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지방선거가 남긴 것
편집위원회 | 입력
2006.06.07 10:41:56
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유권자들은 정부·여당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갈팡질팡한 정책에 대해 가차없는 심판을 내렸다.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도 담겨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개혁세력에게 교훈을 주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결과적으로 몇가지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
첫째, 선거의 성격이 ‘여권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되면서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 16명 중 12명, 기초단체장 2백30명 중 무려 1백55명을 당선시켰다. 광역의원 지역구 전체 6백55석의 80%에 가까운 5백19석도 휩쓸었다. 다른 당들은 교섭단체 구성조차 어려워졌다. 특히 서울의 선출직 광역의원 96석을 모두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지방의회가 지방정부의 보조기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둘째는 이번 선거가 정부·여당을 단죄하기 위한 ‘묻지마 투표’로 변질되는 바람에 지방의회를 건강하게 키우던 지역의 일꾼들까지 모조리 희생양이 됐다. 재선이나 3선에 도전했던 선출직 단체장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밀렸다. 또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졌던 무소속 기초의원들도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낙선했다. 이번 선거에선 기초의원까지 정당 공천이 확대됐지만,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데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무소속으로 나선 이들이다.
세째는 지역주의 망령의 부활 조짐이다. 선거 결과 주요 5당 가운데 지역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전국 정당’을 꿈꾸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후퇴했다. 민주당은 철저히 호남에서만 당선자를 냈지만, 광역단체장 2명, 기초단체장 20명을 당선시켜, 열린우리당을 제치고 ‘지방권력 제2당’으로 올라섰다. 국민중심당도 충남에서만 기초단체장 7명을 배출해 광역·기초단체장 당선에 실패한 민주노동당 보다 외형적으로 앞섰다. 결과적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은 ‘기본’은 한 셈이다.
이번 선거에 나타난 언론 보도도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전반적인 보도 양상은 정책 선거에 비중을 두면서 과거에 견줘 많이 차분해졌다. 후보들이 네거티브 선거를 자제한 점도 있었지만, 언론이 매니페스토 운동의 확산으로 정책선거 보도를 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있어 보였다. 신문·방송 모두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데 많은 지면과 화면을 할애하려고 애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의미’는 있지만 ‘재미’가 떨어지는 정책보도에 대해 언론은 전략적 배치와 꾸준한 보도에 인식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정책선거 유도를 “하긴 싫지만 안할 수 없는, 그래서 적당히 보도하는” 보도행태를 보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사건은 흥미거리에 목말라하던 언론의 갈증에 ‘오아시스’ 구실을 톡톡히 했다. 특히 보수 언론은 박 대표 피습사건을 ‘정치 테러’로 규정하면서 ‘배후’나 ‘배경’이 있는 것처럼 온갖 의혹을 쏟아냈다. 선거 막판에는 체면도 접어둔 채 박 대표를 미화하는 기사까지 거림낌없이 써댔다.
이밖에 대부분의 언론은 기계적 균형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쉽사리 한쪽 후보만 비판하지 못했고, 상대 후보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 더욱이 일부 보수언론은 ‘형평성’이라는 허울 아래 제목이나 사진, 일부 기사에서 교묘히 한나라당 후보를 부각시키고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낡은 행태를 재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