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 멸망하기전 공룡... 빨리 변해야"

퇴임 앞둔 한겨레 고광헌 사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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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충실하면 한겨레 비전 밝다"


1988년 창간부터 24년간 ‘공익근무’ 기간 같아
보수언론, 기득권 동맹세력 이익에 충실히 부역 

지난 2008년 3월 취임해 3년 임기를 마치고 이달 21일 퇴임하는 고광헌 한겨레 사장을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대표이사실에서 만났다. 그는 1988년 8월 한겨레 창간 당시 평기자로 입사해 사장까지 24년간 한겨레 산증인이었다. 언론인 생활을 마감할 즈음 그의 소회는 어떨까. 한겨레와 한국언론, 그리고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반갑습니다. 이제 곧 퇴임을 앞두고 계십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홀가분합니다. 회사가 그래도 안정됐다는 주변의 과분한 평가도 있고, 그런 환경이 된 상태에서 그만두는 것이니 홀가분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해방감도 갖고 있습니다.(웃음)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송별회를 계속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원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말씀하신대로 매일 점심, 저녁으로 부서를 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왜 사장에 출마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3년간 한겨레 사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지만, 바뀐 정부가 굉장히 비우호적으로 진보언론에 대해 거의 탄압에 가까운 제약을 해왔습니다. 권력이 기업들의 홍보, 광고활동을 위축시켜 비판언론의 발을 묶으려는 짓을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굉장히 긴장했고 우리 안에서는 예전처럼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며 출발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이 계속됐는데 나름대로 잘 마무리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고 사장은 이후 질문에서 지난 3년간 한겨레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온 힘을 다했고, 에너지가 다 소진한 터라 연임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퇴임 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일단 빠른 시일 내에 시집 한권을 내려고 합니다. 틈틈이 쓴 시도 있고, 예전 발표했거나 써둔 시들도 있고요. (1983년 시인지와 광주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신중산층 교실에서’가 있다.)

-한겨레 초기 창간멤버부터 사장까지 24년간 일했습니다. 돌아보면 어떤가요. 아쉬운 점도 있고 그러실 텐데요.

돌아보면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남의 허물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작은 허물인데 내 안에서 너무 크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또 남이 준 가벼운 상처를 크게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괴로워하거나 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부족한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좀 더 제대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죠.

업무 차원에서 보면 늘 좀 모자라고 서운한 감이 들어요. 초년 기자 생활하던 1989년 당시 사회부장이던 김두식 선배에게 자청해서 경찰기자에 지원했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서른 여섯이었는데 최고령 경찰기자였을 겁니다. 초심은 그랬는데 그 뒤에 여러 부서와 부서장을 거치며 어느 시기가 지나고 나니, 좀 더 충실하고 열심히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런 한겨레는 고 사장에게 어떤 존재였습니까.

거의 24년을 일했는데 저로서는 그 기간이 거대한 ‘공익근무’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으로서 내 일이 한겨레를 통해서 구현되고, 거기에서 자아의 만족을 동시에 얻기도 했지만 아울러 당대의 시대정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이른 바 언론활동이라는 것이죠. 한겨레를 택한 기자들 중 대부분은 생활이 풍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장이 되어선 진보언론도 기자들 생활 걱정 안시키고 취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신문사를 만들고 싶었지요.

-시인이시니, 한겨레 생활을 싯구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싯구요?(웃음. 고 사장은 잠깐 망설이더니 준비 중인 시집의 원고 꾸러미를 내왔다. 그 중 한편을 소개했다.)

섣부르게
이기려는 흉내 내면서
이만큼 올라왔다

발 아래
자욱한 눈물천지

빈 가지
눈 맞고선 나무들

지면서 살라한다


이 시는 마흔 살, 불혹 때 쓴 시입니다. 친구와 함께 설악산을 찾았는데, 그때 등산을 하면서 메모를 한 걸 정리한 것입니다. 불혹이라는 나이는 유혹이라는 것을 많이 받을 때죠. 돈의 쓰임새도 많아지는 때고. 그러니 유혹을 받게 돼 있습니다. 열심히 달려오다가 뚝 그치고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산에 올랐었죠. 자신을 객관화 시키고 성찰하는,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긴장을 놓지 않게 하고 나름대로 정진을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을 준 것 같습니다.

-사회부장 재직시절 기획했던 ‘언론개혁 시리즈’가 화제였습니다. 최근 독일 슈피겔지가 마르켈 총리의 시녀 역할을 한다며 빌트지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고 사장 생각을 했습니다. 2001년 언론개혁 시리즈를 내보낸 지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후회는 없습니까.

