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2000년대 초반 이야기다. 지금은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꾼 문인단체가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로 불리던 시절.
작가회의 사무실은 5호선 공덕역 지척에 있었고, 기자 초년병이던 나는 그 사무실을 아버지 집보다 더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 작가회의 이사장은 소설가 이문구(2003년 타계). 시인 김정환이 상임이사였다.
그날도 요즘처럼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문구 이사장과 김정환 상임이사, 시인 이시영, 지금은 순천대학교 교수로 있는 소설가 전성태 등이 사무실에 모였는데 누군가 “오늘 점심은 시원하게 냉면 어때?”라고 제의했다.
서른한 살 젊었던 내가 평양냉면을 처음 맛본 날이다. 업력이 수십 년에 이르는 유명짜한 평양냉면집 하나가 마포구 염리동에 있고, 작가회의에서 도보로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초면으로 인사 나눈 평양냉면은 어땠냐고? “감동스러운 맛 아니었냐”고 지레짐작해 묻는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천만에.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송아지 목욕시킨 물에 거칠게 툭툭 끊어지는 거무튀튀한 면을 담아낸 맛대가리 없는 국수라고 느꼈으니.
평양냉면과의 첫 만남은 별반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남았다. 근데 왜였을까? 아주 가끔씩 그 밍밍한 국물과 거친 면발이 떠올랐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들이 떠오르는 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듬해엔 10번쯤 그 냉면집을 갔고, 그다음 해엔 20번쯤 갔으며, 경북 포항으로 주거를 옮긴 후 볼일 보러 서울에 갈 때면 가장 먼저 서울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마포역 뒤편 염리동으로 갑시다”란 말을 반복했다.
국회의원이며 전 통일부 장관인 이인영(전대협 초대 의장이기도 하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곳도 그 냉면집이다. 수행원 없이 혼자 냉면을 먹으러 온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입장해 묵묵히 냉면 그릇을 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후 이인영은 세상 어떤 정치인도 신뢰하지 않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정치인’이 됐다. 국회의원 정도 되면 특권의식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쨌건. 잡설이 길면 추하다. 냉면 이야기로 돌아가자.
냉면의 역사는 유구하다. 60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치적(治績)을 칭송받는 동시에 수많은 아들·딸과 손자·손녀를 둔 행복했던 조선의 왕 세종은 고기와 더불어 냉면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기울어가던 무렵. 당시 실권 세력인 신안동 김씨 일족에 의해 왕으로 ‘픽업된’ 나무꾼 출신의 철종은 보위(寶位)에 오른 후 자신을 호위하는 무인들에게 “더운 여름에 수고들이 많다”며 냉면 한 그릇씩을 하사했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이다.
내친김에 또 다른 ‘차가운 국수’ 이야기 하나 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 <친구>를 만든 감독 곽경택이 개봉 직후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오래전 기사지만 이런 대목을 읽은 기억이 선명하다.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어야, ‘아, 내가 부산에 왔구나’라는 게 몸으로 느껴집니다” 운운.
이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공감했기에 그랬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곽경택과 동일하게 부산에 태를 묻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는 음식.
사실 평양냉면의 맛에 투항하기 전엔 ‘부산의 냉면’이란 별칭을 지닌 밀면을 매해 여름 10~20그릇씩 먹었다. 밀면은 평양냉면과 달리 면에 메밀을 섞지 않는다. 그래서 면발이 하얗다. ‘화이트 누들’이란 또 다른 별호(別號)가 생긴 이유다.
자, 곧 점심시간이니 정리하고 냉면 먹으러 가자. 밀면도 좋고.
평양냉면은 꾸밈과 자극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무미(無味)에 가까운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에헴” 헛기침으로 폼을 잡는 봉건시대 지주와 닮았다.
그렇다면 밀면은? 시뻘건 양념장과 노오란 달걀지단으로 장식하고, 가능하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맛이다. 그러니, 차가운 국수 한 그릇조차 오뉴월 호사로 귀하게 여겼던 소작농과 닮지 않았나?
한국에선 여름마다 지주와 소작농의 다툼, 아니 ‘냉면과 밀면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당신은 누구를 응원하려는가?
[필자 소개] 홍성식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 연재를 이어갈 홍성식은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