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밝혀진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노종면 천안함조사결과언론보도검증위원회 책임검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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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조단 발표 핵심 ‘설계도·흡착물질’ 증거가치 상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지난 26일로 1주기를 맞았다. 꽃다운 청춘들이 희생된 지 한 해가 지났지만 제기된 의혹은 아직 해소되지 못했다. 남북관계 악화에 따라 문제제기를 이념적으로 불온시하는 ‘매카시즘’까지 팽배하다.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 3단체가 구성한 ‘천안함조사결과언론보도검증위원회’(천안함검증위)의 노종면 책임검증위원은 그 진실의 긴 터널을 달려왔다. 터널의 끝은 어디쯤일까.

-천안함검증위가 지금까지의 활동 결과 확신할 수 있는 결론은.
천안함 사건 조사는 행위자 규명이 목적이다. 정부는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결론냈다. 단순화하면 △어뢰추진체가 북한 것이라는 사실 △그 어뢰가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사실 두 가지가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증거로는 둘 다 의문이다.

우선 정부가 공개한 북한 어뢰설계도는 어뢰가 북한 것이라는 증거다. 그런데 설계도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정부가 출력해 보여준 것 외에는 기자든, 국회의원이든 본 사람이 없다. 언론에 보여줄 수 없다면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에게라도 보여줘야 한다. 국방위나 특위에 공개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 어뢰 폭발은 확실한가. 그것도 아니다. 정부는 폭발로 생성되는 물질인 알루미늄 산화물이 어뢰추진체와 천안함 선체 모두에 묻어 있다고 했다. 그 물질이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니라 폭발과 무관한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자 정부 입장이 바뀌었다. 엄연히 다른 수산화물과 산화물을 통칭했다는 것이다. 결국 결정적인 두 가지 부분에서 정부가 제시한 증거는 가치능력을 잃었다.

“정권의 이익 차원서 진실 은폐”

-일부는 검증위가 북한 정권을 변호하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결국 국익 문제다. 무엇이 국익인가.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라고 하자.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나. 역사에 정확히 기록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우기면 국제사법재판소라도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게 실질적 국익이다. UN 안보리 결의를 이끌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런데 왜 못했을까.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증거를 완벽히 확보해야 국론 분열도 막고 북한 소행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천안함검증위만 가만히 있으면 다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비과학적인 음모론이 불신을 키우고 더 폭력적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의혹을 해소할 책무가 있다. 정부는 누구보다 뛰어난 정보력과 전문가 집단을 갖고 있는데 왜 언론단체조차 이해를 못시키나. 기밀이란 이유로 국회의원한테도 공개 못하는가. 따라서 이건 국익이 아니라 ‘정권의 이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권 이해와 얽힌 문제인데 마치 국익 문제인양 호도하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 80%가 북한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여론조사다. 또한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묻지 않았다. 왜 믿는지 이유를 묻는 건 여론조사의 기본이다. 정부가 뭐가 두려워서 묻지도 않았을까. 정부가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근거 대신에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미는가. 한 대학생단체와 인터넷매체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봐도 81.3%가 북한 소행이라고 보지만, 합조단 조사결과를 신뢰해서 그렇게 믿는다는 답변은 26.7%에 그쳤다. 정부는 근거에 대한 판단은 묻어두고 ‘북한 아니면 누가 그랬겠느냐’는 논리를 유포하는 것이다. 여론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데 여론이 전부는 아니다. 가령 연쇄살인의 용의자가 잡혔다. 흉악범죄 전과자다. 여론은 1백% 그 용의자가 범인이라고 할 것이다.

-보수신문들이 일제히 천안함 1주기 특집을 냈다.
보수신문들의 대전제는 정부 조사 결과가 맞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로 확실한 건지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근거는 지금도 없고 이전에도 없었다. 결국 정부가 발표했으니 믿는다는 것이다. 여당이라면 몰라도 언론은 그래선 안된다. 미국 등 5개국 전문가 집단이 참여했으니 믿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단정적 결론을 내리려면 언론 스스로 검증해야 한다. 최소한 아까 말한 핵심 두 가지는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도 않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훈계조로 매도한다.

