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의 소곤소곤 콘서트
전시나 체험은 많이 해봤지만, 무대에서 콘서트 식으로 작업 과정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었어요. 이 새로운 버전의 공예를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합니다.12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집 민속극장에서 국가유산진흥원이 주최한 국가유산 ASMR 콘서트-소리로 담아낸 국가유산이 끝난 뒤 만난 국가뮤형유산 매듭장 전승교육사 박선경씨(60)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매듭을 만들 때 필요한 과정인 다회치기를 선보였다. 가는 실을 꼬아 끈목(여러 올의 실로 짠 끈)을 만드는 과정이다. 여느 전시와 다른 것은 다회치기 과정에서 소리에 집
게임 체인저, 케이틀린 클라크
역사적으로 남을 만한. (Historic)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활약하는 케이틀린 클라크(22인디애나 피버)가 올해를 정의한 단어다.그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뽑힌 뒤 한 단어로 올해를 정의해 달라고 요청받자 이처럼 말했다. 〈타임〉은 1927년부터 매년 올해의 인물을 뽑아왔고, 2019년부터는 올해의 선수도 따로 선정해 왔다. 2019년 맨 처음으로 미국 여자 축구대표팀이 뽑혔고, 2020년 르브론 제임스(농구), 2021년 시몬 바일스(체조), 2022년 애런 저지(야구), 2023년 리오넬…
용서받지 못할 자들
3일 밤 11시48분. 무장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국회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새벽 1시18분까지 24차례에 걸쳐 230여명이 국회로 투입됐다. 창문을 깨고 국회 안으로 침투했다. 국회의원들을 끌고 가려 했다. 국회의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날 국회에만 685명의 병력이 투입됐다. 북한군의 습격이 아니라 우리 군 최정예 부대원들이 국회를 공격한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은 병력 이동 상황을 전화로 직접 챙겼다. 국회 점령이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지휘통제실에서 직접 병력을 더 투입하라고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군
'래커 시위' 여대생은 어떻게 마녀가 됐나
여자대학교의 공학 전환 반대, 학내 성폭력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는 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장기화할 조짐인 이번 여대 사태는 여성 전용공간을 수호하려는 20대 여성들이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를 상대로 대결 구도를 이루며 거의 일방적인 지탄을 받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들 여성의 강경한 입장은 사회 전반 및 언론정치권의 시선과 선명하게 대립한다.전자의 여성들에게 여대란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안전이 그나마 확보되는 곳이자,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식되는 환경에서 자유와 성장을 도모하는 해방의 공간이다. 불법촬영과
경제는 연말 한파 넘어 '빙하기' 경고등
21일 국내 재계 서열 톱5인 롯데그룹이 가용 자산만 71조원 이상이라며 이례적으로 재무 상황을 공개했다. 최근 유동성 부족에 직면했다는 루머가 시장에 돌면서 주가 폭락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소문만으로 국내 톱5 그룹마저 휘둘릴 정도로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불안해졌다는 방증이다.연말 한국 경제에 대한 위기음이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은 거의 동시에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
강태완은 없었다
명태균 게이트와 관련된 녹취, 단독 보도 등이 쫓아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쏟아지던 이달 초 몽골 국적의 청년 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다.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난 청년의 이름은 강태완(몽골명 타이왕)이다.몽골에서 태어난 태완은 다섯 살이던 1997년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경기 군포시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던 그가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친구랑 싸우게 됐는데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경찰을 부른다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께서 경찰까지 오게 되면 네가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때 내가
'기후 특이점' 트럼프의 시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은 매 편 악당이 극의 전개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1편엔 라스 알 굴이, 2편엔 조커가, 3편엔 베인이 배트맨 대척점에서 정의를 부정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은 일부 기후환경론자에게 그러한 역할로 꼽힌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이 없더라도 전쟁과 경기 침체 속 전 지구의 탄소중립 달성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트럼프 재집권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파리 기후변화 협약 재탈퇴를 준비 중이며, 석유석탄산업 로비스트 출신 인물을 고위급으로 등용할 것이
한국의 NICAR도 계속되어야 한다
날이 쌀쌀하다. 슬슬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든다. 이유는 매년 3월에 열리는 NICAR 콘퍼런스가 다가오기 때문이다.NICAR는 National Institute for Computer-Assisted Reporting의 약자로, 미국탐사보도협회 IRE(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에서 주최하는 데이터 저널리즘 콘퍼런스다. NICAR에는 미국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약 1000명이 모인다. 참가자들의 직군도 기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으로 다양하다.NICAR의 매력은 실무에 활용할
