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평화' 메시지 뒤로 대통령 띄우는 언론

교황 방한 언론 보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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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동아일보 8월15일자 1면, 조선일보 8월19일자 1면, MBC ‘뉴스데스크’ 8월 14일 3번째 리포트.  
 
MBC 뉴스데스크, 20초짜리 단신처리 등 세월호 관심 축소 보도
중앙일보 칼럼 “교황 방문은 아시아 교세 확장…나머지는 팬 서비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간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떠났다. 그가 머무는 동안 한국 사회는 ‘프란치스코 신드롬’에 빠져 있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 유머와 배려가 깃든 화법과 남다른 소통 방식, 소박한 옷차림과 즐겨먹는 음식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됐다.

신문은 매일 4~5개 면을, 방송 뉴스는 많게는 하루 7~8꼭지를 교황 뉴스로 채웠다. 언론은 교황이 전한 화해와 평화, 사랑과 용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참어른’의 가르침으로 새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언론사별로 조금씩 달랐다. 특히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관심과 발언을 다루는 보도에서 차이가 드러났다.

신문 보도의 차이는 교황이 방한한 다음날인 15일부터 나타났다. 이날 주요 일간지 1면 사진의 주인공은 교황이었다. 그러나 사진이 전하는 메시지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는 교황이 서울공항에 영접 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국민일보와 동아일보는 교황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악수를 하는 사진을 실었고, 조선일보는 교황 뒤로 박 대통령의 얼굴이 보이는 사진을 게재했다. 세계일보와 중앙일보는 ‘쏘울’을 탄 교황 사진을 선택했다.

교황이 떠난 다음날인 19일도 비슷했다. 이날 경향·서울·세계·중앙·한국일보 등은 교황이 18일 명동 미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맞잡고 나비 배지를 선물 받는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국민·동아일보와 한겨레는 교황이 서울공항에서 마지막 인사하는 모습을 담았다. 조선일보만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념메달과 묵주를 선물하는 사진을 선택했다.

기사와 사설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경향과 한겨레는 교황이 세월호 사건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정부여당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경향은 18일자 사설에서 “교황의 걸음걸음에 ‘세월호 메시지’가 강력하다”면서 새누리당은 이를 깊이 새겨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도 19일자 사설에서 “(교황이) 극도로 바쁜 일정을 쪼개 세월호 유가족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난 그 행위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며 “만약 정부와 정치권이 교황이 떠나기만을 기다린 듯 세월호 유가족의 뜻을 짓밟는다면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위선 덩어리라는 낙인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을 사진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방점은 ‘위로’와 ‘치유’에 찍혔다. 이들 신문은 교황의 메시지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동아는 15일자 사설에서 “교황의 메시지를 정치적 목적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교황이 원하는 바도 아니다”라고 지적한 데 이어 19일자 사설에서도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벌써 교황의 순수한 배려와 위로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이어서 오히려 정치사회적 대립이 심해질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은 18일 ‘시시각각’ 칼럼에서 이번 교황의 방한 목적이 “아시아의 교세 확장”에 있다고 규정하며 “나머지는 팬 서비스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황의 행보나 메시지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는 투로 읽힌다. 이 칼럼은 “진영논리에 따라 교황까지 제 입맛에 맞춰 편 가르는 게 아닌지…”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교황의 관심을 가장 축소 보도한 언론사는 MBC였다. KBS ‘뉴스9’는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매일 교황과 세월호 유가족과의 특별한 만남을 단독 리포트로 보도했고, SBS ‘8뉴스’는 나흘 연속 교황과 세월호 관련 리포트를 두 번째로 보도하는 등 비중을 들였다. MBC만 달랐다. MBC ‘뉴스데스크’는 교황이 보여준 세월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리포트 속 한두 문장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지난 16일 교황이 광화문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이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을 때에도 MBC는 이를 달랑 한 문장으로 전달했다. 당시 김 씨의 발언 중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 제정되도록 도와주시고 기도해 달라”는 부분은 쏙 뺀 체 “잊어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세월호”라고 한 부분만 편집해서 보도했다.

지난 17일 세월호 사고로 숨진 단원고 학생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 평신자 자격으로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사실도 MBC만 유일하게 20초짜리 단신으로 보도했다. MBC는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의 ‘메시지’ 보다 그의 화법과 유머 감각 등 부수적인 것들을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세월호’와 ‘특별법’에 대한 언급을 거의 노골적으로 기피하다시피 했던 MBC가 치중한 것은 대통령이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1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교황 환영 연설을 3번째 꼭지로 비중 있게 보도했고, 18일 교황이 출국한 당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명동 미사 참석을 2번째 리포트로 보도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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