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세월호' 침몰사고 보도

과도한 취재 경쟁 매몰…어뷰징‧검색어 기사까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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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일 배우 출신 정동남 대한구조연합회 회장이 세월호 생존자 구조활동에 참여했다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정동남’이란 단어가 한때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을 포함해 승객 475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언론보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과열된 취재 경쟁 등으로 무리한 인터뷰와 부적절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생존자, 실종자 가족 등에 대한 ‘2차 피해’의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매번 재난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의 보도행태가 문제됐지만 당시에만 자성의 목소리가 높을 뿐,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17일 발생한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 사고’에서도 일부 언론사가 붕괴된 리조트 건축 자재 밑에 깔린 학생의 얼굴 사진을 여과 없이 보도해 누리꾼들로부터 눈총을 샀다.

무엇보다 과열된 취재경쟁 때문인데, 최근엔 언론사의 트래픽 경쟁까지 더해 도를 넘고 있다.

실제 일부 언론은 대다수 탑승자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금 등을 언급해 공분을 사고 있다.

MBC는 지난 16일 ‘“2달 전 안전검사 이상 없었다”…추후 보상 계획은’이란 보도에서 “인명피해가 났을 경우 한 사람당 최고 3억5000만원, 총 1억 달러 한도로 배상할 수 있도록 한국해운조합의 해운공제회에 가입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언급했다.

일부 언론들은 ‘사선의 문턱’에서 벗어난 생존자와의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질문을 던져 문제가 됐다.

채널A 박종진 앵커는 지난 16일 구조된 안산 단원고 학생과의 인터뷰에서 “뛰어내렸을 때 물 깊이가 어땠느냐, 물 깊이는 낮았느냐”고 질문해 눈총을 샀다.

JTBC 역시 사고 당일 세월호의 생존자인 안산 단원고 여학생과의 인터뷰 도중 같은 학교 동급생인 정모 군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등 부적절한 질문으로 물의를 빚었다.

JTBC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날 오후 4시와 5시30분 뉴스 속보시간을 통해 공식 사과했고, 이어 메인뉴스인 ‘JTBC 뉴스9’에서 손석희 앵커(보도담당 사장)가 직접 사과했다.

손석희 앵커는 “지난 30년 동안 갖가지 재난 보도를 진행하며 내가 배웠던 것은 무엇보다 희생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라며 “JTBC는 오늘의 실수를 바탕으로 더 신중하게 보도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조선닷컴 등에선 단원고 학생들이 가입한 보험사와 상품명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해 논란거리가 됐고, 일부 언론은 숨진 학생의 책상과 노트를 촬영한 사진을 버젓이 보도해 공분을 샀다.

더구나 일부 언론은 이번 사고를 가지고 기사 어뷰징(동일 뉴스콘텐츠 중복전송)과 검색어 기사 생산에 나서 입방아에 올랐다.

많은 언론들이 17일 배우 출신 정동남 대한구조연합회 회장이 세월호 생존자 구조활동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쏟아내면서 ‘정동남’이란 단어가 한 때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은 지난 16일 각 사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편집을 자제해달라는 협조요청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사들이 재난사고가 날 때마다 상식에서 벗어난 보도행태를 보이는 것은 과열된 취재 경쟁 때문이라는 게 언론학자들의 설명이다.

언론사 간 속보경쟁이 불붙으면서 새로운 팩트를 찾기 위한 무리수를 둔 취재 관행 때문인데, 이 탓에 피해자들의 인권 등은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직후 논의했던 '재난보도준칙(가이드라인)' 초안에 따르면 ▲이미 발생한 피해 상황 전달보다 앞으로 전개될 다른 피해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보도 ▲인명 구조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취재 ▲위기 상황에 대한 심리적·정신적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데 주력 ▲불확실한 내용의 검증과 유언비어 발생이나 확산 억제 기여 등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했다.


또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인터뷰 강요 금지 ▲생존자 및 사상자의 신상 공개 자제 ▲근접 촬영 자제 ▲자극적인 장면 반복 보도금지 등 피해자와 가족의 프라이버시와 명예, 심리적 안정의 보호를 강조했다.

특히 이런 경쟁적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생존자는 물론 피해자 가족 등에겐 ‘2차 폭력’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 대형오보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1993년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에서도 대부분 언론들은 서해 훼리호 선장인 백운두씨가 생존해 도주했다고 보도했다가 배 안에서 시신이 발견돼 사과문을 게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7일 성명을 내고 “어제 하루 언론들은 이 비극적인 사고를 두고 광고성 기사를 내는가 하면 기사 장사를 하는 ‘어뷰징’ 행위마저 서슴지 않았다”며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는 전 언론들은 무분별한 취재경쟁을 중단하고 취재와 보도에 더욱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중앙대 성동규 교수는 “종편 출범 이후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재난보도에서도 선정적인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며 “재난보도준칙 제정과 함께 이에 대한 기자들의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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