당시 조중동은 긴장을 했겠죠. 특히 조선과 동아는 일제시대 때 매체의 친일행적과 사주들의 친일행각이 있습니다.  문제의식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언론에 대해 비판한 것은 2001년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겨레가 처음 설립됐을 때부터 여론매체부 등을 통해 해 왔던 일입니다. 동업자 비판을 금기시해 온 게 언론이었지만 ‘왜 우리는 비판만 하고 비판받지 않느냐’라는 생각으로 줄곧 비판을 했었고 그 연장으로 ‘언론개혁 시리즈’를 썼던 것입니다.

제 입장은 이렇습니다. 언론이라는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은 그것이 정부기관이든 기업이든, 언론이든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당시 비판을 통해서 저는 적어도, 해당 언론사들에도 공적인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통해 달라진다면 독자 입장에서 좋은 것이고, 해당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좋은 것 아니냐, 과거를 털고 새로운 언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애정도 있었습니다.

해당 언론사들은 당장 아플 수밖에 없었죠. 아픈 심정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언론도 비판을 받아야 되고, 정당한 비판을 받아들이면 더 나은 언론이 될 것이라는 선의 같은 것도 작용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후 조중동은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종합편성채널을 하겠다고 지면을 일부분 왜곡시켰죠. 저널리즘이 살아있다면, 반드시 가져다 대야할 펜을 가져다 대지 못했습니다. 정치권력은 종편이라는 먹잇감을 통해 훌륭하게 언론을 장악했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보수언론들은 기득권 동맹세력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고 부역했죠. 우리사회가 성숙된 단계에 올랐으니, 과거처럼 전횡을 저지르는 등 노골적인 권언유착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문사들은 자기 살 길이 뭔가 찾은 것일 겁니다. 그걸 종편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죠. 정치권력의 입장에서는 그걸 내세우면서 잘 활용한 것이고요.

-한겨레 기자들을 만나면 한겨레적 가치라는 것에 대해 물어보곤 합니다. 고 사장에게 있어서의 한겨레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한겨레의 가치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 가치라는 것은 사실을 신성시하고 의견에 대해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겨레가 창간 이후 이를 지금까지 줄곧 지켜왔고, 또 앞으로 확대 심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과거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싸울 때는 지금과 가치가 조금 달랐죠. 가령 그때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은 독재 권력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소외받았습니다. 당연히 사회적 소외자, 약자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강자의 횡포에 대해 감시자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민주화가 된지 길게는 20년 짧게 봐도 10년이 지났습니다. 대원칙은 변해선 안 되겠지만 약자의 반칙도 지적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한겨레적 가치를 위협했던 것이 경영, 광고 부분입니다. 삼성이 2년 6개월 가량 광고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삼성 없이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뒤에도 흑자를 일궜습니다. 어려움이 컸을 텐데, 어떻게 그런 경영이 가능했습니까.

흑자를 낸 것은 우선 우리 5백여명 직원을 인사를 통해 적재적소에 배치해 일을 잘 할 수 있게 만들고 그들이 가진 역량을 잘 조직화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리더십과 만나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삼성이 광고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성과를 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직원들에게 고양됐다고 봅니다. 또 그것이 굉장한 자산으로 남았다고 봅니다.

삼성이 광고를 주지 않자 ‘광고 없이 가겠다’고 선언한 것은 한겨레 입장에서는 ‘세게 싸우는 것’입니다. 신문이라는 것은 비판을 공적으로 파는 회사, 비판을 마케팅하는 회사죠. 비판이 곧 상품입니다. 그 상품을 사지 않겠다는 것은 성숙된 사회에서 기업이 할 일이 아니라고 줄곧 얘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광고 집행을 못한다고 하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럼 없이 가자, 그랬던 겁니다. 실제로 직원들이 똘똘 뭉치고 함께 성과를 내며 헤쳐간 것이죠.

-삼성이 절대 권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삼성과 언론의 문제, 언론과 삼성의 문제를 우리 언론이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현재 삼성은 한겨레에 광고를 재개하고 있고, 거의 정상화되었습니다. 광고 재개를 위해 노력할 때, 삼성에 한 말은 “우리는 비판을 파는 언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비판을 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언론사와 광고주간의 자연스러운 상거래일 겁니다. 그런 것을 하지 않으니 부자연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는 기사고 광고는 광고다. 컨텐츠는 컨텐츠다. 영업하고 마케팅하고, 광고수주를 하는 것은 별개 아니냐”고 얘기했지만  본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갭이 존재했습니다. 삼성이 잘못한 것은 언론이 당연히 비판을 해야죠. 단연코 얘길하는데, 삼성에 대해 유일하게(종이신문과 전파로 봤을 때) 비판한 매체는 한겨레였습니다.

때문에 언론과 삼성의 관계는 한겨레가 아닌 다른 언론에 물어봐야 할 사안인지도 모릅니다. 한겨레는 삼성문제로 많이 고민했지만 한 번도 기사를 통해 삼성과 거래를 한 적이 없습니다. 흔히 언론들은 기업이 광고를 안주거나 하면 보복기사를 쓰거나 쓰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실제로 우리 언론에는 기업에 보복하는 기사가 지금도 많죠.

