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가 거대 재벌에 맞서려면
편집위원회 | 입력
2006.08.02 13:29:44
안팎으로 언론인들의 상황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X파일’의 보도로 문화방송의 한 기자와 월간조선의 한 기자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휘말려 실형을 구형받았다. 이들 두 기자는 이에 맞서기 위해 여러 모로 분투하고 있다.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정통 시사주간지인 시사저널도 삼성에 관한 기사삭제 사건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들 두 사건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크거나 작은 언론사들이 세계적인 거대재벌인 삼성과 맞서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엑스파일 사건’은 한 언론경영인(그는 언론인이라 할 수 없다)과 대재벌의 회장, 그리고 고위 검사와 정치인이 ‘검은 고리’로 얽혀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 수작(秀作)이었다. 보도를 둘러싸고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보도 이후 진행되는 사법적 절차와 이에 관한 언론계의 대응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이 사건은 성격상 헌법적으로 보호되는 국민의 알 권리 및 보도의 자유를 한 편으로 하고, 다른 편으로는 사적인 대화를 보호하려는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권리(또는 헌법상의 인간적 삶을 누릴 권리)가 충돌하는 것이다.
언론사 경영인과 대재벌의 회장이 정치-경제-언론간 유착성 음모(?)를 벌인 것을 두고 이것을 사적인 대화로서 보호해야 할 지 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보도물의 공공적 성격을 무시하고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기자들을 통비법 위반으로 처벌할 방침인 모양이다.
그러나 법을 넘어 상식적으로 언론인들이 엑스 파일을 보도한 것은 기자 개인의 사익을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공적 이익을 생각한 것인지 검찰측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왜 사적인 대화를 기록한 테이프를 방송하거나 보도했겠는가?
두 기자에 대한 선고공판이 이달 11일로 정해져 있다. 이제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인적 성격을 가진 인물들의 사적 대화의 보호에 관한 논쟁은 법정에서 진행될 전망이다. 법원은 이 문제를 심사숙고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사의 알릴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을 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시사저널의 갈등도 거대 재벌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는 앞의 사건과 성격이 동일하다. 시사 저널의 문제는 발행인이 삼성에 관련된 기사를 삭제한 데서 불거진 내적 갈등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이 문제는 크게 보면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을 상대하는데 한 언론사 내부의 대응이 조절되지 못하고 ‘적전 분열’의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있다.
중앙일보 사장을 지냈던 금창태 발행인이 시사저널의 보도에서 그동안 삼성의 이익을 챙겨왔을 것이라는 개연성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시사저널의 사장으로서 삼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취재기자들과 갈등을 빚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자들이 주장하는 ‘기사의 일방적 삭제’이든 금 발행인이 주장하는 ‘명예훼손의 우려’이든 양측은 더 깊은 대화를 가져 외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내부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고 양측간 갈등의 골이 너무나 깊이 패여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삼성과 언론을 잘 아는 금 발행인이 수시로 “언론이 힘들어지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결국 삼성뿐”이라는 말도 범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의 발언을 삼성의 눈치만 본다고 폄훼할 일이 아니다. 삼성이 그 만큼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삼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문화방송 월간조선 시사저널 등 매체들은 조직 내부의 힘을 모두 합치기 바란다. 공동 전선을 펴더라도 세계적 거대 재벌 삼성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한 명의 기자가 어찌 삼성을 이길 수 있겠으며, 언론사 내부가 분열돼 있어서야 어찌 삼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는가?
이번 두 사건을 계기로 언론사들은 언론단체나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응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아야 한다. 경제력, 정보력, 나아가 재판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대 재벌과 맞서려면 언론사와 시민단체 등이 힘을 모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거대 재벌 삼성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