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 폭로, 세상을 흔들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본 내부고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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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오후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열린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삼성, 언론, 검찰, 국세청, 금감원 등의 철저한 반성을 위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호소와 양심성찰기도’ 기자회견에서 김용철 변호사(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양심선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펜타곤 페이퍼·워터게이트·황우석 사건 모두 ‘내부 제보’


‘삼성공화국’의 실체가 발가벗겨지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 인맥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던 삼성은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베일에 쌓였던 거대한 비리 구조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삼성그룹의 핵심 부서인 재무팀과 법무팀 일원으로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에서 비롯됐다. 내부 고발자가 입을 열면서 세상을 바뀐 사례들을 정리했다.

미국 베트남전 참전 본질 드러나
1971년 6월13일 뉴욕 타임스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미국정부 극비 문서인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6개면에 걸쳐 폭로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베트남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만 사건’은 북베트남의 도발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약하면 ‘공해상에서 공격받았다는 미 구축함 매독스호는 사실 북베트남 영해를 수시로 넘나들던 암호명 데소토라는 정보 수집 함정이었으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베트남을 전쟁 도발 국가로 알고 있었던 미국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뉴욕 타임스의 후속 보도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전쟁이 미국정부와 군수기업체, 광신적 반공주의자들이 결탁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국의 베트남전 패망을 이끈 이 문서의 제공자는 대니얼 엘스버그. 전직 해군 장교로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밑에서 이 보고서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원래 베트남전쟁을 지지했던 엘스버그는 이 일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신념을 바꿨고 평소 잘알던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극비 문서를 통째로 넘겼다.

닉슨 대통령 사임 이끌어내
1974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고 간 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도청에 대한 내부 고발로 시작됐다. 1972년 6월17일 워싱턴 포스트 브래들리 편집국장 방에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제보 내용은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 6층 민주당전국위원회 본부에 괴한 5명이 침입했다가 체포됐다는 것. 취재를 맡은 기자는 입사 9개월 된 봅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두 기자는 범인 중 한명이 전직 CIA 직원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두 기자는 독자적인 취재에 ‘익명의 제보자(딥 스로트)의 제보를 기초로 집중취재를 벌여 사건의 핵심에 접근해갔다. 취재 결과, 닉슨 정부가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한 사건에 개입한 사실을 숨기고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은폐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단순 절도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내부자의 제보와 두 기자의 끈질긴 취재로 닉슨 대통령 사임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워터게이트 사건의 정보제공자가 마크 펠트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으로 밝혀졌다.

황우석 신화 깬 ‘K’
2005년 6월1일, PD수첩 최승호 팀장은 인터넷 제보란에 올라온 글을 읽고 급히 한학수 PD를 찾았다. ‘황우석 교수 관련 건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황 교수의 연구가 허위라는 놀랄만한 내용과 함께 제보자의 이름과 직장이 적혀 있었다. 이튿날 밤, 한 PD는 일명 ‘K’라는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내용은 충격이었다.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 난자가 황 교수 실험에 사용됐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5년 5월 황 교수팀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최 팀장과 한 PD, 최진용 시사교양국장은 이 문제를 취재할 것인가를 두고 비밀리에 논의했다. 격론 끝에 이 사안을 끝까지 파기로 하고 취재에 착수했다. 취재에 들어간 지 6개월 여 만인 그해 11월22일 PD수첩은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을 통해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배양과 관련한 의혹을 집중 조명했다. 이어 12월15일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라는 특집방송을 내보내며 논문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 보도 이후 서울대는 조사를 통해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 잡지에 각각 발표한 인간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로 인해 황 교수는 교수직에서 파면됐다.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라는 희대의 스캔들은 권력과 황우석, 대중적 광기의 카르텔을 깨뜨리며 끝났다. 단초는 내부제보였다.

이밖에 1989년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고발한 이문옥 전 감사관, 1990년 보안사가 행정부, 법조계, 종교계 등 광범위한 민간인 불법 사찰을 통해 1천3백 여명의 신상정보를 수집해온 사실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1992년 군대 내 부정투표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 1996년 외압에 의한 감사 중단을 폭로한 현준희 전 감사원 공무원 등은 큰 파장을 일으킨 내부고발 사건들이었다. 김성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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