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잔혹한 게임규칙을 바꿔라

[언론다시보기]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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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MBC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나는 가수다’ 열풍이 뜨겁다. 매주 방송 될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가수들의 공연은 어느 콘서트나 음악프로그램보다 시청자들을 감동에 빠뜨린다.

나 역시 ‘나가수’의 팬이다. 임재범, 박정현, 김연우, BMK 등 나한테는 낯설던 가수들의 가창력에 놀라고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 한 가지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꼭 꼴등을 탈락시키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시청자들의 관심도 누가 꼴등을 하느냐에 쏠려 있고, 참가하는 가수들의 관심도 꼴등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데 쏠려 있다. 1등을 해봤자 다음에 꼴등을 할 수도 있으니 1등은 별스러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모두들 죽어라 연습을 하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가며 꼴등을 하지 않으려 기를 쓴다. 참으로 희한한 전대미문의 가수 서바이벌 게임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국악에도 있었으면 하는 말에 “로마 검투사”
얼마 전에 노래를 부르는 젊은 국악인에게 국악에도 ‘나가수’ 같은 프로가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는 검투사가 되라는 말입니까?”라며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 보니 검투사들은 싸움에서 승리를 해봤자 노예로부터 풀려나는 것도 아니고 다음 번 싸움에서 더 센 사람에게 죽어 나갔는데, ‘나가수’가 가수들을 그 규칙으로 싸우게 하니 싫다는 것이었다.

말을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칼과 창으로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검투사와 성대와 악기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경연이 같을 수는 없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가수가 되어 보겠다고 온갖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에 목을 매는 신인들이 아니다.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내로라 하는 실력으로 활동을 해 오던 직업 가수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노래도 아닌 남의 노래 한두 곡 부른 결과로 꼴등이 되는 순간에 그동안 쌓아 온 명성과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서바이벌 게임에 자의로 또는 타의로 참가한 것이다.

난 살아남은 가수들의 기쁨과 영광보다 탈락한 가수들이 받았을 수모와 상처가 가슴 아프다. 그 아픈 기억이 평생 낙인이 되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그들의 가슴속 상처가 칼과 창으로 찔린 상처보다 아프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꼴등으로 탈락한 정엽과 김건모와 김연우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흘린 눈물과 상처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따뜻한 축제의 에너지로 바꿔야
가수들이 열정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 역시 엄청난 감동을 받고 행복해했다.

그러다가 그들을 의자에 앉혀 놓고 순위 발표를 할 때면 노래를 통한 감동은 다 잊어버리고 불안과 초조에 떠는 가수들의 표정을 보며 가학적 취미를 즐기는 자신을 보고서 몸서리가 쳐졌다. 그 순간의 내 마음은 누가 피를 흘리며 죽을지 가슴 졸이는 로마 시민의 잔인한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꼴등을 뽑지 말고 가장 감동을 준 가수를 뽑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 가수에게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가수왕’이라는 영광과 찬사도 몰아주고, 상금도 듬뿍 주고, 멋진 고별 공연도 마련하는 방식으로 바꾼다면?

‘누가 누가 꼴등인가’라는 부정적이고 가학적인 어둠의 에너지를 긍정적이고 따뜻한 축제의 에너지로 바꾼다면? 시청률 때문에 안 된다고? 시청자들을 ‘잔혹 서바이벌 게임의 공범자’로 만드는 시청률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을까?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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