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메라, 차량지원 없지만 오늘도 달린다…'긍정의 힘' 믿기에

[기자25시] (9)경인일보 강승호 디지털뉴스부 카메라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개그맨 고명환씨 인터뷰 촬영을 하며 모니터를 확인하고 있는 강승호 기자.  
 
지역신문에 대한 차별 알게 모르게 존재
인터뷰 하자고 하면 튕기고 연락 안되고…

취약한 정보력 현장 박치기로 보완
하루 일정 2~3개씩 소화…퇴근하면 밤 9시

수원서 인천공항, 홍대로 180km 이동
“그래도 재미있어요” 일이 에너지의 원천


온라인 콘텐츠 강화가 모든 언론사의 공통된 화두다. 지역 신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지역 언론 홈페이지 방문자 수 1위를 자랑하는 경인일보도 3년 전 기존의 온라인뉴스팀을 디지털뉴스부로 확대 개편한 뒤 온라인 강화 전략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지역 밀착성과 현장성을 강화하는 한편, 대중화 전략도 포기할 수 없다. 지역신문사로선 이례적으로 연예가 뉴스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그 중심엔 경인일보 유일의 연예전문 강승호 기자가 있다. 카메라 한 대로 사진 촬영부터 영상 취재·편집까지 일당백을 소화하며 편집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강 기자를 지난 10일 만났다.

강승호 기자의 명함에는 ‘경인일보 편집국 디지털뉴스부 카메라기자’라고 적혀 있다. 1년 전에는 ‘방송보도부’ 소속이었다. 2009년 OBS경인TV에서 연예뉴스 조연출로 입문한 그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경인일보와 뉴스제휴를 맺는다는 소식에 지난 2012년 경인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영상 제휴가 흐지부지 되었고, 그는 할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망연자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회사를 설득했다. 어느 순간 그의 손에는 DSLR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사진은 그의 전공이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영상 촬영과 편집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그였다. 대학에서 전기과를 졸업하고 축구심판으로 2년을 뛰다 친한 형의 소개로 아카데미에서 3개월 배운 게 전부였다. “자신 있으니까 시켜만 달라고 했어요. 진짜 자신 있었거든요.”



   
 
  ▲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수 박재범의 출국 사진을 촬영한 뒤 이메일로 전송하고 있다.  
 
DSLR 카메라 한 대로 그는 VJ가 됐다가, 사진 기자가 됐다가 한다. 경인일보 홈페이지에는 그가 찍은 사진과 영상이 위아래로 걸려 있다. ‘강승호 기자의 리얼영상’이란 제목으로 유튜브에 공식 계정도 있다. 담당 부장이 지어준 제목인데 그는 “오글거려서” 싫단다. 30명이 될까 말까 하던 구독자 수는 1년도 안 돼 1000명 넘게 늘었다.

매일 쏟아지는 보도자료 틈바구니에서 ‘핫(hot)한’ 이슈를 골라내 카메라를 들고 달려간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발표회나 스타들이 참석하는 행사는 대부분 서울 중심부에서 열린다. 경인일보 본사가 위치한 수원에선 어디든 먼 거리다. 때문에 그는 다른 기자들보다 더 빨리,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물리적인 어려움만 있는 건 아니다. 지역신문에 대한 차별도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 “큰 기획사들은 약간 무시하기도 해요. 인터뷰 하자고 하면 튕기고, 나중에 연락 주겠다면서 연락도 없고.” 정보가 누락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친한 기자들에게 전화해서 일정을 확인하고, 취재 나갈 때마다 보도자료를 부탁하고 다니곤 한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영상 촬영을 위한 6mm 카메라 한 대 없다. 그가 쓰는 카메라는 사진팀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10년도 더 됐다. 차량 지원도 없어 항상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해서 다녀야 한다. 필요성은 알지만, 지역신문 여건상 그만큼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탓이다. 그래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조만간 새 카메라와 렌즈를 받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쉽고 불만도 있지만, 그는 투덜대기만 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문제를 돌파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프라이드가 누구 못지않게 강하기에 그는 ‘긍정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겨낸다.