“조선 내부서도 부끄러워할 것”

-조선일보는 지난 21일자 기사에서 ‘검증위가 과학적으로 잘 모르면서 정부 조사 결과를 반박했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또 노 위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핵심은 조선일보가 저를 취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낯선 번호의 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사무실에도 전화했다는데 전해 받은 바 없다. 정 연락이 안 되면 찾아가는 게 기자다. 전화 연락이 안되면 포기해도 될 정도의 취재원이면 기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취재 못한 사람을 사진까지 실어 보도했다. 저는 조선일보 내부에서도 부끄러워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기사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검증위의 구체적 내용을 답할 위치에 있지 않은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의 발언까지 왜곡했다.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조선일보 사장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흠집을 내기 위해 안달이 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지 않으면 앞으로 취재를 거부할 것이다.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위 제소보다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하겠다.

-보수신문들은 정부와 검증위의 ‘전문가 파워’를 비교한다. 검증위는 소수 과학자들이 결합했으나 합조단은 분야별 전문가들을 망라했다는 것이다.
한계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합조단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흡착물질에 대해 말을 바꾸는 걸 보면서 진정한 과학자인가 심각한 의문을 가졌다. 알루미늄 산화물과 알루미늄 수산화물은 통칭할 수 없다. 합조단은 뭉뚱그려 알루미늄 산화물로 불렀다고 주장한다. 과학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또 합조단에 참여한 과학자는 대부분 정부 유관 기관 소속이다. 일부 민간과학자들은 개별 영역에 각각 포함됐을 뿐 조사 결과를 종합해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합조단 참여 미군 장성의 외국언론 인터뷰를 인용해 미군이 확보한 북한 어뢰설계도와 실제 추진체가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또 이승헌 교수의 폭발 실험도 기본 조건이 잘못돼 있다고 지적한다.
단정적 증거가 되려면 미군 장성이 언급했다는 그 설계도를 공개 확인해야 한다.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다. 이승헌 교수의 실험은 흡착물질을 확보하지 못했던 제한적인 조건에서 지난해 6월에 실시됐다. 이후 검증위가 흡착물질을 합조단으로부터 직접 제공받아 분석·발표한 게 10월이다. 그런데 10월 발표는 무시하고 자꾸 철지난 이야기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또한 그 언론이 검증위 분석 결과를 비판하기 앞서 합조단의 폭발 실험 데이터는 검증해봤는지 묻고 싶다.

-정부와 사회 일각은 합조단의 천안함 조사결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특히 연평도 포격 후 더욱 그렇다. 합리적 토론이 힘들어 당분간 결론 나기 어려울 거란 주장도 있다.
일반인은 그럴 수 있다. 국민은 “어쨌든 북한 아니면 누가 했겠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론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 이해가 간다. 북한은 연평도 도발만으로도 비난 가능한 집단이다. 많은 언론인들도 “정부 조사가 틀린 것이 많지만 북한이 한 것은 맞겠지”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언론인들이 할 생각은 아니다.

“진실은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

-진실이 영원히 묻히지는 않을까.
시간의 문제일 뿐이지 앞으로 상당한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본다. 북한의 행위더라도 새로운 근거가 나와야 한다. 은폐를 시도하고 논의 자체를 가로막는 움직임은 정권의 이익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이 국익에 반하는 경우는 없다. 진실은 규명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언론과 정치권의 역할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뿐이다.

-해직의 고통을 짊어지고 또 다른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왜 검증위 책임을 맡았는가.
해직당한 이후에 수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어떤 위치에 있든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다하라는 요구로 이해했다. 천안함 사건도 언론인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하고 보도한다는 심정으로 임했다. 지난 15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면서 민감한 논쟁거리 취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해직 전과 다름없이 기자로서 임무를 다한 것뿐이다.



진실의 열쇠, 흡착물질
민군합동조사단은 최종 공식 보고서에서 함미, 함수, 연돌 등 천안함 선체와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흡착물과 수조폭발 실험에서 발생한 폭발재 성분을 비교했더니 모두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이는 천안함이 어뢰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천안함검증위가 양판석 캐나다 메니토바대 교수, 한겨레21과 KBS 추적60분이 정기영 안동대 교수에게 흡착물질 분석을 의뢰했더니 모두 ‘비결정성 알루미늄 황산염 수산화물’ 성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알루미늄 수산화물은 폭발이 아니라 알루미늄 부식 등으로 생기는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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