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현실로…그릇된 것들이 빚어낸 '참극'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취재후기-목포MBC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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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MBC 보도국 기자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영훈 차장, 김양훈 차장, 양현승 기자, 김진선 기자, 신광하 차장, 한승현 보도부장, 김윤 부장, 문연철 차장. (사진=목포MBC)  
 
4월 16일. 보도부 회의가 시작된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여객선이 사고를 당한 것 같다는 제보 전화였다.

그저 단순한 좌초 정도로 여겼다. 계속되는 익명의 제보. 심각성을 더해갔다. ‘수백 명의 승객이 탔다’ ‘인천을 떠나 제주로 가던 세월호’라는 사실과 선사 홈페이지에서 제원, 출발 시간을 검색해 원고 없이 9시30분 시작되는 생활뉴스에 전화로 첫 소식을 전했다.

뉴스를 마치고 3명의 취재기자가 진도로 향했다. 보도부장과 나머지 취재기자들은 보도부에서 생방송과 연락 가능한 모든 곳에 전화를 걸어 사실 관계를 확인해 나갔다. 취재진을 위한 선박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선을 빌려 타고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고향인 서거차도 앞바다였다. 배로 40여분을 달려 11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멀리서 세월호가 눈에 들어왔다. 충격 그 자체였다.

6800톤급 대형 여객선이 최초 시간으로부터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뱃머리만 남긴 채 잠겨 있었다. 먼저 도착한 해경 경비정과 헬기, 어선들은 잠긴 선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손을 쓰지 못했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몇 명이나 구조됐는지 현장 지휘를 맡고 있던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60여 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언론사에서는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보도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부 언론에서 나오고 있는 구조 현황은 사실과 다르다며 최소한 200명 이상의 승객이 배 안에 갇힌 것 같다고 전했다. 아무래도 구조된 승객들의 수가 중복된 것 같다고 확인을 요청했다. 보도부장은 본사 네트워크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사고해역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황당한 뉴스를 봤다. 구조된 승객 수가 360명을 넘었다는 보도였다. 모든 언론사가 중앙재난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현장에 가장 먼저 취재기자가 도착한 MBC마저도.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구조됐다는 승객들의 수는 줄고 줄어 172명에 멈췄고, 이후엔 변하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온 실종자 가족들이 도착하면서 진도 팽목항은 눈물의 항구가 됐다.

눈물의 항구. 잠수부가 선체에 ‘진입했다’ ‘못했다’, ‘선내에 엉켜 있는 시신이 확인됐다’ ‘아니다’. 오보는 이어졌다. 수백 명의 구조 인력이 투입 됐다던 말도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의 받아쓰기의 전형이 계속됐다. 팽목항에선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말이 번져갔다.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들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살아 남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버렸다. 해경은 신고 시간을 속이고, 처음 출동한 해경 경비정은 세월호와 교신조차 못한 채 주먹구구식 구조에 나섰다.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초기 수중구조요원은 없었다.

진도VTS, 연안해상관제센터는 관할 해역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과적도 관행처럼 묵인되고, 감독 기관들이 눈을 감아온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사고 현장을 찾은 일부 정부 관계자들과 공무원들은 실종자 가족들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컵라면을 먹었고,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고,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기도 했다. 진도군청 상황보고서는 인터넷을 검색해 아무렇게나 적은 사고 시간이 며칠씩 안전행정부 참고 자료로 보고됐다. 수사기관은 핵심 피의자인 선장을 해경 직원의 집에서 재웠다가 들통 났다. 일부러 지어내도 힘들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모두 현실이었다.

평소 관리 감독을 잘했더라면, 선원들이 승객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여겨 퇴선 명령만 내렸더라면, 사고 신고가 접수됐을 때 더 빨리 출동했더라면, 출동한 해경이 조금만 더 잘 대응했더라면, 언론 보도가 더 정확했더라면….

세월호 사고는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 모든 게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이런 비참하고 끔찍한 사고가 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팽목항은 지금도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이 뿌려지고 있다. 그 마르지 않는 눈물은 세월호의 사고가 여객선의 침몰이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묵인해왔던 부끄럽고 그릇된 것들이 빚어낸 참극임을 알려주고 있다.

<목포MBC 박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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