오전 11시15분. 강승호 기자, 강희 디지털뉴스부장, 강효선 기자까지 ‘쓰리 강’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오후 6시에 있을 개그맨 고명환 씨 인터뷰 내용 점검 차원이다. 장소 섭외와 인터뷰 콘셉트, 꼭 들어가야 할 질문 등을 공유하고 나서 아침부터 잡고 있던 영상 편집을 마무리했다.

수원과 서울을 오가는 일정을 하루 2~3개씩 소화하면서 영상 편집까지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일정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오면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 있다. 촬영한 파일을 정리하고 편집까지 마치면 밤 9시가 넘기 일쑤다. 서울본부에서도 일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좀처럼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 박재범의 ‘공항패션’을 찍기 위해 일렬횡대로 늘어선 사진 기자들.  
 
3분 촬영 위해 1시간 반 달려와 1시간 기다려

이날 일정도 강행군이다. 미국으로 출국하는 가수 박재범의 공항패션을 촬영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까지 날아갔다가 고명환 씨 인터뷰를 하러 홍대 앞까지 가야 한다. 점심을 먹자마자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공항까지는 약 78킬로미터. 시내를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식곤증이 몰려오는 모양이다. 껌을 하나 물고, 연신 허벅지를 주무른다.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후배 강효선 기자에게 괜히 면박도 준다. 라디오 볼륨이 점점 높아진다.

오후 2시30분.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10번 게이트 앞. 커다란 ‘대포’를 장착한 카메라를 어깨에 맨 사진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다가가 반가운 체를 한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기자들이 속속 모여든다. 알고 보니 이날 아침부터 SBS ‘정글의 법칙’팀과 할리우드 영화 ‘어벤저스2’에 출연하는 배우 수현 등이 잇따라 출국해서 기자들이 공항에 진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금시초문이었던 강 기자는 뒤늦게 “아!” 한다. 이날 저녁 골프선수 박인비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는 사실도, 배우 박해진이 출국한다는 사실도 모두 다른 기자에게 전해 들었다. 이럴 땐 지역신문이 가지는 한계와 혼자 연예뉴스를 전담하는 탓에 취약한 정보력을 실감하게 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박재범은 오후 3시30분에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의 출국 소식을 알려온 곳은 박재범 소속사가 아닌 패션 홍보 대행사였다. 박재범이 자신이 모델로 있는 H브랜드의 모자를 착용하고 올 예정이니 “특별히 모자 클로즈업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포털 사이트를 장식하는 연예인들의 ‘공항패션’ 사진은 대개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다. 물론 기자가 직접 스타의 일정을 확인해서 취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타의 공항패션을 ‘협찬’한 브랜드 업체가 홍보 효과를 위해 먼저 취재 요청을 하는 게 다반사다.



   
 
  ▲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뉴스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모습.  
 
오후 3시16분이 되자 기자들이 게이트 밖으로 하나둘 나서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서 연예인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횡단보도를 건너 공항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만 촬영하는 게 기자들이 정한 룰이라고 한다. “전에 팬들이 몰려들어 서로 엉키면서 기자들이 넘어지고 완전 난장판이 된 적 있었거든.” 공항 촬영이 처음인 강 기자에게 한 선배 기자가 귀띔해준다. “인천공항은 역광이 심한 편”이라거나 “무조건 많이 찍는 게 좋다”는 노하우도 함께.

오후 3시20분. 길 건너편에 검정색 대형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기자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일었다. 이미 일렬횡대로 서서 사진 촬영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문이 열리고 힙합 옷차림의 남자들이 내렸다. “박재범 아냐?” “백댄서 같은데?” 그러는 사이 열린 문 안 쪽에서 가방을 둘러매는 박재범의 모습이 보였다. “차 안에 있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셔터소리.