'과시용 독서'면 어떤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 SNL에서 패러디 하나가 논란이 됐다. 대상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배우 김아영이 한강의 대역을 맡은 인터뷰 장면에서 보인 다소 과장된 연기가 문제가 됐다. 수상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는 처음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어요. 움츠린 자세와 실눈, 나긋한 말투 등 작가 특유의 모습을 흉내낸 멘트에는 작가의 외모와 목소리를 조롱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개인적으로 흥미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화제적 인물을 패러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노벨 문
2024년 가을, 유니폼이 야구장을 수놓다
가을야구 시즌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야구장에 팬들이 꽉꽉 들어찼다. 광주(KIA 타이거즈)와 대구(삼성 라이온즈)를 오가면서 치르게 되는 한국시리즈도 표 구하기 전쟁이다. 주위에서는 야구장 티켓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라고 호소한다. 정규 시즌 때 2만원가량 하던 블루석이 6만5000원에, 8500원 하던 외야석이 3만원에 판매(잠실야구장 플레이오프 기준)되는 데도 이렇다. 그만큼 프로야구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1982년 출범 뒤 첫 1000만 관중 돌파(최종 1088만7705명평균 관중 1만5122명)가 괜히 이
누가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가
이제는 병사들의 군번줄이 필요 없어졌어요.올봄까지도 추위와 포탄을 뚫고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을 취재했던 김영미 PD가 말했다. 드론이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폭탄을 터뜨려 살상하기 때문에 군번줄은 죽은 자의 목에 걸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런 시신들에서 장기를 채취해 파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도 체온이 남아있던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는 돈으로 환산된다는 것이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양국의 사상자가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최근 나왔다. 100만이라는 엄청난 숫자로도 비극
'순천 여성살해' 범행동기보다 중요한 것
9월 말 전남 순천에서 일면식 없는 10대 여성을 거리에서 살해한 가해자 박대성(30)에 대해 경찰은 범행 동기를 밝히지 못했다. 검찰 송치 후 경찰은 이상 동기 범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언론은 이 사건을 무차별 살해로 다루고, 범행 동기가 오리무중이라는 제목을 단다. 2024년 한국 사회는 박씨가 피해 여성을 왜 800m나 쫓아가서 살해해야 했는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고 한다.원한도 금전적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죽을 만큼 흉기를 휘두르는 건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상황은 아니다. 가해자가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무차
하락장 투자를 권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
인버스(하락장 투자)도 국장(국내주식투자)이다한 경제 유튜버가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국회의원으로부터 재생산되면서 투자자들에게 공분을 샀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시 한국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 하락장에 투자하면 된다고 답한 게 논란이 됐다. 국회의원으로서 농담으로도 입에 담아선 안 될 말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우리 경제가 망하는 것을 독려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국내 증시 투자는 우리 기업 성장을 위한 일종의 지원이다. 이 같은 지지를 밑바탕으로 우리 기업이 성장할 수
개혁엔 늘 저항이 따른다
구멍 막기 법안(Closing the Loopholes bill)이 의회를 통과했다.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2월 엑스(X옛 트위터)에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호주 공정노동법에 뚫려 있는 구멍을 메우는 개정안이 빛을 보게 됐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 개정안은 특수고용직인 화물기사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제 격인 안전운임제를 부활시키는 내용,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가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 등을 담고 있다.윤석열 정부는 틈날 때마다 노동약자 보호를 입에 올리지만 노동법 구멍을 메우기 위한 법제도 개선은 지지부
"정부·기업 다 믿는다"는 북유럽, 신뢰엔 '무한 책임' 있었다
이 사람들은 한다면 하는 겁니다. 그래도 안되겠다 싶으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고요. 상호 신뢰죠.아이슬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 기후변화 대응 출장 중 만난 통역코디네이터에게 가장 자주 들은 말이 바로 신뢰였다. 시민이 정부의 기후 정책을 믿고, 정부도 기업의 ESG경영 등 기후 대응을 신뢰한다는 이야기였다.검증과 의심을 업으로 삼은 입장에서는 이 같은 대전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북유럽 국가 내 신뢰의 배경에는 강력한 규제와 철저한 투명성이 자리하고 있었다.예를 들어, 스웨덴 정부는 오래된 산업단지를 친환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