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性的 지향 지우면 사람이 보인다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공동기획]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권보도가 만든다 <4> 노인·어린이·성소수자 인권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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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개인·가정문제로 치부하지 말아야


“고령사회의 그늘은 앞으로 올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5월17일에 게재한 조선데스크 ‘늘어나는 노인 분노범죄’는 노인범죄의 중요한 원인을 ‘분노’로 분석하며 우리나라 노령사회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보여줬다. 그러나 노인(범죄)들이 우리 사회의 부담이며 그늘이라는 문제점이 크게 부각된 반면 대안 제시는 부족했다. 특히 노인문제를 효도를 통해 가정에서 해결하라는 듯한 언급은 논란거리다. 칼럼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노인문제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적인 한계와 문제, 개선방안 제시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제주시가 주최한 어버이날에 무슨 일이?’(세계일보,2011.5.11)기사는 중식으로 제공된 국수가 종전의 고기국수가 아닌 멸치국수여서 어르신들의 분노가 깊었다는 보도다. 행사예산 300만원이 삭감됐기 때문인데 기사는 노인들의 원색적인 불평과 비난을 여과없이 내보냈다. 이로 인해 유사 행사시 개선방안보다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남도록  만들고 있다.

고령사회는 ‘그늘’인가
노인문제를 사회적 부담이나 시혜의 대상차원에서 접근하면 인권을 간과하기 쉽다. 1991년 12월16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의 독립, 사회참여, 자아실현, 존엄성 등이 그것이다. 노인문제를 인권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거시적으로 정책과 제도적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언론 보도도 이런 맥락에서 풀어가야 한다.



   
 
   
 
노인시설의 인권문제도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일본 사회복지법인 대표의 발언을 보도한 국민일보 ‘‘동화원’ 하시모토 원장 “커튼 안치고 기저귀 가는 등 한국의 노인요양시설 충격적”’(2010.11.11)은 우리 노인요양시설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지적했다. 보도에서 하시모토 원장은 “한국의 노인요양시설을 돌아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며 “한국의 노인요양시설은 형사 처벌감이다”고 말했다.

<봉이 김선달도 놀란 땅사기>(국민일보, 2011.5.11)
<“1억 투자시 몇 배로”…노인 울린 유전 사기>(SBS, 2011.5.12)
<“자식 잘 된다” 노인 상대 떴다방 사기>(YTN, 2011.5.6)


통상 범죄의 대상은 다양하다. 그러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사건 보도에서 ‘노인은 속기 쉽다’, ‘노인은 판단력이나 셈이 약하다’ 등을 강조할 경우 노인은 현재의 사회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의존적인 이미지를 부추길 가능성이 커진다. 노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또 노인 관련 기사에서 노인을 지나치게 주변인물로 그리거나 수동적 이미지만 부각되지 않는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에게 상처 주는 보도
아동은 보호의 대상이자 존중해야 할 존재다. 정서적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 보도에서 어린이에게 충격을 줄 우려가 있는 내용이나 장면을 기사화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어린이가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시간대에 방송하는 뉴스에서 폭력적인 범죄 장면이나 흉기, 끔찍한 재연 등을 보여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MBC 뉴스데스크(2010.12.28)는 교통사고 보도에서 행인이 눈길에 미끄러진 버스와 가로등 사이에 끼여 사망하는 장면이 촬영된 CCTV화면을 여과없이 방송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통심의위)로부터 주의조치를 받았다. 지난 5월15일 MBC 뉴스데스크는 또 각목살인사건을 보도하면서 일부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폭력·살인 장면이 그대로 방송돼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어린이를 인터뷰할 경우 2차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 예컨대 <초등학교 묻지마 폭력 성희롱 피해 ‘심각’>(EBS, 2011.5.20) 기사에서는 어린이 두 명을 인터뷰했는데 모자이크 처리 없이 뒷모습을 촬영하다 옆얼굴이 비춰지거나 모자이크 처리가 미흡해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어린이 인터뷰를 할 때에는 어린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거나 피해가 가지 않을지 자신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린이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 “버려졌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일간지 신춘문예 수필부분에 당선된 작가이기도 한 강씨는 성당에서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가슴 시린 아픔을 알게 됐다.”<입양아 8명 키우지만 불편함 없어요>(세계일보, 2011.5.10)
“이곳에서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나 부모가 있어도 함께 지낼 수 없는 아이 39명이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폐쇄 앞둔 성남 ‘천사의 집’아이들 “39명 생이별 막아주세요‘>(동아일보, 2010.2.20)


