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씨가 언론에 던진 훈계


   
 
  ▲ 최진순 한국경제 미디어연구소 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  
 
잘못된 언론보도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가수 나훈아 씨를 두고 일부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기백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반면 언론의 관점에서는 가수 나씨가 허리끈을 풀고 바지춤을 내리기까지 한 기자회견장의 행동은 도전이자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나씨 보도를 연일 전개한 해당 언론사와 기자는 얼굴을 들기 힘들 정도로 ‘훈계’를 들어서이다.

물론 아직 나씨를 둘러싼 소문이 완전히 해명됐다고 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언론이 진실보도의 사명을 다했다면 사회적 파장이 이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 개월 전부터 나씨와 관련된 취재원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사실보도가 아니라 냉정한 확인과 검증을 거친 진실보도를 했다면 큰 소동이 일어날리 만무했다.

하지만 나씨 건은 A. H 등 이름을 추측하는 이니셜이 등장하고, 앞선 보도를 무작정 받아 쓰는 몰염치하고 구태의연한 보도가 만연했다. 소문의 진실을 정면에서 다루는 제대로 된 뉴스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일부 기자는 개인 블로그에서 ‘가슴이 큰 글래머 K’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며 이슈를 확장하는 데만 급급했다.

연예뉴스의 속성상 대중 스타라는 공인을 다루는 것은 아슬아슬한 일이다. 독자의 궁금증 해소를 위해 스캔들이나 사생활 등 은밀하고 껄끄러운 개인사를 까발리는 보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씨 소문처럼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등 단서들이 존재했다면 그 보도는 신중하고 정확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 불거진 한 남자 아나운서의 이혼설도 마찬가지다. 호적등본이라도 떼 진실을 보여 주겠다는 아나운서의 외침은 알 권리를 빙자해 언론이 저지른 소리 없는 폭력이 빚은 처참한 몰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재벌가문과 결혼하면서 화제를 뿌린 여자 아나운서의 이혼설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식의 추측보도가 난무하면서 여진을 남기는 사례다.

언론보도로 곤욕을 치른 이들은 당사자에게 확인을 했더라면, 출입국관리소에서 사실관계만 검토했더라면 보도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나씨는 막무가내식 언론보도 때문에 만신창이가 됐고 꿈도 잃었다며 언론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더라도 최소한 ‘아니면 말고식’ 보도는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독자들 처지에서도 무절제한 폭로와 소문의 나열보다는 절제되고 품격 있는 보도에서 저널리즘의 진가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독자는 진실을 원하는 것이지 ‘~카더라’를 헤매는 ‘탐정’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독자와 나씨의 처지에서 생각했다면 전해야 할 부분과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야 할 것이 따로 있었을 터이다.

‘삼성 특검’과 ‘이명박 특검’은 나씨 경우와는 성격이 다른 공공의 사안이지만 진실보도라는 가치를 상정할 때는 동일선상의 이슈다. 이해당사자간 공방과 해명의 경마식 중계보도가 아니라 기업 총수와 당선자의 행적 그리고 그것이 공익에 미친 영향을 검증하는 진실보도, 즉 탐사보도야말로 독자가 진정으로 염원하는 언론상이다.

그런데 기사의 기본기, 기자의 양심이 충족되지 않은 보도가 양산되는 것은 남들보다 먼저 살아남기 위해 언론이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탐사보도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 경쟁에 내몰려 선정주의에 빠진 것이다. 특히 광고주 등 자본의 늪에 허우적대는 언론은 만만한 상대를 골라 잡는 손쉬운 비판무대에 안주하고 있다.

언론사나 기자가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객관보도마저 실종됐던 20세기를 기억하는 대중은 오늘날 무한 언론자유를 누리는 한국 언론의 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실상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언론권력, 인터넷 포털뉴스의 영향력 강세 지속, 연성 뉴스 남발을 겪는 한국 언론의 위기 현상이 고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편집자 빌 켈러(Bill Keller)는 한 강연에서 주장보다는 근거(fact)를 강조하고, 그 근거를 철저히 검증하며,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데 노력한다면 뉴미디어 파고 속에서도 전통매체의 경쟁력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을 좇는 공정성과 정확성이 전통매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언론계는 신문방송 교차소유 등 규제완화가 미디어 산업 활성화의 열쇠라고 보는 흐름이 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저널리즘의 근본을 되짚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올드 미디어가 독자와 시청자에게 다시 감동을 주며 정당한 권위를 확보하는 길을 제시할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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