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게린'과 한국 언론

[국제기자연맹 세계총회 참가기]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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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 마약거래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다 마약밀매 조직원에게 살해당한 아일랜드 기자 ‘베로니카 게린’의 동상(사진 위)과 동상 아래 새겨진 문구.  
 
국제기자연맹(IFJ)의 제28차 세계총회가 지난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개최됐다. 전 세계 130개국 400여명의 기자들이 참가했고, 올해 상반기 EU 순회 의장국인 아일랜드 정부는 몇 달 전부터 IFJ 세계총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번 총회는 더블린의 상징적 건축물인 더블린 캐슬에서 열렸다.

그리고 더블린에 도착한 셋째 날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됐다. ‘베로니카 게린’.
더블린 캐슬 뒤편에 위치한 자그마한 공원을 산책하다 그녀의 동상을 발견한 것이다. 순간 너무도 미안하고 창피하고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해왔다는 사람이 지금껏 그녀를 몰랐다는 데 따른 죄책감이랄까. 조엘 슈마허 감독이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알 리 만무했다.

“Be Not Afraid.”
37살의 나이에 삶을 마감한 아일랜드의 여기자 베로니카 게린(1959~1996)의 동상에 씌어 있는 문구다.

게린은 1990년대 중반 아일랜드의 사회문제가 됐던 불법 마약거래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다 1996년 6월 26일 마약밀매 조직원으로부터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게린은 1995년 ‘국제 자유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양심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녀에게 두려움은 비겁함이었으리라.

IFJ가 올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전 세계 408명의 기자들이 갱단의 총탄에 목숨을 잃거나 전쟁터, 재난현장 등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이 눈을 감은 이유는 바로 기자였기 때문이다.
IFJ 총회 마지막 날 각국 기자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게린의 무덤을 찾아 붉은 카네이션을 바쳤다. 게린의 무덤 앞에서 잠시나마 고개를 숙인 채 기자의 사명과 언론의 역할을 되새겨 봤다.

마이클 D.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도 게린을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히긴스 대통령은 IFJ 총회 개막식 축하연설에서 “언론은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언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자유는 사회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힘인 동시에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고 “언론에 대한 탄압은 기자 개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권과 공공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긴스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에게는 언론자유와 언론의 다원성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과 정부의 역할은 분명 다르지만 민주주의를 구현한다는 목표에서는 따로일 수 없다.
언론은 진실을 알리고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 침묵하지 않아야 하며, 정부는 국민의 대변자인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어떤 불의(不義)에라도 맞서 싸우다 곤경에 처한 언론인들이 있다면 그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기자이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당해고 1년을 맞은 MBC 기자와 PD들, 5년여 동안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 서지 못하고 있는 YTN 기자들을 이제는 더 이상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국제기자연맹은 이번 총회에서 YTN, MBC 해직 언론인들의 무조건적인 즉각 복직, 그리고 공정보도 회복을 위해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긴급한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정부는 전 세계 일선 기자들의 최대의 공론장에서 터져나온 일치단결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새 정부가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슬로건은 ‘국민행복’이다. 하지만 자유가 없는 곳에 행복은 없다. 민주주의 국가의 최대가치, 자유의 척도인 언론자유의 파수꾼들이 해직의 고통에 신음하는 나라에 진정한 행복이 가능할까. 베로니카 게린은 동상만을 남기고 떠나갔지만 우리의 해직언론인들은 뜨거운 가슴 그대로 돌아와야 한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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