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힘 믿는다면 전문 취재 인력 투자해야"

권혜진 뉴스타파 리서치팀 디렉터·데이터저널리즘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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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기자들의 웹 정보 활용에 관한 연구로 문헌정보학 박사 학위를 따고 동아일보를 퇴사한 권혜진 기자는 KBS 탐사보도팀을 이끌다 쫓겨나 울산에서 은둔 중이던 김용진 기자와 조우했다. 두 ‘선수’들은 “한국의 ‘프로퍼블리카’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 결실은 ‘뉴스타파’로 맺어졌다. 권 기자는 자문위원으로 시작해 올 초 리서치팀 디렉터 겸 데이터저널리즘연구소장을 맡으며 ‘뉴스타파 2기’에 본격 승선했다. 뉴스타파가 “한국 언론 최강”이라고 자랑하는 리서치팀은 이렇게 탄생했다.

권혜진 기자는 명실 공히 국내 최고의 데이터저널리즘 전문가다. 20여 년을 한결같이 “데이터만 출입”해온 이 분야 권위자다.

그가 처음 데이터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1991년이었다. “정보 전문가로 민주화에 기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정보가 곧 권력”이란 것을 느낀 그는 1995년 국내 언론사 중 1호 정보검색전문가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중앙일보에서 한계를 느낄 즈음 동아일보에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99년 자리를 옮긴 뒤 ‘전공’을 발휘해 컴퓨터 활용 취재기법(CAR)을 이용한 보도로 제1회 한국조사보도상, 이달의 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역시 한계는 있었다. 그의 일은 데이터를 다루는 것이었지만, 소속은 언제나 인터넷뉴스팀, 디지털뉴스팀이었다. 데이터 저널리즘이 본격화되기에는 아직 한국 언론계의 현실이 성숙하지 못했다.

“디지털 저널리즘이 소위 ‘충격 고로케’로 일컬어지는 낚시 기사로 연명”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그는 부끄러워졌다. 그는 “저널리즘과 미디어 비즈니스와의 충돌을 현장에서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아일보를 떠났다. 여러 언론사에서 영입을 제안했지만, 그는 “비영리 매체로 가겠다”는 신념을 확고히 했다. “저널리즘과 미디어 비즈니스의 충돌은 구조적인 것”이며 “저널리즘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관이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때 만난 게 김용진 대표였고, 뉴스타파였다. 안정된 일터를 떠났지만, 그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단다.

20여년 동안 데이터를 다루고, 십수 년 동안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에서 데이터저널리즘을 강의하면서 그는 ‘데이터의 힘’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그는 “데이터에서 새로운 팩트가 나온다”고 주창한다.

그러나 2007년 이후부터 데이터저널리즘을 기반으로 한 탐사보도가 급성장한 해외 언론과 달리 우리나라의 데이터저널리즘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데이터 취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7대3 정도로 현장 취재를 앞섰지만, 여전히 데이터를 다루는 일은 소홀하게 취급된다. 뉴스타파의 조세피난처 특종을 보면서도 많은 언론들이 부러워만 할 뿐, 전문 취재 인력에 대한 투자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권 기자는 “기자들은 정보를 많이 얻으면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이라며 “정보 복지 차원에서라도 언론사마다 취재 현장에서 같이 기획하고 리서치도 할 수 있는 전문 취재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필요한 인력은 리서처와 데이터저널리스트, 프로그래머 이렇게 3명이면 충분하단다. 하지만 신문들은 경영 악화 때문에, 방송은 정치적인 이유로 탐사보도팀을 두지 않거나 있던 팀마저 없애버리곤 한다.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기자들은 데이터저널리즘과 탐사보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보이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권 기자는 “수많은 데이터의 바다에서 보물을 찾는 건 기자 개인의 노력과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데이터저널리즘의 가치를 공개와 공유, 협력, 연대에서 찾는다. 그가 타 언론사의 탐사보도 프로젝트에 적극 협조하고,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 데이터를 인터넷 상에 공개하는 것도 같은 취지에서다.

그는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데이터로 만들어 공개하고 이를 통해 데이터저널리즘의 가치를 전파해 나가고자 한다”며 “뉴스타파가 데이터저널리즘을 이끌어 한국에서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가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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