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 앨리스와 MBC

[언론다시보기] 김보라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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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라미 변호사  
 
문화방송은 2011년 7월 13일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특정인, 특정 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는 발언이나 행위로 인해 회사의 공정성이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는 경우”에는 고정출연을 제한하겠다는 사규를 확정했다. 사회에서는 이를 그 취지와 연관시켜 소위 “소셜테이너금지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방송의 위 사규는 특정 소셜테이너를 출연시키지 않겠다는 아집을 노출시킨 것 이외에도 이 회사 경영자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의견을 가지지 않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점,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도 정상적인 시사, 보도 방송을 할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 의문이 든다. 문화방송조차 마지막 뉴스에서는 특정 이슈에 대한 자사 논설위원의 논평을 하지 않는가. 두 번째로 떠오른 의문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수년간 방송심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을 문화방송이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표현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소위 ‘사실’을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작용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표현자의 관점 또는 의견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학적 의미의 객관적인 사실을 표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대부분의 표현들은 사실과 의견이 혼합된 혼합진술들이다.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표현자들의 관점들이 포함되어 드러난 다양한 의견들을 토론을 통해서 사회적 의미구성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상의 자유시장이론이 바로 이런 취지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환경은 단지 표현의 자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진실 발견을 위하여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표현을 촉진시켜야 할 미디어산업의 구성원인 문화방송의 이번 사규는 정말 이상하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의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는 모양새이다.

특히 방송출연자들이 “문화방송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모호한 기준제시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문화방송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자들의 의견은 신중히 청취하고 방송에 내보내야 하는 것이 문화방송의 공정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문화방송의 사규는 수년 동안 ‘공정성’을 정치적 악용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공정성을 무기삼아 만든 문화방송의 사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치적으로 현정권에 불리한 표현물들을 공정성을 이유로 징계하고 있는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실제로도 이 사규는 직접적으로 김여진이 상징하는 소셜테이너들을 압박하는 모양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못생긴 하트 여왕의 제국이 떠오른다. 하트 여왕의 신하들은 의견을 가지질 못한다. 의견이 있어도 목이 잘릴까 두려워 하트 여왕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문화방송이 하트 여왕의 제국에서의 하트 여왕인지, 아니면 하트 여왕의 신하로서 이 사규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혹 문화방송이 우리시대의 미디어 공공성을 위한 충정에서 이 사규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이거나 첨예한 이해관계에 의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뇌의 시대에는 결국 “유일하게 의견을 가질 수 있는 힘”의 눈치를 보는 자들만이 방송가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이상한 사규 이전에도 문화방송은 자의적으로 진행자를 그만두게 하거나 자사 보도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그 사회적 의미들을 외면하곤 했다. 그러나 이 이상한 현상을 공식적으로 사규로 만들었다는 취지에서, 그 의미는 공식적으로 확장, 재생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문화방송의 이 이상한 사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력친화적인 방송심의와 더불어 “사회의 권력에 아부하고 아첨하고 눈치보고 기회주의적으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사회에 널리 뿌리고 있어 매우 충격적이다. 미디어 산업에서 만든 것 치고는 참으로 이상한 사규다. 김보라미 변호사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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