그런데 한겨레는 그런 것도 하지 않는 회사입니다. 한겨레가 삼성이 2년 반 이상의 광고를 중단했다는 등의 이유로 기사로 보복한 적 없습니다. 생명력 있는 기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쓰듯이 삼성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삼성 백혈병 문제를 있는 대로 독자들에게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매체도 한겨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를 정상화한 것은 그런 미디어적 역할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장 올바른 관계죠. 그런 의미에서 정상화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크게 성장하는 기업입니다. 또 사회 공헌활동도 해야합니다. 비판을 받고 수용하고 그 비판의 가치를 사야 합니다. 2년 반 정도 비정상적인 관계였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삼성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나요. 삼성 비자금 같은 문제들 어느 정도 해소가 되지 않았습니까. 당장은 아프지만, 그런 비판으로 삼성이 이전에 비해 좋은 기업이 됐다고 봅니다. 과거에 비해 삼성의 민주화지수는 올라간 것 아닐까요.

-한겨레신문의 구독료 제값 받기가 혁신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나요.


 



   
 
   
 

 


신문사 경영자로서 의미있게 정리를 하고 넘어가는 것은 신문판매 유통혁신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문사들이 각종 고가 경품, 상품권, 현금을 주면서 구독자를 매수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상으로 봐도 굉장한 위반행위 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독자서비국에 예전에 가지고 있던 신문판매와 유통관행에 대한 생각을 바꾸도록 유도했습니다. 생각이 바뀌자 창조적인 정책들이 나왔습니다.

일단은 거품을 다 뺐습니다. 독서국 사원들은 회사의 신문 유통, 판매방식에 대해 지국장들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지국장들과 스킨십을 많이 가지면서 협력을 얻어냈습니다. 저 자신도 판매국 지국장들의 행사나 모임이 있으면 이사 시절부터 스킨십을 해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돈을 마구 투자해서 확장을 하지 않고…. 그런데서 오는 절감효과가 있는 데다 지대는 더 올려 받으니, 성과가 나타난 것이죠.

거품을 다 뺐는데도 지난해 말에 HRC 조사에서 한겨레 신문창간 아래 가장 높은 열독률을 기록했습니다. 또 온라인 쪽에도 조선일보와 뉴스 열독률이 같습니다. 이미 2강 체제로 올라섰죠. 저로서는 판매 혁신을 하면서 얻은 수확이 굉장히 큽니다.

-뉴미디어시대의 언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야말로 빅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야에서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면, 뉴미디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기술의 발전이 만나면서 오는 현상입니다. 과거에는 언론사만 정보를 수집을 할 수 있었고 정보독점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IT 기술이 발달해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언론사들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알려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말도 있지만, 5명 혹은 1명이 미디어회사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신문사 10개, 방송사 3개였는데 지금은 비즈니스가 잘게 쪼개집니다. 그래서 옛날처럼 크게 매출을 일으킬 것이라는 데는 비관적입니다.

이 때문에 조중동은 방송을 돌파구로 찾았죠. 문제는 독립 언론을 지향하는 신문사들입니다. 비유하자면 지금 종이신문사들은 멸망이 다가오기 직전의 큰 공룡입니다. 다른 작은 식물이나, 바이러스, 미생물 등 작은 동물들은 빙하기가 닥쳐오니, 잽싸게 살기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살아있죠. 하지만 큰 공룡은 다 멸종했습니다. 큰 몸집 때문입니다. 이 비유가 적정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신문사들이 너무 느리게 변하고, 새로운 것은 좀 더 빨리 받아들여 자기 갱신을 하는 데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것 같습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대한 대응이 보수적이고 또 늦다는 지적은 한겨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현재 한겨레는 디지털미디어센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회사가 준 목표를 달성한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희망적으로 봅니다. 저로서는 온오프 통합해 뉴스룸을 운용하려고 했습니다. 가령 한겨레에 글을 쓰는 기자가 1백80명이라고 하면 출입처에서 종이신문에 안 써도 되는 유익하거나 재미있는 기사를 하루 하나씩만 써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링크해도 엄청난 효과가 나타납니다. 수평적 소통이 가능해 독자들도 크게 반응하죠. 온라인에서는 ‘디디면 다 내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걸 해야죠. 그리고 나서, 종이신문은 ‘Why and next’에 치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뉴미디어시대의 언론사, 그리고 기자가 가져야할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미디어빅뱅시대의 언론사와 기자의 제1 덕목은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눈이 높아진 독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언론사,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와의 수평적 소통시대인 만큼 기자는 가르치려는 태도를 빨리 버려야 할 것이고, 반면에 가르치지도 않겠지만 소통 역시 안하겠다는 듯 SNS 등 각종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이용한 활동에 겁을 먹어서도 안됩니다.

