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과정 국민입장서 보도를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7.04.04 14:24:35
시한을 두 번씩이나 위반한 ‘반칙’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다. 두 나라가 작년 6월 얼굴을 마주하고 협상을 시작한지 10개월 만이다. 우리나라 경제와 국민들의 생활과 살림살이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다면 경악할 속도전이다. 하지만 빠르다고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FTA협상 개시 전부터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선결요건을 풀어줘 우리의 중요한 협상 카드를 스스로 포기해버렸다. 또 막바지 단계에서 “협상시한 연장은 없다”던 정부 방침을 생각하면 시한을 두 번씩이나 연장해준 것은 미국의 전략에 휘말렸음을 보여 준다. 시종일관 끌려 다니다 우리 패를 다 보여줌으로써 안 줄 수 있는 것도 추가로 내줬을 소지가 크다. 우리의 협상전략 부재와 졸속 그리고 선결요건을 제시하고 시한을 어긴 미국의 불공정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협상 과정에도 문제는 있었다. 정부는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해 당사자인 국민은 미국 협상단이 자국 의회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내용이 보도돼 알게 되는 것이 있을 정도로 철저히 따돌림 당했다. 제 나라 국민에게도 감추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협상의 이익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대외비 문건 유출로 미국 협상단에게 우리 전략이 간파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아군에게도 알리지 않은 전략을 적에게는 알려준 꼴이다.
스위스는 유전자조작 생물체의 수입규제 완화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반대표가 높게 나오자 미국과 FTA 협상을 중단해버렸다. 말레이시아도 말레이인 우대 조달정책 등의 이견으로 미국과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부러운 모습이었다.
철저한 준비도 없이 주도권을 잃은 협상의 타결안은 우려했던 대로다. 우리는 자동차 관세 분야 외에는 별다른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 미국의 섬유시장 개방, 무역구제절차 개선, 조달시장 접근 문제는 얻어낸 게 없거나 실익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반면 우리는 쌀을 제외한 미국이 원하는 산업 모든 분야를 개방했다. FTA 대상이 아닌 쇠고기 검역 문제에서도 뼛조각 허용을 약속했다.
이런 일방적이다시피 한 결과를 낳은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럼 언론은 책임이 없을까? 대부분의 언론은 협상단의 브리핑에 의존해 협상 진행상황을 받아쓰기식으로 보도하는데 치중했다. 또한 협상 타결이 가져다줄 열매를 장밋빛으로 과대 포장하고, 협상 내용의 심층 분석이나 타결에 따른 민생의 변화와 부작용과 그 대책에 대해선 소홀히 다뤘다. 1996년 OECD 가입과 외환위기를 부를 무렵의 언론 보도행태와 흡사했다. 몇몇 신문들이 협상타결 시점에 대해 지난주 앞질러 오보를 낸 것을 보면 언론들은 협상 내용과 득실을 심층 분석하기보다는 ‘타결’을 기정사실화 하고 그 시점 보도에 더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정부간 협상은 타결로 끝났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타결안을 국회에서 비준하게 되면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시장 개방이 뒤따르고 경제·생활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기에 타결안이 어떤 내용인지 하루빨리 공개 돼야 한다. 개방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해서 이 타결안을 검증하지 않고 허투루 비준하면 국민과 국가의 앞날에 돌이킬 수 없는 화를 가져오고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국민의 절반가량이 반대하는데도 미국의 전략에 끌려 다니며 국익과 민생에 심대한 타격을 주게 될지도 모를 협상안을 이제는 문구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고 민생과 국익에 비추어 철저히 득실을 따져야 한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미국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의 말은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 것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국민에게 제대로 위험신호를 알리지 못한 원망을 다시는 듣지 않도록 언론도 그 사명을 게을리 하거나 정부의 나팔수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국민의 편에서 국회와 언론이 FTA 논의에 나서 비준해야할지 말지를 철저히 검증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