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상 대상,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한국기자상 대상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한국기자’란 이름이 붙은 이 상을 한국기자들은 5년이나 품에 안지 못했다.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남 보기 우세스럽다.

한국기자상은 지난 1967년 제정, 매년 수여된 것으로 자타칭 ‘한국의 퓰리처상’이다. 대상은 수상자 당사자에게 뿐 만 아니라 한국 기자 전체에게 영예로운 일이다. 기자 집단이 공동체에서 나름대로 제 역할을 했다는 칭찬, 혹은 격려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이 5년째 나오지 않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언론 환경의 변화를 꼽는 이들이 많다. 정보 공개 통로가 다양해져 기자들의 역할이 축소됐다는 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 정보 생산자이자 전달자를 자처하는 강호의 무사들이 무수히 출몰하는 시대다. 기자만이 펜을 휘두르던 시대가 지난 것은 오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기자들의 과로다. 세상을 뒤흔들 특종, 기획은 모두 시간과 공을 들여야 나온다. 넓게 바라봐야 금광맥이 보이고, 깊게 파고들어야 보석이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매일매일 무수한 지면과 보도 프로그램을 메우다보니 파김치가 되어 있다. 이런 심신으로는 며칠씩 취재의 광맥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심사 방법과 심사 관행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대상 선정시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겨야 한다는 요건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나뉠 경우 대상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파장이 컸던 기사에 점수를 높게 주는 관행이 있어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한 문화, 사회 기획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 목소리가 이번 심사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대상이 나오지 못한 원인이 이렇게 분명하니, 기자들 개인은 무력하게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일까. 내년에 또 대상이 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말아야 할까.

강호의 무사들이 무수히 출몰한다고 해도 최고의 검법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제 검무의 미친 사위에 만족해 킥킥대는 수많은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일까.

기자의 자존심을 지탱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보의 전달을 통한 공공 이익에의 기여다.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족속들과는 확실히 행보를 달리해야, 스스로 기자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한없이 가벼운 것을 원하는데, 기자들이라고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무거운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기자이기를 원한다면, 기자 본연의 소명 의식을 안으로, 안으로 새겨서 치열성을 확보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아직도 이 땅에 기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비리를 베어버리겠다는 의식. 이 시대의 사상과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 흐름을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미래의 바람직한 세상을 가늠해보겠다는 야심. 이것들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기자들이 꼭 껴안아야 할 덕목이다.

이 덕목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대상 수상자가 꼭 나오기를 바란다. 우리 내부에서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독자와 시청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그래서 한국 기자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그런 수상자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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