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연금·감세 혜택…유럽 선진국, 기자 복지 팔 걷어

세계의 언론인 복지현장을 가다 (1)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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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모바일 등장과 언론사 간 과열경쟁 탓에 언론계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여파는 고스란히 현장을 뛰어 다니는 기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회사가 먼저 살아야 기자도 있다’는 논리에 밀려 기자들의 복지문제는 항상 후순위로 떠밀리고 있다. 반면 기자들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복지에 대한 기자들의 기대치는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 펴낸 ‘한국의 언론인 2013’보고서에 따르면 기자들이 생각하는 노후 준비와 후생·복지에 대한 직업 환경 요인 중요도와 만족도 간 차이는 각각 1.24, 1.17을 기록해 전체 항목 중 1위, 2위를 차지했다. 중요도와 만족도 간 차이가 클수록 직업 환경 요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제 느끼는 만족도는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보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한국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 지원으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 미국 등 세계의 언론인 복지현장을 살펴봤다.
브뤼셀·런던·파리=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벨기에, 기자 은퇴연금 일반인보다 30% 많아
기자 500여명에 초·중·고 파견 강사료 지원


유럽은 누구에게나 동등한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보편적 복지제도’가 잘 완비된 국가들이 많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일부 국가는 언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의 제도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유럽 경제·문화의 중심인 벨기에다.

벨기에 기자들의 경우 일반인보다 은퇴연금(남자 65세, 여자 62세)을 30%가량 더 받는다. 보편적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유럽에서 기자들만을 위한 연금 제도가 가능한 이유는 무얼까.

벨기에는 1,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당시 벨기에 언론인 대부분은 점령군인 나치의 검열이 강화되면서 부를 좇기보다는 신념에 따라 펜을 내려놓았다.

나치에 부역하기 보다는 명예를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절필한 4~5년 동안 당연히 돈을 벌지 못하면서 생활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 정부와 국민들은 이들의 사명감과 애국심을 잊지 않았다. 벨기에는 지난 1971년 사회제도 전반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연금 제도를 마련했다. 당시엔 언론인뿐 아니라 비행기 조종사, 광부, 선원 등 상대적으로 3D 업종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줬다. 이들 직업이 갖는 어려움과 위험성 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 유럽재정 위기 탓에 연금개혁이 진행되면서 조종사, 광부, 선원에 대한 연금 혜택은 수술대에 올랐지만, 언론인들에 대한 연금 혜택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연금개혁을 하면서 일은 더 하지만 연금을 적게 받는 추세 속에서도 언론인들만큼은 예외가 된 것. 다만 언론인들은 다른 직군보다 현직에 있을 때 세금을 2%가량 더 내고 있다.

부수적인 혜택도 주어진다. 벨기에 철도청(SNCB) 등에서 운영 중인 철도를 이용할 때 기자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탑승할 수 있고, 공항 주차장이나 박물관 이용에 있어서도 자유롭다.

이와 함께 벨기에 정부는 신문읽기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초·중·고등학교에서 ‘일간지를 펼치라’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신문 구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현직 기자 500여명이 신문읽기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초·중·고등학교에 특별강사로 매년 파견되는데, 정부가 강사료 명목으로 연간 10만 유로(1억5000만원)를 지원하고 있다.

마틴 시모니스 벨기에 기자협회 사무총장은 “1971년 사회제도가 정립될 당시 1,2차 세계대전 때 벨기에 언론인들이 보여준 애국심과 사명감을 높이 샀기 때문에 연금제도에 있어 혜택을 주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고증이 됐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언론인들만 특혜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NUJ 등 언론·자선단체와 함께
전·현직 언론인·유족에 재정적 지원


영국은 기자단체와 함께 자선단체가 언론인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현직 기자들은 물론이고 일선에서 물러난 기자, 사망한 기자 유가족까지 함께 돌보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는 영국 언론인노동조합(National Union of Journalists·이하 NUJ). 지난 1907년 설립된 NUJ는 지난 100년 넘게 기자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 왔다.

NUJ는 현재 영국 내 신문, 방송, 잡지, 프리랜서 작가 등 3만여명을 회원으로 거느리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의 기자 90%가량이 NUJ 회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영국 내 대표적인 언론단체다.

NUJ는 회원들을 대신해 임금협상 대리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기자 재교육, 법률자문 등 언론인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3~4명으로 구성된 NUJ 소속 노조 위원들이 회원들을 대신해 임금협상을 진행한다. 정규직 기자는 물론 프리랜서 기자 역시 언론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NUJ와 같은 이익단체뿐만 아니라 각종 자선단체도 언론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NUJ 엑스트라(NUJ Extra)’도 그 중 하나. 1910년 출범한 NUJ 엑스트라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직 회원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은퇴한 기자나 유족들에게도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다만 전직 회원의 경우 1년 이상 회비를 내고 퇴직 당시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언론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NUJ 엑스트라는 현재 언론인 10여명을 지원하고 있지만, 비밀보장 등의 이유로 신상정보나 지원 금액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로 붙이고 있다.

NUJ 관계자는 “집세를 낼 수 없거나 병원비가 부족한 경우 등 대부분 위급한 상황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며 “전·현직 회원은 물론이고 사망한 기자 유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내에는 NUJ 엑스트라와 비슷한 언론인 자선단체가 여럿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언론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또 다른 단체인 ‘언론인 자선단체(The Journalists’ Charity)’의 경우 런던 인근 서레이주 도킹타운에 은퇴 언론인을 위한 주거복합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방갈로 8채, 아파트 15동 등으로 꾸며진 단지에는 주택이 없는 언론인과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운영비는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내는 회비뿐 아니라 영국 시민과 기업 등이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 등으로 운영된다. 여기에 정부가 이들이 낸 기부금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등 간접지원을 하고 있다.

대부분 영국 자선단체들은 ‘자선법(The Charity Act)’에 등록돼 정부로부터 세제혜택을 받고 있다. 예컨대 영국 시민이 자선단체에 10파운드를 기부할 경우 이를 받은 단체는 0.25펜스에 해당하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간접 지원방식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 기자들에 최대 1천여만원 감세 혜택
신문용지·우편 발송비 등 연간 5억 유로 지원


프랑스 기자들은 정부로부터 연간 최대 7650유로(1150만원)의 감세 혜택을 받고 있다.
기자들은 연간 소득에서 교통비, 식사비 등으로 사용한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고 있는 것.

상징적인 금액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정부가 이런 제도를 마련한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기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 기자 대부분은 기자 첫 발을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시작하고, 기자 초년 때 변변한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생활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데 따른 간접적인 지원책이다.

반면 프랑스 정부는 매체 보호를 위해 연간 5억유로란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신문용지와 우편 발송비 등을 지원한다는 명분에서다.

프랑스 정부는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던 1944년 다양한 매체 보호를 위해 이런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언론사 사주가 지원금을 착복해 프랑스 내에서 종종 문제가 돼 왔다. 이 때문에 이런 지원이 특정 매체가 아닌 기자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는 데 사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앙또니 벨랑제 프랑스 기자노조 위원장은 “프랑스 기자 역시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며 “프랑스 인쇄매체들이 사라지거나 어려워지면서 기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남은 기자들의 업무강도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창남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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