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동아 21년 만에 뒤바뀐 운명

경향 시민 격려·지지 봇물 ... 동아, 6월항쟁 '그 정신 어디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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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방송의 ‘땡전뉴스’에 분개한 시민들은 박종철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동아일보에 열렬한 지지와 격려를 보냈다. 2008년 6월, 쇠고기 정국에서 시민들은 경향의 정론 보도에 환호하고 있다. 21년 만에 뒤바뀐 두 신문의 운명에서 시민들이 언론에 바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 불편부당·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라는 시민적 갈망이다.




   
 
  ▲ 오늘 경향신문 1면  
 
/ 경향 시민 격려·지지 봇물  /


정론 보도에 시민들 열렬한 호응 ... 87년 ‘친여지’ 부끄러운 기억도

지난 3일 밤 9시쯤 경향신문 편집국은 술렁거렸다. 밖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함성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신문로를 가득 메운 수천여명의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경향신문, 힘내라’를 연호했다. 늦은 시각, 다음날 자 신문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던 사원들은 가슴이 차오르는 흥분과 감동을 느꼈다. 한 기자는 “그날 밤 경향신문 기자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는 폭발적이다. 이런 반응은 구독신청에서 두드러진다. 지난 5월 한 달간 자진구독 신청은 6천7백여부로 한 달 전 4백20여부에 비해 15배가량 늘었다. 이달에만 7일 현재 4천여명이 구독신청을 했다. 한 달 평균 구독부수가 4백여부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구독신청 폭주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광고 게재도 급증하고 있다. 야구커뮤니티 ‘엠엘비파크’, 다음 카페 ‘소울드레서’, 인터넷 사이트 ‘시민광장’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1면에 광고를 실었다. 격려광고와 후원금을 내겠다는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

미 쇠고기 파문과 촛불집회를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는 경향에 대한 관심들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경향에 대한 주목도가 부쩍 높아졌다.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는 “미 쇠고기 파문과 촛불집회를 신문의 정도, 원칙에 따라 보도한 데 대해 독자들이 반응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가와 자본 등 기득권 집단이 권력을 남용하거나 시민과 달리가면 견제한다는 신문 본래의 기능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향의 이런 오늘은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참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두환 정권이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87년, 경향은 사실상 ‘민정당 기관지’ 역할을 했다. 신문 1면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이 일상적으로 실렸고,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는 ‘과격 폭력시위’로 규정됐다. 당시는 경향신문 사장에 청와대 비서관 출신 등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픔은 경향의 집단적 기억으로 남았고, 신문의 본령을 지켜내야 한다는 기자들의 공감으로 이어졌다. 기자들은 그해 가을 언론자유수호문을 채택했고, 88년 3월 언론자유 기치 아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런 정신은 경제적 어려움에서도 경향이 지난 10년간 ‘독립언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올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최근 2~3년 사이 경향신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최근 쇠고기 정국에서 미래를 맡겨도 좋을 신문으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연장선이다.



/ 동아, 6월항쟁 ‘그 정신 어디갔나’ /


촛불현장서 야유·손가락질 다반사 ... “언론 정도 돌아와야” 내부 목소리

1987년 1월17일 동아일보 편집국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 날자 3면 김중배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를 읽은 수많은 독자들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사망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였다. 시민들은 울먹이며 “박군의 사인을 꼭 밝혀달라” “동아일보를 믿는다”고 했다. 방송의 ‘땡전뉴스’, 신문의 양비론에 거부감을 느낀 시민들은 동아의 기사와 칼럼에서 슬픔과 분노의 눈물을 달랬다.



   
 
  ▲ 1987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 1면  
 
박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들끊는 민심은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선언’으로 더욱 확대됐다. 동아는 박군 고문치사 사건이 경찰 고위간부들에 의해 축소 은폐 조작됐다는 사실을 5월22일과 23일자 지면에 연달아 폭로했다. 이 보도는 박군 고문살인 은폐조작에 대한 범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6월10일 전국규모의 규탄대회로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동아일보 기자 1백32명은 5월25일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주장’이라는 제목의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정권의 비도덕성에 대한 동아의 집요한 보도에 대한 보상일까. 동아는 ‘6·29선언’이 발표된 날 서울시내 가판에서만 40만2천8백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또 특별취재반(김차웅 차장대우 황호택·윤상삼·황열헌·임채청 기자)은 그해 한국기자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08년 6월, 동아일보는 조선, 중앙일보와 함께 ‘믿을 수 없는 신문’으로 폄하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집회도중 시민들은 ‘동아일보 불 꺼라. 동아일보 폐간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촛불집회를 친북좌파세력의 선동으로 몰아가는 일련의 보도들 때문이다.

동아일보에 대한 구독거부운동과 폐간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도 일선 취재기자들이 받는 고통은 더욱 심하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동아일보 기자’라는 말을 드러내놓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심할 때는 야유와 욕설을 받기도 한다. 지난달 말 경찰 프락치로 오인받는 봉변을 당했던 동아닷컴 동영상 촬영기자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지금처럼 안 먹히는 것은 처음이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한 논설위원이 최근 노보 ‘동고동락’에 기고한 글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주변 독자들은 ‘동아일보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소리를 만날 때마다 합니다. 이제는 그런 소리가 아예 듣기 싫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다시 언론의 정도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게 아니라 바로 ‘권력에 대한 감시’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곡 애국하는 길이고 동아일보를 살리는 길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빨리 동아일보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 1987년 1월 17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김중배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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