입양아 보도도 인권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입양 대기 중인 아동 30명의 프로필을 동영상 형태의 광고로 제작해 한국정책방송 KTV를 통해 방영하기로 하여 논란이 됐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이양희 위원장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을 마치 온라인 쇼핑몰에 내놓은 상품처럼 TV에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은 아동권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발상”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연합뉴스. 2011.5.15) 이러한 입장은 입양아 뿐 아니라 어린이 관련 보도에서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뜨거운 감자’ 동성애
성적 소수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2007년 10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미 2001년 시행된 인권위법에 명시된 차별금지 사유인 ‘성적(性的) 지향’이 포함된 것에 대해 기독교계 등이 반발한 것이다. 결국 당시 정부는 ‘성적 지향’이 삭제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17대 국회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되었고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법안을 다시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적 지향’ 포함여부가 논란거리다.

사람은 ‘성적 욕망의 성향’인 성성(性性, Sexuality)이 있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다수자의 성성은 이성애다. 인간의 연애와 사랑, 성에 대한 제도가 대부분 이성애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적소수자(Sexual Minority)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나아가 성적소수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소외는 그 연장선이다. 언론보도는 어떨까?



   
 
   
 
<안젤리나 졸리, 피트 놔두고 동성연애 시작?>(동아일보, 2011. 5.9)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입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동성연애자 혐오에 맞서 키스하기, 차별에 항의하는 페루의 동성연애자 단체 시위입니다.”<이탈리아 총리 성매매 의혹 ‘루비’TV 광고 등장 외>(MBC, 2011.2.15)

국어사전에 ‘연애’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이다. 성적소수자인권단체들은 ‘연애’를 사랑을 진지한 감정이 아닌 다소 가볍게 묘사한 단어라는 점에서도 언론에서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를 연애의 차원으로 국한시킨다면 동성애자가 갖는 삶의 다면성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 동성연애 대신 동성애, 동성애자로 표현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적 지향’, ‘커밍아웃’ 의미는?
<美연방법원, 軍 ‘성적 취향 공개금지 규정 헌법위배 판결>(뉴시스, 2010.9.10)에서 사용한 ‘성적 취향’이란 표현도 ‘성적 기호’, ‘성적 선호’와 함께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취향, 기호 등은 한 개인이 참으면 해결되거나 남에게 방해를 주지 않고 혼자서만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적 지향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졸이라고 거짓말을 했거든요. 아내도 제가 대학 나온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커밍아웃’하고 절 퇴학시켰던 모교를 찾아갔습니다.”<실패도 젊음의 한부분입니다>(연합, 2011.2.16)
“어쨌든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이제는 ‘수석졸업’이라는 표현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에드워드 권의 의혹 이후다. 자, 다음엔 누가 ‘커밍아웃’ 할 것인가‘<박찬일의 음식잡설①한국 스타 셰프의 허와 실>(중앙일보, 2011.3.08)


커밍아웃의 원래 의미는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이었으며 현재는 ‘동성애자가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성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란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이를 거짓말을 고백하는 의미로 쓸 경우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설-‘인생은 아름다워’와 방송의 품위>(국민일보, 2010.10.25)
<긴급진단 ‘동성애’ “동성애 유혹을 구원으로 대체시키자”>(국민일보, 2010.11.30)
<신앙과 건강-‘생육·번성’가로막는 동성애 창조 섭리 거스르는 사망의 길>(국민일보, 2011.3.27)


일부 언론에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표현이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세계적으로 197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출간한 ‘정신질환에 대한 통계편람’(DSM)에서 동성애를 삭제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1993년 발간한 국제질병분류 ICD-10에서 “성적 지향은 정신적 장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기술했다. 아직 학계에서 동성애자 원인이 객관적으로 검증되거나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자칫 차별과 인권침해일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고 평등하다’(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조항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공동취재팀>
김성후 기자협회보 기자 kshoo@journalist.or.kr
박광우 국가인권위 홍보협력과 사무관 pkw@nhrc.go.kr
김언경 방송독립포럼 사무국장 true4731@naver.com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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