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온데만데'와 코드커팅

[언론다시보기]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


   
 
  ▲ 정재민 교수  
 
넷플릭스가 궁금했다. 미국에 있는 지인들이 넷플릭스 때문에 매일 밤 영화 보느라고 잠을 못잔다고 했다. 강의하면서 논문 쓰면서 번번이 넷플릭스를 언급하면서도 정작 한국에서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연구년으로 캐나다에 오자마자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첫 달은 무료고 다음 달부터는 한 달에 7.99달러.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테드(TED)를 비롯한 유명강의 모음 등 다양한 콘텐츠를 골라 볼 수 있다. 외국영화 섹션에 가면 한국영화도 하부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홈페이지에 어린이용(just for kids) 메뉴 옵션이 따로 있을 만큼 아이들 볼거리는 압권이다.

미래의 시청자를 배양한다더니 이해가 간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했다는 화제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열 세편도 몰아서 봤고, 본전 뽑고도 남을 만큼 영화도 많이 봤다. 꼭 넷플릭스 때문만은 아니지만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결국 블록버스터를 비롯한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 매장들이 사라졌다.

넷플릭스가 비디오 가게를 추억 속으로 묻어버리더니 이제는 케이블 회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케이블 가입을 해지하는 이른바 ‘코드커팅(cord cutting)’이 일어나고 있다. 타임워너의 CEO 제프 뷰크스는 코드커팅이 가난한 일부 계층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폄하했다.

과연 그럴까? 소비자들은 보지도 않는 채널까지 묶어서 비싼 가격을 요구하는 유료방송보다 훨씬 싸고, 내가 원하는 것들만 직접 골라서 볼 수 있는데다 취향에 맞는 콘텐츠까지 추천해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선택할 소지가 크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비싼 케이블방송 이용료 때문에 케이블 선을 끊었다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2013년 상반기 6개월간 미국에서 케이블방송을 해지한 사람이 100만명에 이른다.

캐나다에 사시는 부모님도 코드커팅 대열에 합류했다. 대신 한국 방송프로그램과 영화를 볼 수 있는 동영상 사이트에 가입하고 컴퓨터를 TV수상기로 연결해 볼 수 있게 해 드렸다. 부모님들은 한국에서 요즘 방영 중인 연속극을 보시고, 이미 종영된 드라마도 찾아보기 시작하셨다. 뉴스와 시사다큐도 찾아서 보신다.

그 사이트 이름이 온디맨드(On Demand)로 시작한다. 아버님은 영어표기대로 읽으신다. ‘온데만데’. 그리고 주위사람들에게 자랑하신다. “나는 이제 다 ‘온데만데’로 봅니다. ‘온데만데’ 좋습디다. 싸지요, 뭐든지 보지요, 낮에든 새벽에 잠 안올 때든 언제든 보지요, ‘온데만데’ 덕분에 요즘 살맛납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준다는 소리다.

다시 넷플릭스로 돌아가보자. 2013년 10월, 소니 픽처스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넷플릭스를 통해 최초 방영하기로 계약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드라마를 제작해서 방송사가 아닌 온라인 배급업자에게 먼저 공급한 것은 처음이다. 11월에는 마블(Marvel)이 슈퍼영웅 시리즈를 제작해서 2015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첫 방송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최고의 콘텐츠가 지상파방송사나 유료방송채널을 통해서 먼저 방송되는 것이 아님을 거듭 밝혀주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술이 너무 앞질러가서 세대간의 격차가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었다. 나이든 사람들이 적절한 소비기술을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 이용방법이 갈수록 쉬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팔순이 가까운 아버님에게도 ‘온데만데’ 시청은 텔레비전 켜고 끄는 것만큼 쉬운 일이 되었다.

미디어의 진화는 생각보다 빠르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적응은 그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새로운 미디어 소비방식을 허투루 봐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미디어 권력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들에게 있는 시대기 때문이다.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