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정의 위해 밥숟갈 놓을 수 있어야"

[창립46주년 특집 인터뷰] 소설가 이외수씨

  • 페이스북
  • 트위치


   
 
   
 
언론장악·기자해직은 ‘오감차단’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0일 소설가 이외수씨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을 찾았다. 때로 이 시대와 정부에 대해 시원한 풍자와 비판을 하고 있는 재야의 소설가. 그를 만나 한국사회와 한국언론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지금까지는 워밍업을 하는 기분으로 ‘하악하악’, ‘청춘불패’, ‘아불류 시불류’ 같이 소셜미디어에 쓴 짧은 글을 엮어 산문집을 냈습니다. 요즘은 행복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트위터에서도 소설을 보고 싶다는 독자들이 많더군요. 제목은 ‘미확인 보행물체’로 정했습니다.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 관심이 많으신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내놓은 화두가 소통이었는데, 소통을 안하네요(웃음). 어쨌든 소통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벽오금학도(1992년)’를 쓸 때부터 편재(遍在), 합일(合一)에 관심이 많았는데 소통이란 말 역시 매력적입니다. 트위터는 그런 소통의 공간이고, 140자의 압축된 글로 모든 걸 풀어내야 하는 방식이라 저 같은 사람에게는 문장훈련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소통은 ‘조화’…불의와 결탁하는 타협과는 달라

-젊은 시절의 이외수를 타협을 모르는, 시대와 불화했던 소설가로 기억합니다. 과거와 달리 세상과 적극적으로 만나고 계십니다.
타협은 불의와 결탁하는 것이지요. 지금도 전 불의와 결탁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통을 ‘조화’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제가 얻은 것의 반을 세상에 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화의 한 방식이자 세상에 대한 보시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정부를 풍자, 비판하는 글로 세간에 화제가 되시곤 합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째인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사실 현 정부에 대해서는 일절 기대를 안하기로 했어요(웃음). 제가 기대하는 반대편으로만 가고 있으니까. 일례로 저는 자연은 그냥 놔두면 녹색성장한다고 보는데 강제 녹색성장을 시키려는 듯하고, 또 녹색성장해야 할 젊은이들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그간 써온 소설과 정반대이니 좋을 리 있나요.
모든 작가는 시대의 감시자입니다. ‘꿈꾸는 식물(1978년)’이 첫 장편소설인데 그때부터 모든 작품에 걸쳐 그 시대와 그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해왔습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부당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해야 이 세상이 더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죠. 좋은 소리만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한국 언론상황에 대해서도 비판한 적이 있으신데요. 실제로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만에 기자 대량해직사태 등이 일어났고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언론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눈과 귀, 입을 대신하는 것인데, 그것까지 봉쇄해 버리면 국민을 불구화시키는 것 아닙니까. ‘오감차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지향적인 작가 말고 어떤 작가가 그걸 좋아할 수 있을까요. 기자뿐 아니라 연예인들을 출연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일종의 해직사태일 겁니다.

의견 다르면 무조건 ‘좌빨’ 낙인…졸렬함의 극치



   
 
   
 
-이른바 ‘상식’이 실종됐다는 얘기가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좌빨’ 논란인데요. 선생님도 일부 세력으로부터 좌빨(좌익 빨갱이)이라는 공격을 받으셨지요.

한국사회가 가장 악질적으로 변한 걸 꼽아보라면,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무조건 좌빨로 몰아가는 졸렬함일 겁니다. 저는 그게 왜 짜증나고 어처구니 없냐 하면, 사회지도층이라 자처하는 보수진영 인사들 중 본인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군대를 안 간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는 겁니다. 제 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셨고, 저도 36개월을 속된 말로 박박 기다가 제대했고, 아들 둘도 병역을 마쳤어요. 그런데 3대째 나라 지킨 집안의 가장한테 좌빨이라니.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먹히는 시대가 바로 ‘청맹과니의 시대’입니다. 아무나 좌빨로 몰아가며 진실을 못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진실 왜곡이자 진실을 눈 멀게 하는 ‘눈 빼기 작전’이죠. 오히려 그런 사람들(뉴라이트 등)이 광복을 건국으로 고치며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한 일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단군은 건국 안하고 대체 어디서 뭘 했다는 건가요?

-젊은 시절, 강원일보에서도 잠시 근무하셨는데 언론사 시절 얘기가 궁금합니다.
가끔 ‘정상선’이라는 기자가 떠올라요. 단호한 사람이었습니다. 간부나 임원들이 비리와 결탁한 냄새가 난다든가, 부정이 있는 기사가 있으면 직접 조판실에 뛰어올라가 (윗선에서 못 고치도록) 납으로 만든 활자를 자신이 직접 뽑아 조판을 했어요. 다음날 당연히 윗선의 질책이 왔는데, 톱을 들고 오더니 책상 다리를 자르면서 그러더군요. “높은 놈들은 높은 데서 써라. 난 낮은 데서 쓰겠다.” 대단했죠. 그런 기자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백지광고사태를 겪던 동아일보보다 낫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 무섭고 살벌한 시대를 그렇게 살았던 기자들이 기억납니다.

-언론과 접촉이 많으십니다. 당연히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요.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일부 신문들이 정치적으로 왜곡 해석해서 글을 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엔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한국에는 소설 쓰기에 발군의 기량을 가진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소설을 써서 밥 먹고 살았지만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는 딱 한마디밖에 할 수가 없다. 졌다”고 썼더니 일부에서 이를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기방식대로, 정치적으로 해석하더군요. 행간을 왜곡한 것이죠. 유행하는 말로 ‘웃자고 던졌는데, 죽자고 덤비면 어쩌라는 건지’요(웃음).

-기자협회 8천여 명의 기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밥숟갈 놓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굶어도 좋다는 정신…. 작가도 역시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위해서는 혼자만의 밥숟갈을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혹시 좋아하는 언론인이 있습니까.
(웃으며)밥술 놓은 언론인들을 다 좋아합니다. 스스로 그만둔 언론인이 아니라 박해받은 언론인을 말하는 겁니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답게 제 소리를 내는 언론인들은 다 좋아하지요.

-앞으로 인생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내가 대표작이 없어요. 사실 삼십 몇 년 동안 소설을 써왔으니 작품 수는 다른 사람보다 적을는지 몰라도 소설에 종사해온 시간은 남 못지않다고 보는데, 내 스스로 대표 작품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번에는 습작도 많이 했고, 생각도 많이 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표작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민왕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