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요구해도 '툭'하면 비공개…투명한 정보공개 갈길 멀다

정부 정보공개 청구 제도 15년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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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가족대표로 미납 추징금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5월 전두환 비자금 비밀보고서와 관련된 2004년 검찰의 수사기록을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차남 전재용씨 등 사건 관계자들의 부동의 및 사생활 침해 우려 등으로 정보를 비공개했다.(뉴시스)  
 
정보 근거한 탐사취재기법으로 발전 가능
허위정보 제재 등 정보공개법 개선 필요


# 한 방송사 기자는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출장 경비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 등을 보며 출장기간 사용 비용에 대한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보안업무규정상 비밀이라며 공개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해당 기자는 “출장에 세금을 얼마나 썼는지 알려달라는데 왜 비공개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행정심판을 신청했다.

# 한 국방부 출입기자는 육·해·공군이 운영 중인 골프장과 연간 골프장 수입을 알기 위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육군과 해군은 자료를 보냈지만 공군은 보안과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국민이 왜 이런 것까지 알려고 하느냐”는 담당자의 물음에 기자라고 밝히자 “기자라 더 알려주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보공개 청구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지 15년이 됐다. 지난 1998년 도입 당시 2만6338건이 접수된 데 비해 지난해 49만4707건으로 약 18.7배가 증가했다.

언론들도 취재 기법의 하나로 점차 이용이 늘어가는 추세다. 정보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데이터저널리즘 등 심층 탐사보도와도 밀접하다. 하지만 정부 및 지자체, 공공기관 등 내부 감시 자료가 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은 여전히 차단되고, 자료의 질 또한 보장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보공개 청구는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행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한다는 취지 아래 이뤄진다. 이 때문에 알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언론이 활용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정보공개 청구 캠페인’을 지난 2010~2012년 한겨레와 진행한데 이어 올해 5월부터 시사저널과 공동으로 실시해왔다. 시사저널은 “한번쯤 생각했던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은 알 권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각 기관에 청구한 자료를 토대로 다양한 기획기사를 보도해왔다. 이달 말까지 정보공개청구 공모전도 실시한다.

언론에는 취재의 1차적 근거자료와 단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지난 2008년부터 꾸준히 정보공개 청구를 해온 박대용 춘천 MBC 기자는 “1차 자료가 바탕이 되면 과학적인 분석에 따라 현장 확인, 인터뷰 등 뒤이은 취재도 시간이 단축되고 집중돼 탄탄해진다”며 “취재원의 멘트에 의존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아닌 기록, 수치로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해 기사의 결정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저 허상을 찾아내는 역발상적인 단독 취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 공개의 판단은 정부에 맡겨져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은 정보를 부분적으로 공개하거나 비공개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안전행정부가 발간한 ‘2012년 정보공개 연차보고서’는 정보 공개율이 2008년 이후 매년 약 90% 수준에 머문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비율과 달리 실제 기관들이 불리한 정보를 자의적으로 감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부처별로 제공하는 자료에서도 질적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요 권력기관일수록 비공개 비율이 높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보고서 결과, 중앙행정기관 중 국정원이 41건 중 23건인 56%를 비공개해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국세청이 4041건 중 2002건인 49.5%, 방위사업청이 96건 중 31건인 32.3%, 대통령실이 71건 중 22건인 30.9%, 대검찰청이 1644건 중 405건인 24.6% 순이었다. 경제지의 한 기자는 “국민들이 원하면 공개하는 것이 정석인데 보안을 이유로 자료가 없다거나 공개하지 않는다”며 “올해 300건 정도를 청구했는데 제대로 들은 답변은 30건이 안 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고 꼬집었다. 비공개의 주된 이유는 법령상 비밀 또는 비공개, 개인의 사생활 비밀 침해 우려, 업무수행 지장 등이다.

실제 언론이 청구한 정보에 대한 비공개도 다반사다. 한겨레는 5월 ‘전두환 은닉재산 찾기’ 기획을 진행하며 지난 2004년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된 차남 전재용씨 조세포탈 사건 수사기록을 청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6월 한겨레에 ‘정보 비공개 결정통지서’를 보내 “전재용씨 등 사건 관계자들이 기록공개에 ‘부동의’ 의사를 밝혔다”고 통보했다.

속보경쟁, 출입처 위주 등 현 언론 시스템에서는 현실적인 사용이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인력부족이 태반인 언론사에서 정보공개 청구부터 취재, 보도까지 장기간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시사저널 한 기자는 “청구 전 아이템과 데이터 기획 등 천천히 사고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언론의 취재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정보공개 청구가 기사작성에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활용할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때문에 아직은 관심을 갖는 일부 기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에는 박근혜 정부가 공공정보 공개, 개방 확대 등을 표방한 ‘정부3.0’ 비전을 발표했다. 중앙 및 지자체의 공개대상 정보를 청구 없이 원문 공개하고, 정부나 자치단체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기관에 대해 정보공개를 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방향은 바람직하다. 다만 실효성을 얻기 위해 질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환경영향평가서, 타당성조사 등 빈번한 청구 자료는 애초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도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정보공개법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에는 공무원들이 허위 정보를 제공하거나 법을 위반할 경우 처벌 또는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취재지원선진화방안 논의 당시 처벌조항을 둔 개정안이 제시됐으나 2008년 정권 교체가 되면서 실행되지 못했다. 박대용 기자는 “처벌 조항이 전혀 없기 때문에 법이 온전히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며 “공무원들이 정보공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로서, 투명하고 올바른 정부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소장도 “공무원들이 지켜야 하는 법인데 오히려 정보공개를 할 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법이 제 기능을 못한다”며 “기자들이 정보공개를 많이 청구하고 적극 사용하면서 문제제기를 해야 제도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진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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