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만드는 그대들에게

정말 5년 전과 똑 닮았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새해가 또 밝았지만 2002년처럼 올해 첫날도 주요 언론은 대선 예비후보의 지지도 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5년 전처럼 과열, 혼탁, 편파 보도의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요즘 대선 관련 보도는 예비후보의 정책 조명보다는 경마 중계 같은 지지율 순위발표, 이른바 빅3 후보 중심의 일일 동정, 가상후보 대결, 특정후보 편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대선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도 조사를 무려 1백여 차례나 보도했다고 한다. 그것도 대다수가 단순히 순위매기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아직 대선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았고 대선도 1년여가 남았는데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최근에는 ‘아무개 대세론’이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굳히기’라는 표현의 보도까지 등장했다. 이쯤 되면 여론조사라는 이름을 빌린 것일 뿐 사실상 ‘여론조작’ 수준이다.

우리 언론의 대선 보도 태도에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겉으로는 대선 공정보도를 한다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특정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편들기 보도를 했다. 보수신문들이 1992년엔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1997년과 2002년엔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1997년 주요 언론사의 일선 정치부 기자 1백3명이 마음을 합쳐 대선 공정보도 촉구 선언을 했을까? 사정이 이랬지만 당시 지지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힌 언론사는 하나도 없었다. 국민과 유권자에겐 언론 스스로를 공정하게 보도하는 심판으로 인식시키면서 실상은 그 심판이 지지하지 않은 상대후보를 숨어서 공격한 셈이다.

한 보수 언론사주는 “우리나라에서는 지지후보가 낙선되면 그 다음에 신문이나 방송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언론사가 대선 지지후보를 밝히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과연 그럴까? 탈세한 신문사가 사법처리를 받은 뒤에도 잘 유지되고, 사주가 감옥에 갔다 와도 끄떡없는 신문사가 있는 걸 보면, 지지후보가 낙선했다고 언론사가 부당하게 처벌받거나 망한다는 언론사주의 말에 수긍하기 힘들다. 더구나 살아있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말폭탄’에도 ‘융단폭격’으로 맞대응하는 걸 보면 이제 언론권력도 지지후보가 낙선했다고 해서 정치권력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허약한 존재는 더 이상 아니다. 지지후보를 안 밝히는 것은 대선이라는 최대의 흥행시장에서 심판을 자처하며, 후보와 유권자들에게 영향력을 극대화하여 자사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꼼수로 여겨질 뿐이다.

언론은 도대체 언제까지 아름답지 못한 대선보도 행태를 계속 보여야만 하는가? 유권자보다 먼저 대선 후보를 선택하고 그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는 잘못된 모습을 말이다. 5년 뒤에도 우리의 주장에, 유권자와 국민과 역사에 부끄러운, 이 같은 종류의 글이 또 실려야 하겠는가?

이제는 선거 관련 법 개정이 앞서야 하지만 선진국처럼 이제 우리 언론도 떳떳이 대선 지지후보를 공표할 수 있어야 한다. KBS 미디어포커스에 따르면 기자·언론학자의 70%가 찬성하는 걸 보면 가능한 일이다. 대권을 만드는 그대들이여! 숨어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지 말고 떳떳해지자. 말로는 책임의식을 갖고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고 정책중심 보도를 하겠다고 해놓고 사설과 칼럼에서는 노골적으로 대권후보를 지지하는 꼴사나운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될 경우 보복이 우려된다는 변명은 기우일 뿐이다. 사설과 칼럼에서 지지후보를 밝힌다면 오히려 스트레이트 기사는 보다 더 공정해 질 수 있다.

언론 덕에 대통령을 제대로 뽑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언론 스스로 대권후보 지지문제를 풀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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