박재범이 검정색 스냅백을 거꾸로 쓴 채 차에서 내렸다. 잠시 신호를 기다리다, 건널목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기자들 쪽으로 걸어 왔다. 2차선 횡단보도를 건너 기자들 틈을 지나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총 3분이었다. “얼굴 한번 제대로 안 보여주고 들어가기냐” 기자들이 투덜대며 공항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공항 카운터 앞에 서자마자 박재범은 모자를 바꿔 쓴다. 기자들은 이미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3분 찍으려고 1시간 반을 달려오고 1시간을 기다렸네요.” 강 기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3분 동안 찍은 사진이 124장이다. 다른 사진 기자들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진 작업에 한창이다. 보통 편집까지 해서 전송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강 기자는 사진을 다운 받아 압축파일로 만든 뒤 팀장에게 메일로 보내면 끝이다. “시스템이 안 돼 있거든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일하는 게 즐거운 ‘예스맨’
다시 차에 올라타 홍대 앞으로 향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근처 유명한 떡볶이 집에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미리 섭외해둔 북카페로 갔다. 문을 여는 순간, 도서관 같은 적막과 고요함에 압도됐다. 한 쪽에 마련된 ‘대화공간’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따로 문이 달리지 않아 걱정이 됐다. 이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적합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강 기자가 재빨리 다른 장소를 물색하러 나섰다. 그와 한발 차이로 고명환 씨가 들어왔다. 다시 돌아온 강 기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장소를 변경해야겠다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그렇게 근처 한적한 카페에서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최근 재능기부와 친환경 사업 준비에 한창이라는 고씨는 “오늘 인터뷰 5시간은 해야 할 것”이라며 두 강 기자를 긴장시켰다. 과연 5시간도 모자라겠다 싶을 정도로 그는 달변이었다. 친환경 사업을 계획하게 된 이유와 현재 제작을 준비 중인 뮤지컬에 관한 얘기까지 쉼 없이 말을 쏟아낸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강효선 기자도, 옆에서 영상 찍으랴 사진 찍으랴 분주한 강승호 기자도 빠져드는 기색이다. 강 기자는 카메라를 보다가도 틈틈이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그러면 고씨는 다시 또 신나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거의 세 시간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가 다 끝나고 뒤늦게 차와 빵을 주문하니 밤 9시가 넘었다. “인터뷰가 너무 길어져서 편집하는데 애먹겠어요.” 회사로 돌아가면 한밤중이다. 다음날 오전 11시 영화 제작발표회 때문에 또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니 오늘 촬영 분량은 집에 가서 정리해야 한다.

수원에서 인천공항으로, 홍대로, 하루 동안 약 130Km를 달리고 다시 또 50Km를 넘게 달려 회사에 돌아가야 하는 일정.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힘이 넘친다. 오히려 사진 촬영을 하자는 기자 앞에서 “평범한 건 싫다”며 연신 엉뚱한 포즈를 취한다.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는 것이 넘치는 에너지의 비결이다. “사진 찍는 걸 어렸을 때부터 워낙 좋아했으니까요. 남들 안 찍는 방식으로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면 보람을 느끼죠.” 덕분에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전혀 없단다. 다만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회사의 지원이나 주위 여건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에겐 취재하며 찍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두 ‘추억’이다. 그의 노트북 화면에 적힌 ‘FILM IS MEMORY’는 그가 사진을 찍는 모토다. “똑같은 걸 촬영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창작물이 된다는 게 너무 좋아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사진 퀄리티가 높다고 할 수도 없지만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합니다.”

영화 ‘예스맨’과 노홍철을 좋아하는 그는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면 하고 후회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대책 없는 자신감도 넘친다. “포털이 ‘갑’인 시대에 네이버가 우릴 쫓아오게 할 만한 아이디어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싫다. “경인일보가 지역신문 1위를 넘어 수도권과 경쟁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연예기자로서 꼭 해보고 싶은 건 배우 최강희 인터뷰.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자 이상형이란다. ‘예스맨’의 바람은 이뤄질까. 긍정의 힘을 믿는다면, 아마도.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