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만 바뀐 '대한민국 자화상'을 비추다

경향신문 장도리 모음집 '516공화국' 출간한 박순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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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박순찬 화백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한국사회는 겉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그 모순을 들춰내 다시금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네 컷의 네모난 창속에 우리 사회가 그대로 압축돼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권력’부터 ‘죽은 서민의 사회’까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지난 1995년부터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경향신문 ‘장도리’의 박순찬 화백이 모음집 ‘516공화국’을 지난달 출간했다. 지난 대선 정국부터 현 박근혜 정부 1년간의 내용을 추린 것으로, 지난 2009년 발간한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와 지난해 ‘나는 99%다’ 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516공화국이라는 제목과 이집트 벽화를 본떠 그린 표지는 단연 화제다. 516공화국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하지만 박 화백이 고심 끝에 ‘5·16’과 ‘공화국’을 합친 신조어다. 표지는 여전히 ‘신적’ 존재로 여겨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 아래 박근혜 대통령이 양팔을 펼쳐들고 주변에 정치·검찰 등의 권력이 떠받드는 모습이다. “5·16쿠데타를 통해 박정희 군부정권이 들어선지 33년 만에 51.6% 득표율로 집권한 박근혜 정권을 관통하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그렸다”는 박 화백은 “516이라는 공통된 숫자 속에 시대적 아이러니와 묘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장되지 않은 지극한 현실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 96회 탄신제에서 ‘반신반인’ 등 정치인과 관료들이 칭송한 행태를 반영한 것이다.



   
 
  ▲ '516공화국'  
 
‘나는 99%다’와 ‘516공화국’은 시기상 대통령이 다르지만 연결선상에 있다. “두 권을 비교해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맥을 짚어볼 수 있다”는 박 화백. ‘경제’와 ‘박정희’라는 우리 사회의 막연한 ‘신화’적 존재의 실체를 철저히 드러내며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두 권 모두 이집트 벽화인 것도 도식화된 인간사회를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무덤’ 속에 있다는 의미도 있다.

날카로운 비판 덕에 화백을 걱정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도 많다. 박 화백은 “걱정하는 자체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됐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씁쓸해했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것. “사회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비판적인 시사만화로 대리만족하는 이유다. 빨리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모순된 문제를 더 만화로 그릴 것이다. 언론인들도 기사로써 풀어야 할 숙제다.”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해 파급력이 커지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 만화를 그릴 때 더욱 조심스럽다. 인터넷 환경 발달로 독자들의 다양한 정서를 공유하면서 현실을 더 반영하게 됐기 때문이다. 일방향적이던 과거에는 직접 소통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있다. 실제 이전에는 역사적 감정 및 트라우마를 깊이 고려하지 못해 상처를 준 적도 있다. 지난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와 무장공비를 빗대 전경 진압을 그렸을 때다. 당시 전·의경 부모 모임 단체가 강하게 항의했는데 적대적인 무장공비에 아들을 비교했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문에 만평이나 네컷 만화가 줄어들며 시사만화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시사만화라는 분류와 신문에 실리는 만화를 격상시키는 풍토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 화백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시사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이 신문밖에 없었다. 굳이 분류하면 신문만화”라며 “신문이든 단행본이든 시사적인 만화를 그리면 시사만화”라고 말했다. 지면에서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서 신문에 만화를 실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어지는 상황이지만 블로그, 연재만화 등 다양한 형태로 게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도리는 내년이면 19주년을 맞는다. SF물을 좋아하고 극화를 하고 싶었던 박 화백은 그 길과 다른 길을 꾸준히 가고 있다. 초창기 매일 마감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지금은 “매일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복”이라는 그다. 복잡한 현실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것이 임무라는 박 화백은 오늘도 독자들과 공감할 만화를 그린다.

“우리 주변에는 지나간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기록들이 많지 않아 자꾸 잊혀진다. 단행본 표지 같은 그림을 몇 점 더 그려 ‘시대의 기록’으로서 의미를 갖는 전시회를 내년쯤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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