-40대인 양상우 대표이사 후보가 당선되고, 곧이어 공채 2기 박찬수 편집국장이 지명됐습니다. 시니어 기자들로선 불안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과거 분파성도 있었지 않습니까.

분파는 단연코 없습니다. 그건 내가 잘해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세대와 그 분들의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통을 통한 통합을 공약으로 걸고 나와 당선됐는데 사실 그것이 과거를 터는 계기로 조금 작용됐을 뿐 실제로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지금 우려하는 시니어들 불안은 기본적으로 함께 지붕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몫이지요. 누가 이야기해서 좋아지는 것도,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흔히 하는 말로 집단적인 지성과 지혜가 관통되면서 자동적으로 정리되는 것입니다. 그 갈등이라고 하는 차원도 사장을 직선으로 뽑는 제도가 빚어내는 어쩔 수 없는, 다른 선택이 가져오는 그런 정도인 것이지요. 옛날처럼 분파라고 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런 것은 전혀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퇴임을 앞두고 혹시 정치권 러브콜 같은 것은 없었나요. 다른 사장들은 현직에 있으면서 지역구도 다지고 또 출마를 준비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저도 가끔씩 고향에 내려가긴 하는데요.(웃음) 저도 그런 요구가 있긴 했습니다. 새 사장이 뽑히고 퇴임한다고 하니 몇 건의 러브콜이 있었죠. 그분들에게 그랬습니다. 제가 한겨레를 대표했는데 정치권에 휩쓸리면 후배들이 어찌 보겠느냐고요. “말이 안된다. 재밌게 술이나 먹자.”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온 힘을 들여 힘들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일하다 보니, 제 안의 에너지와 동력이 모두 소진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향후 제 거취에 대해서는 하나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에 공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겁니다. 또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시집을 한권을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내가 김경미 시인입니다. 두 분이 문학에 대해서도 자주 말씀 나누시는 지요. 공동시집을 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김경미 시인은 시에 탁월한 시인이고 나는 그냥 시인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같이 하면 안됩니다. 제 작품이 못 미쳐서 안돼요(웃음).

-문인들과 교류도 자주 하시는지요.

며칠 전에 한국작가회의(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도종환 시인과 친구지간이니 연락이 와서 갔었습니다. 한국작가회의가 예산을 세우지 않고 2011년도를 버티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온 적 있는데
사실은 제가 제일먼저 페이스북에 보도를 했습니다.(웃음) 그걸 올렸더니 30명 정도의 회원들이 댓글 등으로 참여했더군요.

-끝으로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장․청이 잘 조화를 이뤄서 뉴미디어시대에 한겨레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가 새롭게 펼쳐질 뉴미디어시대에 미디어의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과 독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또 독자들이 의지하는 그런 최강 언론으로 들어설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저널리즘에 충실하다면 한겨레 신문의 비전은 전망이 굉장히 밝다고 봅니다. 방송에 진출한 보수신문들이 앞으로 좋은 뉴스를 만들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미디어로서의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겨레 같은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이 만든 콘텐츠가 뉴미디어시대의 각종 플랫폼과 디바이스를 통해 유통되고 이를 통해 생기는 영향력으로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와 관행을 바꾸고, 나쁜 것은 타파하고 좋은 것은 불러올 것이라 봅니다.

덧붙여 보수적 시각과 진보적 시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저널리즘의 대원칙으로 사안을 보는 눈은 똑같아야 합니다. 어느 언론사든 사익을 공익보다 앞세우고 사익을 저널리즘 원칙보다 앞세우면 안되지요. 저널리즘의 타락으로 한겨레가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씁쓸한 일입니다. 한겨레가 동업자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그 비판을 통해 같이 성숙해가는 언론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짧게 지난 3년만 보면, 종편 하나 가지고 거대 언론사의 컨텐츠 방향 성격이 춤을 추는 몰각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저널리즘의 후퇴에 따른 전 사회적 자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점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고 사장은 두 편의 짧은 시를 더 언급했다. 하나는 지난해 타계한 고 리영희 선생에 관한 시이고, 또 하나는 2004년 구조조정으로 한겨레를 떠난 동료들을 생각하며 쓴 시다. 그에게 아직 얼얼한 상처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존재들인 듯했다.)

리영희

조용히
아주 조용히
쓰다

쓰고 쓰고
책 나오고
감옥 가다

아주 조용히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가 되다


가슴 속
수십만 채 감옥 세우다


5월15일

5월15일
스승의 날
가출한 아이들
찾아야 한다

5월15일
한겨레 창간기념일
울며 떠난 형제들
불러야 한다


 


대담=김신용 편집국장 trustkim@journalist.or.kr
정리=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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