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청력 테스트로 몰아넣었던 ‘바이든-날리면’ 사태가 일단락되나 보다. 서울고등법원이 “대통령의 발언 시기와 장소 등 전후맥락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봐도 대통령이 해당 부분에서 ‘바이든’이라고 발언했을 합리적 가능성이 배제된다고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외교부 측에 소 취하를 주문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MBC 보도의 정당성이 확인되는 방향으로 사건이 정리되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대로 끝내도 되는 걸까? 찜찜함이 남는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언론탄압 사례로 꼽힌다. 출범 직후, 해외 순방에서 대통령이 조 바이든 당시 미 대통령을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썼다는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사실과 다른 보도”, “동맹 훼손”이라고 보도를 문제 삼았다. 148개 언론사가 ‘바이든’이라 보도했지만, 표적은 MBC였다. 급기야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들의 탑승은 배제됐고, “MBC, 이게 악의적입니다”라는 공식 브리핑(이재명 부대변인 명의)까지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출근길 문답은 중단됐고, 로비 1층에는 가벽이 세워졌다. 국민과 언론 앞에 스스로 벽을 친 셈이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언론의 비판에 귀를 닫은 정부의 말로는 언제나 쓸쓸하다. 윤석열 정부는 그중에서도 최악의 길을 걸었다. 극우 유튜브에서 떠도는 말들을 국정의 동력으로 삼았고, 그 끝은 내란이었다. 그 대표적 언론탄압 사건이 종결을 앞두고 있음에도 씁쓸한 이유는,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의 조정결정문에서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법원이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가르기보다 당사자 간 원만히 해결하는 게 사회에 바람직하다는 의미에서 쓰였다. 매우 상식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앞서 서울서부지법(2024년 1월)은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은’과 ‘날리면’ 중 무엇을 말했는지는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다”라면서도 MBC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당시 법원의 일도양단은 오히려 윤석열 정부의 언론 통제 명분으로 활용됐다. 류희림 체제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판결 직후, 기다렸다는 듯 MBC 보도에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을 의결했다. 한국 사회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재판부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법원이 할 말이 없지 않다는 걸 안다. 이제라도 1심 재판부를 심판하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에 법원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걸 말하기 위함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고, MBC 기자들은 다시 대통령 전용기에 오른다. 대통령실에서 쫓겨났던 기자들도 돌아왔다.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의 해임은 취소됐고, 김의철 전 KBS 사장의 해임도 부당하다는 결론이 확정됐다.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해촉도 취소됐다. 모두 당연한 결론이지만, 윤석열의 언론 장악에 대해 책임진 사람은 여전히 없다.
사실 과거도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독했던 언론 장악에도 대통령은 물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 홍보수석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동관은 오히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윤석열 정부에서 방통위원장까지 지냈다. 책임 없는 과오는 결국 이렇게 반복된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에 대한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한 사람의 죽음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 처리한 뒤 세상을 떠난 김 모 국민권익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 한겨레가 그의 유서를 공개했다. “왜 제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는 절망과 함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느낀 괴로움과 자책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최근에는 이태원 참사 당시 출동했던 119대원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도 전해졌다. 이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더 치열하게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도의적 책임, 법적 책임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