이죠. 새로운 얘기를 쓰고, 같은 사안이라도 해석이 달라지는 원천인 셈입니다.”

그는 블로그에 북쪽 이야기만 쓰는 것은 아니다. 국제부 기자답게 지구촌 소식들을 담고 있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가십성 기사들, 재미는 있는데 신문에 안 실리는 기사들이 올라 있다. 탈북 수기도 연재하고 있다. 그가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 과정을 담은 글로, 몇 편을 제외하고 보안 문제로 이웃블로그에만 공개된 상태. 그의 구체적인 신상이 노출되면 북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서다. 사실 그의 이름 ‘주성하’도 가명이다.

그는 주로 회사에서 블로깅을 한다. 국제부 기자로 회사에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다. 글 쓰는 시간은 오후 1~2시 사이. 점심 먹고 발제가 채택되기 전에 후다닥 올린다. 기사가 안 잡혀서 손이 비는 날은 한꺼번에 5~6개의 글을 쓰기도 한다. 되도록 재미있고 유연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안 그래도 딱딱한 북한 기사 재미까지 없으면 누가 읽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이념적 낙인. 탈북자를 보수주의자로 보는 한국사회에서 그가 어떤 글을 쓰든 한편에 치우치게 해석된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비판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햇볕정책’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통일 이후 북측 사람들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이유다. 그의 바람은 북을 두둔하지도, 혐오하지도 않고 ‘쓸 만한 것을 썼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흐름을 멈춘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그 흐름을 남보다 좀 더 빨리, 멀리 보고 싶은 욕망에 나는 울타리를 이미 하나 넘었다.’ 그의 블로그 머리말이다. 짐꾼, 홈쇼핑 배달원, 카드사 홍보사원, 중소기업 무역담당 대리, 주간지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기자로 살고 있는 주 기자는 블로그를 통해 또 하나의 울타리를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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