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다시보기] 자살보도 기준과 윤리적 딜레마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한국자살예방협회가 7월 29일 기자협회 및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자살예방전문가가 권고하는 언론의 자살보도 기준’을 발표했다. 나는 이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자살보도를 비롯한 언론윤리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윤리 문제는 윤리적 딜레마의 문제다. 자살보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개체보존 본능을 생각하면, 자살은 특이한 형태의 죽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자살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자살률은 또한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론이 자살 사건과 현상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며 정당하다. 독자에게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에 대한 보도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서 보도를 억제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에 뉴스가치 이상으로 강조하기 시작하면, 독자는 불안해 진다.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다.



그러나 적지 않은 연구 결과와 임상 경험은 자살 보도가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자살이 전염된다는 것은 학계에서 정설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아예 자살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이 자살 예방의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하다. 실제 오스트리아에서는 지하철 자살이 급격하게 늘자, 이에 대한 보도를 억제해서 자살률을 줄였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단지 자살을 줄이기 위해 보도를 억제하면 언론윤리의 핵심인 ‘일어난 사건을 진실되게 알린다’는 원칙을 위반하게 된다. 그렇다고 언론이 보도의 결과로 나타난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특히 아직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주체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청소년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살 보도가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 힘들다.



보도의 의무와 결과에 대한 책임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자살보도 실상은 그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자살자나 유족의 인적사항을 주변 사람이면 알 수 있게 보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당사자가 감추고 싶은 주변 상황도 자세하게 보도한다. 자살 동기가 대부분 복합적임에도 불구하고 ‘카드 빚’ ‘생활고’ 등으로 단순화한다. 지하철 자살 사건에서는 사건과 관련 없는 ‘기차가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지하철 자살 방송 보도에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자살이 정당한 자기표현인 양 묘사되기도 한다. 자살과 같이 민감한 문제에서도 사생활 보호, 정확하고 신중한 사실 보도, 선정성의 배제와 같은 윤리적 기본 규범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권고 기준의 내용 대부분은 이러한 일반적인 언론윤리를 자살 보도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자살 장소와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권고’가 자살보도에서 6하원칙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살보도 권고 기준과 세부 실천 내용 등은 기협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기자들이 이 기준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준을 계기로 언론 윤리 문제, 즉, 각각 존중되어야 할 가치들이 충돌할 때 생기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한 고민이 윤리적 예민성을 높이고, 그 예민성이 바쁜 일상에서도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안전판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다시보기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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